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존재했던, 존재하는, 존재할 망고에게 해 주고 싶은 말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나 버렸는데. 살아갈 이유를 찾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주변에선 다들 힘들다고 푸념하지. 네 고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더 힘들었다고.
모두가 아프면 네 고통은 쉽게 묵살될 수 있는 걸까.
빅터 프랭클이 반 세기도 전에 말했지. 고통은 기체의 흐름과 같다고.
어느 정도의 양이 있든 모두 넓게 퍼져 우리의 의식을 가득 채운다고.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아팠든 간에, 지금은 네가 제일 아픈 사람인데.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지금까지 잘 버텨준 너인데.
죽지 말라고 매달리지 않을게. 네 행복을 빌지도 않을게.
그냥 수고했다고, 이 한 마디만 전해 주고 싶어.
하루하루를 살아낸다는 가장 대단한 행동의 가치가 과소평가되는 세상에서 정말 고생 많았어.
지금까지 많이 힘들었지. 수고했어.
망고의 첫인상
과일 사진을 찍을 때 우리는 그 과일의 속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을 포착하려 한다. 속살을 과감하게 드러내거나, 반대로 껍질을 고스란히 보존한 채 촬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박은 큼직하게 부채꼴로 잘라 시원하게 붉은 과육을 드러낸다. 포도는 탐스러운 송이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정성스럽게 배치해, 알알이 맺힌 싱그러움과 풍성함을 강조한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 우리의 머릿속에서 그 과일 전체를 대표한다.
각종 과일 사진 혹은 그림을 볼 때마다 의아하게 생각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단단한 과육을 지닌 과일은 속살이 드러나게끔 잘라 두고, 부드러운 식감을 지닌 과일은 껍질채로 씻어 올려두는 경우가 많은데, 말랑한 과일인 망고는 왜 잘라 두는 걸까. 그것도 한두 개로는 모자라는지, 여러 개의 칼집을 내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 이유를 크게 세 가지 정도로 꼽아 볼 수 있었다. 첫째, 씨앗이 크고 납작하게 가운데 박혀 있어서 그냥 자르면 과육이 씨에 많이 붙거나 모양이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과육이 부드럽고 즙이 많아서 칼집을 내어 자르면 뭉개짐 없이 본래의 식감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칼집을 내어 자르면 예쁘게 플레이팅 할 수 있고, 한입에 먹기에도 용이하다.
'아름다운 사진'을 위해서 예쁘게 잘려야 하는- '먹는 사람의 편의'를 위해서 깔끔함을 유지해야 하는 망고가 안쓰러움과 동시에 이제껏 유지해 오던 평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학교에서는 '얌전한 학생'으로 지내오고 집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하던, 나 자신보다 내 주변의 다른 이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부드럽고 말랑한 마음에 스스로 칼집을 새겨 온 제2의 망고.
MBTI
꽤 오랫동안 'MBTI'라는 것이 유행했음에도 내가 풀로(?) MBTI 테스트를 해 본 건 올해 3월~4월쯤이다. 그전까지는 다른 친구들에게 모른다고 하는 한이 있어도 절대 테스트를 시도해 보지 않았다. 총 열여섯 개의 성격 유형. 그걸로 어떻게 사람들을 나누는 거냐고, 그런 거 안 믿어서 테스트 안 해 봤다고 말하면 친구들은 별 시답잖은 질문을 몇 가지 던진 후 자기들끼리 내 MBTI를 추측해 보았다. 테스트를 함께 해 보자고 제안한 오래된 친구의 권유를 거절할 때도 마찬가지로 같은 핑계를 댔다. 표면상 이유는 그것이었고 더 정확한 이유는 어떠한 성격 검사도 나를 반영할 수 없으리란 자조 섞인 회의 때문이었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어디서 처음 본 평가 방법이 함부로 내 성격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랑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 A는 자꾸만 나의 MBTI를 맞춰 보려 했다. 너는 이러이러하니까 이런 성격 유형일 것 같다. 하는 A의 말을 듣고 있자면 그 애에게 되묻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MBTI 성격 유형에 혹시 정신병자도 있니?
-사람 성격을 칼로 베듯 구분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나도 나 자신을 몰라.
-우리 중학교 1학년 국어 시간에 배운 가설 검증 바이어스, 혹시 기억해?
물론 속으로만 생각하고 A 앞에서는 늘 같은 표정으로 같은 핑계를 댔지만, 정말 한 번쯤은 그렇게 말해 버리고 싶었다.
A와 나는 같은 고등학교에 다닌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A가 내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1. 너 요즘 행복해 보여.
2. 너 옛날하고 많이 달라졌어.
3. 너 T야?
그렇다. 내가 A라도 중학생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지내는 것처럼 보일 것 같다. 작년의 나를 보면서도 A는 같은 말을 했다. 주변에 우울을 드러내지 않으려 참 노력을 많이 하기는 했다. 큰 소리로 웃고 밝은 표정으로 학급의 일을 도맡았다. 수업 시간에는 모르는 내용이라도 그냥 대답했다.(그런데 어떤 선생님께서 생기부에 '모르는 것이 있어도 주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함'이라고 적어 주셨다. 선생님 저 그때는 그게 하루를 버티는 최선의 방법이었다고요.. 생기부에 그렇게 박제하신 건 너무해요ㅠ) 그리고 겉옷 안주머니에는 커터칼을 넣어 다녔다. 외부에 의해서 바깥쪽부터 칼집이 나는 망고와는 반대로, 내게는 나에 의해서 안쪽부터 칼집이 새겨졌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나는 옛날보다 더 행복하고 더 활동적으로 비쳤을 것이기에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그러려니 했다.
내가 거북하게 느낀 건 다름 아닌 세 번째였다. 너 T야? 하는, 아주 짧은 말 한마디. 친구들은 MBTI에 대해 잘 모르는 내게 'T는 이성적, F는 감성적'이라고 알려 주었다. 너 T야? 에는 많은 표현이 내재되어 있었다. 공감을 잘 못해준다, 똑 부러지고 이성적이다, 정이 없다, 감정에 잘 휘둘리지 않고 냉철하다,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등등. 하지만 그 친구는 내게 좋은 뜻으로 그런 말을 해 준 것이기 때문에 A 앞에서 대놓고 싫은 내색을 하기가 어려웠다. 왜 그 말이 특히 불편하게 와닿았는지, 그 근거가 되는 합리적인 이유도 찾지 못한 상태였다.
나와 닮은 과일, 망고
스마트폰 이모지를 들여다보는 건 오래전부터 내 취미 가운데 하나였다. 어느 평범한 날, 그날도 별 의미 없이 이모지들을 쭉 넘겨 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바로 정체를 판단하기 어려운 이모지를 하나 발견했다. 과일 같았지만 직관적으로 무엇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라고 생각되는 이모지. 잠깐 검색을 해 보니 이모지가 나타내는 과일이 망고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게 망고라고?' 분명히 망고 그림이었지만 부드러운 과육과 물기 어린 겉모습 대신 딱딱해 보이는 표면을 지닌 그림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이모지는 꼭 완전히 익지 않은 어린 과실을 닮았네. 덜 익은 과실이 딱딱한 표면과 파랗게 질린 색채를 띠고 있는 건 아직 성숙하지 않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처럼 보여.'
그 순간 망고라는 과일이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나를 밖으로 드러내는 게 아프고 힘겨운 이유는, 아직 채 여물지 못한 어린 마음을 어른의 그것과 같이 취급하려 한 성급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제야 "너 T야?"라는 말이 묘하게 거슬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타인에게 무시받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내세우는 사회적 가면, 가면 뒤에 숨어 웃고 울고 화내며 조금씩 자라나고 있는 진짜 나. 나에게조차 외면받았던 진짜 '나'도, 다른 사람에게까지 무시당하는 건 견딜 수 없었나 보다.
망고의 숙명은 결국 예쁘게 플레이팅 되고 먹기에 편안한 크기로 잘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미래의 언젠가에는 내가 아닌 남을 위해 희생하고 마음을 기울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세상에 달콤함을 선물해 줄 수 있는 '망고'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깊은 곳의 씨앗과 가장 바깥의 껍질이 모두 향긋한 여운이 될 수 있도록 익어 가는 과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은 천천히 자라는 존재라고들 한다. 나 또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함부로 내팽개쳐 두었던 씨앗을 이제야 갈무리했다. 먼 훗날 부드럽고 잘 익은 망고가 되어 외로운 존재들에게 한 스푼의 달콤함을 전해 주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그 꿈을 가지게 해 준 망고 덕분에, 오늘도 나는 망고로 살아갈 수 있어 감사하다. 망고라는 이름으로 글을 쓸 수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