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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나의 힘 (2003)

by 카마 Jan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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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의 도움 없이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세상과 부딪혀 꿈을 이루고자 애쓰는 대학원생 원상(박해일)과 전형적인 올드머니를 소유하고 있으며, 문학과 글에 관한 빼어난 감식안과 재능으로 잡지사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윤식(문성근)이 캐릭터의 대척점으로, 이들의 갈등과 관계 맺음 사이에 내재된 긴장감이 서사의 주된 흐름을 이끄는 영화다.

  영화 속 원상과 윤식은 서로 대조되는 캐릭터로 여러 면에서 상반된 면모를 지니고 있지만, 둘의 관계는 일방적이다. 윤식은 자신과 다른 원상에게 호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자신이 마음 내키는 대로 표현하고, 상대의 감정 따위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행동들이 원상에게 큰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때로는 호의로 그에게 전해지기도 한다. 그에게는 가진 자의 여유가 온전히 느껴진다.

  하지만 원상에게 윤식은 자신의 연인을 앗아간 사람이자, 그가 좋아하는 또 다른 여인 성연(배종옥)마저 내연녀로 만들어 버린 마성의 소유자다. 게다가 윤식은 원상이 가지지 못한 넉넉한 뒷배경을 지니고 있으며, 편집장으로서의 능력마저 출중하다. 애초에 원상에게는 게임조차 되지 않는 상대다. 처음에는 질투의 감정으로 원상에게 다가가다, 상대조차 되지 않는 원상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된다. 원상의 마음속 적대감이 질투, 동경과 뒤섞여 모호한 관심으로 표출되고 원상은 윤식의 묘한 인간미에 이끌린다.

“아마 공부도 많이 했고, 집도 부자일 거예요.”
  원상의 삶을 이끄는 원동력은 질투다. 자신이 갖지 못한 유복한 환경에 대한 질투가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힘이 되었고, 잡지사에서 임시직을 얻고 편집장의 눈에 들어 인정을 받는 과정도 편집장에 대한 질투에서 비롯되었다. 원상이 자유분방한 수의사이자 사진작가인 성연에게 다가간 것도 사랑보다는 질투의 힘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원상의 질투에는 뭔가 섬뜩한 구석이 있다. 원상은 ‘집도 없고, 돈도 없고 남은 게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윤식의 마음을 얻어 살 집도 얻고, 일자리도 얻는다. 그리고 윤식의 하나뿐인 딸의 마음도 얻었다. 질투를 넘어서는 큰 그림의 복수가 그려진다.

  이 영화는 꽤 섬세한 감정묘사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속을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인물의 심리가 섬세하면서도 독특하게 묘사되었다. 좋아도 좋은 것 같지 않고 뒷맛이 개운치 않은 느낌이랄까 그런 감정의 찌꺼기들을 선명하게 감각할 수 있도록 표현했다. 박찬옥 감독의 다른 영화 '파주'와 알듯 모를듯한 심리를 묘사하는 방식이 유사하다. 박찬옥 감독의 심리 묘사나 인물을 그리는 방식이 꽤 매력적인데, 영화를 많이 만들지는 않아서 아쉽다. 박해일은 이때부터 이미 될성부른 싹을 보여줬다. 박해일의 깊이 있고 묵직한 눈빛과 연기가 꽤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배종옥과 문성근의 연기 역시 너무 좋았다. 특별한 캐릭터를 지닌 영화적 인물이 아닌 삶의 주변에 눈을 돌리면 어렵지 않게 보일듯한 인물들을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모습이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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