가끔 과목 시간, 특히 도덕 시간이나 미술 시간에 막연히 종이와 시간을 주고 종이를 채우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또는 종이 하나를 주고 “무언가 그려 봐” 또는 “무언가 써 봐” 이런 식으로 주제를 정해 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내 앞의 흰 종이를 멍하니 바라본다. 한참 동안 바라만 보다가 연필을 들고 쓸 준비를 한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연필을 종이에 대지만 그 자세로 한 교시동안 고민만 한다. 그러다 종이 치고, 선생님이 종이를 걷어 가신다.
그 후 어김없이 들려오는 말. “윤문아, 왜 종이가 비어있니?”
그럴 때에는 그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답하곤 했다. 그런데 사실 다른 이유가 있다.
나는 흰 백지가 무섭다.
물론 흰 백지, 그 자체가 무서운 것은 아니다. 사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백지가 아닌 나 자신이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백지를 받으면, 혹은 실수해도 백지를 바꾸기 어려울 때 연필을 들면 두렵다. 백지의 순백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오죽하면 “여백의 미”라는 말이 있을까. 내 말이 부족해서, 내 글이 부족해서 백지를 망칠까 봐 두렵다. 써 내려가다가 실수하면 백지의 아름다움을 망친 것 같아서 왠지 모를 묘한 죄책감에 휩싸이곤 한다. 수정테이프로 그어도 그 흔적이 예쁘지 않을 때면 좌절감이 밀려온다.
같은 이유로 예쁜 편지지도 가려 쓰게 된다. 왠지 편지지가 예쁘면 말을 가려 쓰는 것을 넘어 거의 쓰지 않게 된다. 너무나도 예쁜 이 편지지를 내가 더럽히는 것 같아서. 이 편지지는 너무 예쁜데, 나의 글은 예쁘지 않다. 좋은 편지지에는 좋은 글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좋은 편지지에 쓴다고 좋은 글이 뚝딱 나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긴장하고 쓰다가 도리어 글을 망친다.
그래서 나는 타자로 글을 쓰는 게 편하다. 나의 앞에 있는 이 화면 속의 백지는 썼다 지워도 흔적이 남지 않는다. 정 쓸 게 없으면 아무 말 대잔치를 해도 버튼 몇 개만 누르면 다시 지울 수 있다. 흔적은 전혀 남지 않고, 내 글이 예뻐질 때까지 다듬고 또 다듬어도 지우개 자국 하나 남지 않는다. 타자로 쓰면 글은 더 진솔해지고 조금 더 잘 쓴 글이 나온다.
하지만 타자도 좋지만, 예쁜 편지지나 순백의 백지 같은 아름다움이, 내 글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내 글도 누군가를 울고 웃게 하는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백지에도, 예쁜 편지지에도 글을 스스럼없이 써 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날이 오길, 스스럼없이 쓸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