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날개는 밤보다 더 짙은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타락의 상징, 죄의 흔적.
그는 그것을 감추기 위해 검은 망토를 깊게 여몄다.
마치 세상 그 자체가 그를 거부하고 있는 듯 날개는 그의 어꺠를 짓눌렀다.
처음 발을 들인 마을은 그를 환영하지 않았다.
굶주린 이들 속에서 그 또한 배고픔을 느껴 떨어진 빵 조각을 집어 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상인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외쳤다.
“저 망토 속에 무언가 있다! 저건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야!”
순식간에 돌들이 날아들었다. 그는 피하지 않았다.
돌이 이마를 갈라 피가 흘러내렸고 고통으로 주저 앉았지만, 인간들의 두려움 어린 시선이 그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하늘에 있을 때는 알지 못했다.
인간은 낯선 존재를 이렇게까지 배척한다는 것을.
쓰러진 그의 곁에 한 노파가 다가왔다.
모두가 등을 돌릴 때, 그녀만은 그의 망토를 젖히고 상처를 살폈다.
순간 검은 날개가 드러나자, 주위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쳤다.
하지만 노파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저 날개가 무슨 죄란 말이오.
이자도 우리처럼 상처 입은 자일 뿐입니다.”
그 말에 그는 잠시 숨이 막히는 듯했다.
검게 변한 날개는 신이 내린 벌이라 생각했는데, 인간의 눈에는 그저 상처로 비쳤다.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더 이상 천사도, 괴물도 아닌 단순한 ‘존재’로 느껴졌다.
며칠 뒤, 길 위에서 고아 형제를 만났다.
어린 두 아이는 서로의 손을 잡고 추위에 떨고 있었다.
그의 손끝이 저절로 떨렸다.
예전처럼 은총을 내려 아이들을 구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망토 아래 도사린 검은 날개가 그를 붙잡았다.
‘다시 내 손길이 저들에게 화를 부르진 않을까...’
그는 망토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먼저 다가와 작은 빵 조각을 내밀었다.
“아저씨도 배고프죠? 우리도 조금 밖에 안 남았어요.”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의 손바닥 위에 놓인 빵은 작고 초라했지만, 그 속에는 온기가 담겨 있었다.
그는 은총이 아닌 인간 스스로의 선택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검은 날개는 여전히 그의 등에 붙어 있었지만, 그 안에서 무엇인가 미묘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희미하지만, 아주 작은 균열처럼.
그는 느낄 수 있었다.
감정 없는 이성은 생명을 구할 수 없었고, 이유 없는 감정은 질서를 무너뜨릴 뿐이었다.
그제야 그는 진실을 마주했다.
과거, 자신이 연민 하나만으로 선택을 했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 갈등과 오해, 혼란을 불러왔는지. 그리고 천사들의 이성만을 따르던 판단이 얼마나 차갑고, 불완전한 것이었는지를...
그는 이제 깨달았다.
진정한 균형은 연민과 이성이 충돌하는 곳이 아니라, 그 둘이 서로를 존중하고 보완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천사들은 모든 것을 이성으로만 판단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반대로, 나는 감정에만 치우쳐 균형을 깨뜨렸다. 인간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성과 감정을 조화롭게 사용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는다. 진정한 조화는 이성과 감정이 함께할 때 이루어진다.”
그는 더 이상 후회하지 않았다.
대신, 인간들이 서로의 고통과 기쁨을 감정으로 바라보면서도, 이성을 통해 그 감정을 다스리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깨달음이 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순간,
그의 검게 물든 날개 위로 서서히 은빛 안개 같은 회색이 번져갔다.
그것은 더 이상 하늘에서 내려온 힘이 아니었다.
벌처럼 주어진 것도, 은총처럼 베풀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의 깊은 절망과 후회, 그리고 마침내 얻은 깨달음이 스스로를 태워내듯 날개 끝에서부터 잿빛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마치 어둠과 빛이 서로를 감싸 안듯, 그 색은 밖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서 솟아난 힘이었다.
검은 깃털은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그 속에는 스스로 길어 올린 부드럽지만 단단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이 잿빛 날개는 내가 저지른 실수를 잊지 않도록 나를 경고할 것이다. 그리고 이 회색빛은 내가 얻은 깨달음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밝혀줄 것이다.”
그는 천천히 자신의 날개를 펼쳤다.
한때는 오만했던 날갯짓이었지만, 지금은 조심스럽고 묵직했다.
그의 옷도 변화했다.
먹빛의 옷자락이 서서히 밝아지며, 회색과 은빛이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빛으로 물들었다. 그 색은 찬란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은은함 속에서 안정감과 신뢰가 느껴졌다.
그는 이제 더 이상 타락한 천사가 아니었다.
이성과 감정의 균형을 이해하고, 그것을 돕는 길을 걷는 존재였다.
그의 잿빛 날개와 옷은 과거의 실수를 상징하는 어둠과, 새로 얻은 깨달음을 상징하는 빛이 공존하는 표식이며 힘이었다.
그 순간, 그는 느꼈다.
자신이 더 이상 하늘의 명령에만 의존하지 않고, 인간 곁에서 스스로 판단하며 길을 열어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