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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망초가 말해준 내 마음

-조용히 다시 피어난 기억

요즘은 감정이 잘 떠오르지 않았어요.

슬퍼도 기뻐도, 그저 하루를 살아낸다는 말이 어울렸죠.

연재 글을 쓰려 컴퓨터를 켜는 지금,

문득 오래되지 않은 기억 하나가

나를 조용히 불러냈어요.


설명하기 어려웠던 모든 순간과 감정들.

그때의 나는 그렇게도 버거워했는데,

오늘의 나는 이상하게 다시 설레였어요.


울음 뒤에도 다시 피어나는 설렘이 있다는 것에

아, 나 아직 괜찮구나.

감정이 아예 사라진 게 아니라

흐를 준비를 하고 있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어요.


그 감정을 데려온 건

공원보다 작은 도심 속 길목에서 마주한 물망초였어요.

햇살을 받아 연보랏빛으로 반짝이던 그 작은 꽃은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죠.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날따라 눈에 띈 건 아마,

내 안에 다시 감정이 흐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겠죠.


물망초의 꽃말이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순간의 나는 오히려 이렇게 느꼈어요.

"잊어도 좋아요."

붙잡지 않아도,

흘러가도,

기억은 언젠가 다시 피어난다는 걸 알았거든요.


그러고 보니 물망초는,

한 번 피고 지면 끝나는 꽃이 아니라

작은 줄기마다 조금씩 시차를 두고 계속 피어나는 식물이더라고요.

마치 기억도 그런 식이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조용히 다른 자리에서 다시 피어나는 것.


그리고 알게 되었죠.

다시 기분이 좋아지는 날은

그 기억이 내 안에서 다시 꽃피기 시작했다는 뜻이라는 걸.


그러니 오늘의 이 작은 기쁨도

꼭 간직하려 애쓰지 않아도 돼요.

그냥 흘러가도 괜찮아요.

기억은 사라지지 않아요.

다시, 다른 모습으로 피어나니까요.


글쎄요.

사라지지 않는 기억이

꼭 예쁘고 고운 기억이어야만 할까요?


슬펐던, 미웠던, 사랑했던, 그리웠던, 열정적이었던

그 모든 순간은

다시 피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피어나고 있는 중일지 몰라요.


당신도, 살며시 떠오른 작은 기억 하나에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졌던 순간이 있었나요?

오늘 하루,


떠오른 기억이 있다면 잠시 머물러보세요.

그건 어쩌면

당신 안의 감정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 증거일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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