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을 방랑한 김삿갓의 그 아픔에 대해
얼마전 비슷한 또래의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저녁식사한 후 담소를 위해 옆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자리였습니다.
60 후반 70초의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간 사람들이지요.
그래도 노인들 특유의 모임이었고 젊은 회사원(젊다해도 50대에 들어선)이 참여하였습니다.
식사 후 맛있는 쿠키와 커피를 나누며 도란도란 대화에 빠져들어 가며
이런 저런 젊은 시절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기분이 좋아지자 참여자 가운데 한 분이 젊었을 때 화류계를 쥐락펴락하던
이제는 흘러간 시절의 이야기를 구수하게 풀어 놓았습니다.
그는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젊은 시절에 대한 회환을 이야기 했습니다.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들이킨 이야기, 술 취한 김에 홍등가에 가서 논 이야기를
실감나게 떠들며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속으로 갑자기 오래전에 외웠던 한 시가 생각났습니다.
인터넷에 이 시에 대해 많은 오타와 엉터리 번역이 난무하고 있더군요.
아마 전해진 버전이 달라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아마 다음 버전이 가장 정확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제가 나름 번역해 보았습니다.
靑春抱妓千金芥(청춘포기천금개) 젊은 청춘이 기생을 품으니 천금이 티끌과 같고
白日樽萬事雲(백일당준만사운) 밝은 대낮에 술잔을 받으니 만사가 뜬 구름과 같구나.
鴻飛遠天易隨水(홍비원천이수수) 먼 하늘을 나는 기러기는 물길을 따라 날고
蝶過靑山難避花(접과청산난피화) 청산을 날아가는 나비는 꽃을 피하기 어렵구나.
우리가 잘 아는 김삿갓의 시입니다. 그는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과거에 제출한 답안이 조상을 비난한 것을 알고 부끄러워
평생을 가정을 떠나 삿갓을 쓰고 천하를 주유했다 합니다.
1807년에 출생하여 1864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칼 마르크스나 미국의 링컨과 같은 시대를
살았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외척이 날뛰고 외국의 군함이나 상선이 해안을 기웃거리기도 한 시기죠.
그에 대한 무수한 영상과 글이 남아 있어 그에 대한 정보는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국한문 혼용 시대에 산 그는 한문과 한글의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 시귀를 많이 남겼습니다.
가령 자신에게 푸대접한 사람의 뒷 뜰 정자에 귀할 귀자와 아름다울 나자를 써서
귀나당(貴娜堂)으로 지어 줍니다.
주인은 귀하고 아름다운 정자에 어울리는 좋은 이름이
라고 좋아했지만 김삿갓의 의도를 알아차린 친구가
이를 거꾸로 읽으면 당나귀가 된다 알려 주자 화를 냈다는 이야기 따위가 그렇습니다.
어릴 적 어른들로 부터 들었던 국수한사발이 중의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배웠던 기억을 되살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은 글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역시 한문으로 보면 근사하지만 우리 말로 읽으면 욕이 되는 시입니다.
한번 보시죠.
天長去無執(천장거무집=하늘은 멀어 가도 가도 잡을 수 없고)
花老蝶不來(화로접불래=꽃이 늙으니 나비도 오지 않는구나)
菊樹寒沙發(국수한사발=국화꽃 쓸쓸한 모래밭에 피어 있고)
枝影半從地(지영반종지=나뭇가지 그림자는 땅에 닿을 듯 늘어졌네)
江亭貧士過(강정빈사과=강가 정자를 가난한 선비가 지나가다가 )
大醉伏松下(대취복송하=크게 취해 소나무 밑에 엎드렸구나)
月移山影改(월이산영개=달이 기우니 산그림자 바뀌고)
通市求利來(통시구이래=장꾼들은 시장을 통해 이익을 얻어오네)
이제 한글로 읽어 봅시다.
천장은 연기에 그을어 거무접하고
화로에는 겻불(겨를 태우는 불) 냄새가 나네.
상 위에 국수가 한 사발 놓여 있고
지렁(간장)은 반종지네.
제사상에는 강정과 사과는 없고
대추와 복숭아만 놓여 있구나.
월이! 하니 사냥개가 오고
통시(변소)에는 몹시 구린내가 나네.
갑자기 친구들과 나누었던 화류계 이야기에서 김삿갓 이야기까지 흘러 왔네요.
다행인 것은 우리들 노인네들이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은 시간이 늦은 시간이라
카페안에 별로 손님들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요즘 주변을 무시하고 안하무인으로
떠드는 노인들이 얼마나 많은 지...
우리 모두에게 Old Good Days 는 지나갔지만
그래도 웃음 머금고 살아가자는 의미로 글 올려 봤습니다.
모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