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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헤어졌던 순간에는... 30화

약간 피폐한 로맨스 소설

by 맑고 투명한 날

김 과장은 그런 모습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단 한 명의 사원도 김 과장에게 다가가거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사무실에 있는 모든 사원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날 걱정했다.


자신의 곁에는 아무도 없는 김 과장을

더욱 비참하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외톨이...


그랬다. 김 과장은 철저하게 외톨이였다.

학교에서는 이걸 왕따라고 부른다.


그래. 김 과장은 그 더러운 성격 때문에

인심을 모두 잃어 오늘날 이렇게 된 거다.


우린 옥상에 올라 모두 담배를 피웠다.

시원한 한강 바람을 쐐서 그런지 김 과장 때문에 받았던 열이 식는다.


"우리 이제 사무실로 돌아가자고... 업무 시간인데 모두 이렇게 나와 있으면 오해받기 딱 좋아."

"최 대리님 괜찮으세요?"

"괜찮으니까. 사무실로 모두 가자고."


우린 그렇게 다시 사무실로 내려왔다.


그런데...


사무실은 내가...

아니 사무실에게 근무하는 모든 사원이 전혀 예상 못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이... 이게... 뭐야?"


사무실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키보드며 모니터... 마우스 등등...

모든 것이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엉망이 되어 있었다.


사무실에 남아 있던 사람은 딱 한 명...

바로 김 과장 한 명뿐이다.


"어휴... 철저하게도 부셔 놓았네."

"이건 내 노트북인데..."

"내 태블릿도 완전 박살을 내놓았잖아!"

"이게 얼마짜린데... 박살을 내놓은 거야?!!"


여기저기서 사원들이 탄식과 불만 섞인 고함.

그리고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어떻게 3살 먹은 아이도 하지 않을 이런 황당한 짓을..."


난 얼른 과장 자리로 갔다.

김 과장 책상 위도 엉망인 건 마찬가지였다.


사무실에서 자기편은 하나도 없고

모두 날 따르며 함께 사무실에서 나간 것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인 것 같은데.

정말 너무나 유치했다.


"대리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게 얼마짜린데... 남의 물건을 이렇게 박살을..."

"이건 봐주지 말고 고소해야 합니다."


사원들이 흥분해 점점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이게 다 뭐 하는 거야?!!"

"앗... 차장님... 엇... 부장님..."


그때 부장님이 차장님을 대동하고 함께 사무실로 들어왔다.


"최 대리, 김 과장 그 인간은 어디 갔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참 잘한다. 잘해!"


이 차장이 박 부장의 눈치를 살피며 내 옆구리를 살살 찔렀다.


"회사가 놀이터야? 이게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엉?!!"


평소 근엄한 척은 혼자 다하던 박 부장이었는데 지금은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보안팀에서 모니터링하다가 이 지경이 된 걸 보고 자기들이 오겠다는 걸 내가 말렸어. 알아!"


이 차장은 날 대표로 혼내고 또 혼냈다.

나도 잘 안다.

박 부장 앞에서 이 차장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이런 식으로 자기가 맡고 있는 부서에 문제가 생기면.

자신에게 앞으로의 승진 문제에 있어

절대 좋지 못하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건 나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가장 큰 문제는

이 차장이 희생양으로 삼은게

바로 내가 되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지만 말이다.


"이 차장."

"예, 부장님."

"김 과장을 당장 찾아서 내게 보내고, 여기 있는 모든 사원들은 지금 당장 경위서 써서 내게 가져와!"


박 부장은 그 말을 남기고는 곧바로 사무실에서 나갔다.

이 차장은 박 부장 말을 듣고 잠시 날 노려보았다.


"부장님 말씀대로 최 대리가 책임지고 김 과장 찾아오고 다른 사원들에게 경위서 받아서 당장 내게 가져와. 알았어?!!"

"예... 알겠습니다."

"어휴... 내가 어쩌다 이런 병신들이 싼 똥이나 치우고 있어야 하는지 원..."

"..."


이 차장이 사무실에서 나가고 난 뒤. 사무실 직원들은 알아서 자기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다른 사원들처럼 헝클어진 책상 위 물건을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김 과장을 어디서 찾으며

이런 경위서는 쓸 줄도 모르는 요즘 신입 사원들에게

언제 또 그걸 일일이 가르쳐서 받아다 이 차장에게 가져다주냐는 거였다.


다들 불만이 폭발하기 직전이다.

그런데 그전에 내가 핵폭탄 터지듯 먼저 터질 것 같았다.


핸드폰으로 김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전원이 꺼져 있어 전화를 받을 수 없사오니...]


난 김 과장에게 또 전화했다.


[지금은 전원이 꺼져 있어...]


또 전화했다.


[지금은...]


"하아... 돌겠네!!!"


화가 가득한 한마디를 내뱉자. 모두가 내 눈치를 살폈다.


"어쩔 수 없지... 전부 경위서부터 먼저 쓰자고."


그때 한 사원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왜 그러는데?"

"저 대리님... 경위서가 뭔지... 그리고 어떻게 쓰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긴 그럴 것이다.

이건 나도 예상하고 있던 거다.


"그건 말이야... 시말서랑 똑같은 말인데... 한자 말 그대로 사건의 처음과 끝을 모두 설명하라는 거지. 그러니까 잘못한 거나 규정을 위반한 것이 있으면 그 사실 관계에 대한 경위와 본인 입장, 그리고 재발 방지 약속 같은 걸 쓰라는 거야."

"그럼 이것 때문에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합니까?"

"당연하지. 이걸로 징계 수위를 결정하거나. 나중에 인사 관리 때 참고... 아니 참고 정도가 아니지 그걸로 인사할 때 근거자료가...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다들 우리나라에서 좋다는 대학교. 상위권 대학을 나온 놈들인데.

이런 것은 아는 게 거의 없다.


"그럼 그런 불이익을 피하려면 경위서 작성할 때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 누가 회사에 제출하는 경위서 나부랭이나 쓰면서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그러면 안 되는데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런 건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맞아요. 지금 최대리 님이 가장 곤란한 처지인데..."


그래도 사원들이 날 걱정해 주었다.

아무리 요즘 신입들이 싸가지가 없다고 해도 이런 눈치는 있었다.


"미... 미안해. 내가 지금 너무 힘들어서 그런지... 감정 조절이 잘 안 되네... 갑자기 소리 질러서 미안해."


내가 분명 바로 사과를 했지만. 자존심이 너무 강한 신입 사원들은 상처를 입은 거 같았다.

이런 분위기가 참 난감하고 어색했다.


**


김 과장은 끝까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원들에게 경위서 쓰는 방법을 알려주고 업무 대신 그걸 모두 쓰게 한 뒤.

이 차장에게 갔다.


"김 과장은 연락 안돼?"

"죄송합니다."

"아니 지금 나이가 몇인데... 무슨 애들도 아니고 이게 뭐야."

"죄송합니다."


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계속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 놈의 회사를 때려치우지 못하는 한.

앞으로도 내 잘못이 전혀 없어도 이런 일은 계속해서 반복되어 벌어질 것이다.


"부장님한테 깨질 걸 생각하니까... 아니지. 최 대리도 나랑 함께 부장님께 가자고."

"제... 제가요?"

"나랑 같이 가. 김 과장이 없으면 자네라도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냐!!"

"..."


그렇게 난 부장님 실에 들어가 한참을 깨졌다.

왜 이 차장이 그렇게 몸서리 칠 정도로 부장에게 깨지는 걸 싫어하는지 똑똑히 알 거 같았다.


박 부장실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이 차장실로 또 들어가 깨지고 또 깨졌다.

이젠 그냥 포기했다.

군대에서도 이렇게까지 깨진 적은 없는 것 같았다.


'이런 젠장... 군대도 아니고 사회에서 이런 식으로 더 깨지다니...'


오늘 하루 일진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았다.


**


난 사무실로 돌아가 잠시 바람 좀 쐬겠다고 하니 모두 그러라고 한다.

난 옥상으로 올라왔다.


담배를 입에 무는데 정말 눈물이 날 것처럼 억울했다.

부장과 차장에게 멘털이 털려도 너무 털려 정신이 완전히 나갔는지.

라이터로 불도 붙이지 않고 담배만 입에 물고 있었다.


'하아...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나...'


특히나 날 힘들게 한 건.

일주일 동안 강제 무급 휴가를 당했다는 거였다.


표면상의 이유야

엉망이 된 사무실을 재정비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지만.

아니다. 그게 진짜 이유가 아니라고.

마음만 먹으면 오늘 당장 복구가 가능한데도 일주일이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그것 말고도 다른 일이 벌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난 정직이다.

직장 생활 중에 이런 벌칙을 당했으니

앞으로 이 회사에서 승진은 완전히 물 건너갔다고 보면 된다.


이걸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엄청난 이득을 회사에 주거나

아니면 내 앞에 승진할 놈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


결론적으로 이런 일은 벌어지기 극히 힘든 일이고

당연스럽게 난 앞으로 이 회사를 다니며

승진될 확률은 거의 0에 수렴한다는 뜻이 된다.


만약 진짜 운이 좋아 승진 대상자가 된다 해도

가장 나중에 내가 승진이... 그것도 될까 말 까다.


그야말로 회사 내에서의 내 인생이 제대로 꼬인 거다.

간신히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 후우..."


나도 모르게 애꿎은 담배 연기만 연신 내뿜는다.

하지만 아무리 담배 연기를 내뿜어도

까맣게 타들어가는 속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


어찌어찌 퇴근 시간이 되었다.

우리 사무실에 있는 전 사원은 강제로 일주일 동안 무급 휴가다.

우리 부서원들은 다른 건 몰라도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는 눈치다.


정말 개 같은 하루다.


난 회사 지하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타고선 또 담배를 입에 물었다.

웬만해서 차 안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려고 했는데... 오늘은 그게 힘들다.


난 핸드폰을 들어 지소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전원이 꺼져 있어...]


"에이 쌍...!!!"


나도 모르게 욕이 절로 나온다.

난 담배를 연속으로 3개나 피우고 난 뒤.

마음을 간신히 추슬렀다.


"그래. 오늘 소영이랑 완전히 끝내자. 끝내자고. 나도 지겨워서 더 이상은 안 되겠어."


난 차를 몰아 우선 집으로 갔다.

집에 오자마자 꼼꼼하게 샤워를 해 담배 냄새를 최대한 없앴다.

옷도 새 옷으로 갈아입고 지소영 집으로 갔다.


화가 많이 나거나 나 자신이 주체가 안 될 땐.

될 수 있으면 운전을 하지 않는다.


이럴 때 운전대를 잡으면 사고 날 확률이 엄청 높아진다.

난 전철을 이용해 지소영 집까지 갔다.


하지만 지소영 집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졌다.

우린 싫든 좋든 2년이나 사귀었다.


아니야. 이래선 안돼.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내가 자꾸 이랬다 저랬다 하면 우리 모두에게 불행만 오니까.

난 마음을 다잡고 소영이 집에 거의 다 도착할 때쯤이었다.


지소영 집이 보이는 길 모퉁이에 서서 마음을 다 잡고 있는데...

소영이가 아주 익숙한 사람과 함께 집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아니... 저건... 성호잖아!!!'


나도 모르게 몸을 숨겼다.


"오빠, 고마워."

"고맙긴."

"오빠 아니었으면... 난 지금도 너무 힘들었을 거야."

"내가 잘 말해 볼 테니까. 너무 걱정 마."


지소영은 고개를 숙이고 한 발을 비비 꼬면서 성호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서성호는 지소영의 어깨를 자꾸 툭툭 두드렸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난 그걸 보며 갑자기 엄청난 질투심이 솟구쳤다.


"야! 지금 뭐 하는 짓들이야!!!"


난 미친 듯이 한 걸음에 뛰어가 성호의 멱살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서... 성근아... 으윽..."


엄청난 분노에 눈이 돌아간 날 보고 성호는 엄청 당황했다.


"두... 둘이 뭐 했어? 소영이 집에서 뭐 했냐고?!!"


난 화를 주체 못 하고 성호의 멱살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컥... 컥... 서... 성근아... 이... 이거 좀..."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지는 서성호.

겁에 잔뜩 질려 날 바라보는 지소영을 무섭게 노려 보았다.


"너... 성호랑 뭐 했어? 지금까지 방에서 성호랑 뭐 했냐고?!!"


난 호랑이가 포효하듯 소영이에게 소리쳤다.




31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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