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쯤
글자가 뒤집혔다는 말을 꺼낸 적이 있다.
내가 써두었던 모든 글이, 감정이
정말 '내 것'이 맞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나를 솔직하게 꺼내어 둔 문장들인데,
다시 들여다본 돋보기 속 글자가 전부 흔해져 있었다.
어디선가는 본 듯한 표현,
이런 생각은 다들 이미 했지 않을까?
적당히 해야 하는 고민들이
적당히를 넘어 잣대가 되어버리니
한 줄을 써내기도 버거운 시간이 되었다.
'저작권'이라는 말은
내게는 먼 단어라 생각했다.
나는 그저
나를 써 내려가고 싶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세상의 기준을 이해하려 하다 보니
나라는 존재는 어디까지가 '나'일 수 있으며,
내가 쓰고 건네는 표현들은 어디까지가
'내 것'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엊그제 본 문장을
그대로 써내었다면
그건 내 마음에도 부끄러운 일이었을 거다.
감정을 표현하는 모든 예술 활동의 순서에 의미를 둔다면.
오늘 내가 느낀 이 감정은 표절이 되는 걸까.
감정을 꺼낼 수 있는 표현 자체의 한계.
사람이라는 공통분모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경계.
비슷한 감정은 누구에게나 생겨날 수 있다.
그렇기에,
각자의 감정을 겪어낸 모든 '시간'과 '방식'
그 자체만으로 고유한 것이라 생각한다.
저작권 공모 공지는 진작에 봤다.
마감일이 돼서야 내 생각을 꺼내보는 이유는
'진짜 내 생각'을 써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공모전에는 늘 정해진 주제가 있고,
어쩌면 '정답'이 정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그 '정답에 가까운' 답변을
그럴듯하게 써내는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주저함과 질문으로 채운
생각과 글은 창조가 아닐까.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내 책'을 쓰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 이후
나는 더 혼란스러웠다.
일기가 아닌 글을 쓴다는 것에 낯설었던 나는
AI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다.
감정을 한 줄로 던져주기만 해도
그럴듯한 글자가 나열되는 시대.
그 안에서 조금 더 나를 담기 위해
나만의 말투로, 나만의 감정을
솔직하게 전하고자 한다면
그건 '내 글'이 맞지 않을까?
아니. 맞다고 믿는다.
물론, 나와 같은 주제의 글을 발견하면
그 사람의 발행일을 찾아보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고유함을 더 단단히 만들어 가려한다.
내 감정의 유일한 저작권자.
이 문장을 책임지며 살고 싶다.
조금 느리고 서툴더라도,
나는 오늘의 나를
내 방식대로 기록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