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날 수능을 안 보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8년이나 붙잡고 있던 수능과의 이별

by 빠짐표

수능이 하루 남았다. 싱숭생숭하다. 내일 나는 어떤 하루를 보내게 될까? 열아홉 살부터 수능날에는 수능만 봐와서 다른 사람들은 수능날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왠지 내일 아침은 태양이 안 뜰 것 같다. 수능날 수능을 보지 않는 나는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어째 수능 볼 때보다 더 기분이 이상하다. 내일 교수님께서 '오늘 안 온 학생은 수능 보러 갔냐'는 농담을 던지실지도 모른다. 그 농담에 나는 웃게 될까?

나는 스물일곱이 되어서야 수능 외부인(?)이 되었다. 27년 인생의 3분의 1을 차지해 왔던 수능에서 벗어나고 맞이하는 첫 11월이다. 지난 7년 동안 11월은, 온 세상이 나만 빼고 아름다워 보이게 만드는, 그래서 내가 더 미워지게 만드는 못된 달이었다. 11월이 너무 미웠다. 가을도 미웠다. 수능이 다가온다는 걸 직격으로 알려주는 찬 바람이 싫었다. 정확히는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채 수능을 맞이해야 하는 내 자신이 싫었다.

원래라면 오늘 오전에 학교에 가서 수험표를 받아 왔을 거다. 우리 학교는 방문자는 꼭 1층에서 출입자 명단에 인적사항을 기록하고 들어가야 한다. 이름과 연락처, 방문 목적을 남긴다. 안 그래도 아는 사람을 만날까 봐 노심초사하며 온몸을 숨기고 학교에 가는데, 심지어 내 이름과 '수험표 수령'이라는 방문 목적까지 남겨야 한다는 게 너무 싫었다. 혹여나 나를 아는 사람이 '얘는 아직도 수능을 보냐'고 생각할까 봐 무서웠다. 지금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내가 수능을 실패한 데에는 내가 스스로 수능을 보는 것에 떳떳하지 못했던 까닭도 있는 것 같다.

나는 8년 만에 수능과 이별했다. 내가 놓아줬다. 그렇게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그 수능이라는 짐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나의 최선이 어디까지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과 '나의 최선이 어디까지인지 알게 되었다'는 말이 같은 의미일까?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작년 수능을 치고 나서 나의 최선이 어디까지인지 알게 되었다. 매년 수능을 볼 때마다 수능이 일주일만 미뤄지게 해달라고 빌었다. 나에게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지길 바랐었다. 그런데 작년에는 그렇지 않았다. 시간이 더 주어지더라도 이 이상은 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내가 작년에 한 만큼이 나의 최선이었던 거다. 나의 최선이 어디까지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미련 없이 수능을 보내줄 수 있었다.

먼 길을 떠나려면 몸이 가벼워야 한다. 이 수능이라는 놈과 너무 오랜 시간 함께 해서 나와 거의 한 몸이 된 줄 알았다. 그래서 떼어놓기 힘들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글 한 편을 쓰면서 이제야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는 걸 보니, 수능이라는 놈과의 교착이 상당히 심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