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이야기
인간은 본래 욕망하는 존재다. 그러나 그 욕망은 자신 안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모방하는 방식으로 형성된다. 르네 지라르는 이를 ‘모방 욕망’이라 불렀다. 사람은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고, 결국 그 욕망의 대상을 두고 갈등하게 된다. 갈등은 점점 증폭되고, 마침내 공동체 전체로 번지며 폭력적 충돌의 위기를 낳는다. 이때 인류는 자신들의 폭력을 무작위로 분산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일한 대상으로 집중시켜 제거함으로써 위기를 수습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지라르는 이것을 ‘희생양 메커니즘’이라 설명한다.
<폭력과 성스러움(La Violence et le sacré)>에서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인류의 원형적인 폭력과 그 해소 과정을 설명하며, 희생양이 어떻게 신성화되는지, 그리고 그러한 과정이 사회적, 종교적 질서의 기원과 맞닿아 있는지를 탐구한다. 공동체 내 폭력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때, 집단은 임의의 희생양을 정하여 그에게 폭력을 집중시킨다. 희생양이 제거되면, 갈등은 종식되고 공동체는 평화를 되찾는다. 이때 희생양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공동체의 재앙을 가져온 자이자, 그 재앙을 몰고 간 신적인 존재로 재해석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폭력과 성스러움이 연결된다.
이러한 희생양 체계는 단지 고대 사회의 종교적 제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라르는 현대 사회 역시 동일한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인다고 본다. 정치적 희생양, 사회적 소수자, 특정 집단에 대한 폭력적 여론 몰이 등은 모두 과거와 같은 구조로 작동한다. 사회적 불안과 갈등은 누군가를 탓해야 평온해지고, 그러한 희생양이 제거되거나 추방되어야만 질서가 유지된다. 지라르는 이 과정에서 폭력이 종교화된다고 본다. 폭력의 제거와 평화의 회복을 위해 행해진 행위가 ‘신성한 의례’로 포장되며, 폭력은 정당화되고 반복된다.
지라르의 사상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욕망이 타인의 욕망을 모방한다는 점이다. 욕망의 대상은 본질적으로 결핍의 산물이며, 타인이 욕망하는 순간 그것이 가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갈등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두 명 이상의 인물이 같은 대상을 욕망하면, 욕망은 경쟁으로 바뀌고, 경쟁은 폭력으로 변질된다. 고대에는 이 폭력을 통제하고 공동체의 존속을 보장하기 위해 제의적 희생을 행했다. 희생양은 때로 동물, 때로 인간, 때로 사회의 가장 약한 존재였다. 폭력은 희생을 통해 배출되며, 그 과정은 반드시 신성성을 띠었다.
희생양이 제거되면 공동체는 안정을 찾고, 사람들은 다시 평온해진다. 그리고 신화는 이 과정을 숨긴다. 희생양이 왜, 어떻게 선택되었는지에 대한 집단적 기억은 지워지고, 대신 희생양이 ‘공동체를 구한 존재’로 신격화된다. 이 지점이 지라르가 지적하는 ‘폭력의 신성화’다. 종교적 의례, 신화적 서사, 전통적 규범들은 폭력을 정당화하는 장치로 기능하고, 희생양 체계를 반복 가능하게 만든다. 지라르는 이를 통해 인류 사회의 질서가 폭력의 제거와 은폐를 통해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이 메커니즘에서 벗어났을까. 지라르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현대 사회는 더 세련된 방식으로 희생양을 만들어낸다. 여론재판, 인터넷 군중심리, 정치적 희생양,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등은 모두 같은 메커니즘이다. 문제는 이것이 집단의 무의식 속에서 반복되며, 폭력을 정당화하는 서사를 통해 지속된다는 데 있다. 공동체는 갈등이 생기면 자연스레 희생양을 찾는다. 이는 사회적 평화를 위한 본능적인 방식이자, 동시에 가장 폭력적인 방식이다.
지라르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과연 폭력의 희생양 체계를 벗어날 수 있는가. 지라르는 기독교적 계시를 통해 이를 가능하다고 보았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최초로 희생양이 무죄하며, 폭력이 부당하다는 사실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러나 지라르는 그것조차도 오랫동안 종교적 폭력의 서사로 재편되어 왔다고 지적한다. 폭력의 은폐와 신성화가 반복되는 한, 인간 사회는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다. 우리가 만들어낸 모든 질서, 제도, 문화 속에도 그 흔적은 남아 있다.
이 책은 단지 고대 종교나 희생 제의의 기원을 탐구하는 인류학적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욕망의 구조와 집단적 심리, 그리고 현대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현상을 꿰뚫는 통찰이다. 우리는 여전히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처벌하고, 사회에서 추방함으로써 일시적인 평화를 얻는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폭력은 계속된다. 지라르는 그 반복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폭력을 중단시킬 첫 번째 단계라고 말한다.
이 책의 의미는 결국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공동체란 무엇으로 유지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귀결된다. 폭력은 단지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욕망의 깊은 곳에서 비롯되며, 사회적 질서의 근간을 이루어왔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과거의 제의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와 자신 안의 욕망, 그리고 무의식적인 폭력성을 마주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비로소 성스러움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의 실체를 들여다볼 용기가 생긴다. 지라르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