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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y Nov 27. 2024

헌치백과 서발턴

2024.11.24

이치카와 사오의 헌치백을 읽고


 주인공 샤카는 선천성 근육병증을 앓고 있는 중증 장애인으로, 꽤나 건실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트위터 익명 계정으로 임신, 중절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불온한 여성이기도 하다. 소설의 메인 로그라인을 보았을 때는 영화 <오아시스>가 떠올랐다. 실제 작가가 집필 이전에 해당 작품을 흥미롭게 보았다는 인터뷰를 볼 수 있었다. 비당사자로써 언제나 이런 작품을 접할 때면 불편한 마음이 든다. 우리가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세상을 기어코 내 눈앞에 대고 상영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특히 작품의 경우, 일반 소설책과는 다르게 인터넷 말투나 신음 같은 것들이 그대로 드러나 '생활밀착형 불편함'이 더욱 가중되었다.


사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독서 배리어 프리'라는 대목이었다. 종이책 독서가 비장애인을 위한 엄청난 특권이라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샤카와 비슷한 병을 앓고 있는 중증 장애인에게는 종이책은 대단한 파괴행위이다.


p37~38.

나는 종이책을 증오한다.

'눈이 보이고 책을 들 수 있고, 책장을 넘길 수 있고, 독서 자세를 유지할 수 있고, 서점에 자유롭게 사러 다닐 수 있어야한다'라는 다섯가지의 건강성을 요구하는 독서 문화의 마치스모를 증오한다.

그 특권성을 깨닫지 못하는 이른바 '서책 애호가'들의 무지한 오만함을 증오한다.

구부러진 목으로 겨우겨우 지탱하는 무거운 머리가 두통으로 삐거덕거리고, 내장을 짓누르며 휘어진 허리가 앞으로 기운 자세 탓에 지구와이 줄다리기에 자꾸만 지고 만다.

종이책을 읽을 때마다 내 등뼈는 부쩍 더 휘어지는 것만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 뾰족한 대안은 나온 적이 없다. 비장애인들은 종이책을 넘기는 감촉과 향기를 운운하며 종이책을 '낭만'과 '감성'으로 대하기 바빴을 뿐이다. 일본 출판계는 오디오북 작업이 진행될 때 저작권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장애인의 읽을 수 있는 권리를 수십년 늦추었다고 한다. 한국 또한 다르지 않다. 독서율이 지속해서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책을 만들기란 여간 쉽지 않아 보인다.


"2021년 국민독서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율은 47.5%인 반면, 2020년 장애인 독서활동 실태조사에서 발표한 장애인 독서율은 26.6%이다. 2019년 국립장애인도서관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대체자료 제작률은 4.8%로 비장애인이 도서 100권을 고를 때, 시각장애인은 단 4권만 선택할 수 있는 현실이다."


가야트리 스피박이 이야기한 '서발턴'은 입을 가졌으나 말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서발턴은 주류 사람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그들의 주관에 맞게 재현된다. 읽을 수 없는 장애인들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는 '서발턴'이다. 지금의 장애인은 지원을 받아야하는 시혜적 대상정도로 그려진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같은 타락적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묘한 불쾌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모두가 읽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장애인도 훌륭한 창작자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며, 각자를 진정으로 마주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회가 오길 꿈꾸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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