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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정신분석으로 읽기

심리상담 이야기

누구나 과거를 기억한다고 믿지만, 사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과거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견딜 수 있도록 재구성한 이야기다.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토니 웹스터는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온 은퇴한 남성으로, 자신의 과거를 담담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회고한다. 어느 날, 옛 연인 베로니카의 어머니로부터 유산을 받게 되면서, 그는 40년 전 자신이 기억해온 과거가 실은 철저히 왜곡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이 탁월한 이유는 마지막 반전 때문만이 아니라(물론 그것도 훌륭하지만),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현실을 재편하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보호 메커니즘 한가운데에는 정신분석의 가장 근본적인 개념인 '억압(repression)'이 자리하고 있다.


억압은 프로이트가 발견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강력한 방어기제로, 자아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기억, 수치스러운 욕망, 혹은 견디기 어려운 감정을 의식에서 몰아내어 무의식 속에 가두어버리는 심리적 과정이다. 마치 불편한 물건을 서랍 깊숙한 곳에 밀어넣고 잊어버리는 것처럼 마음은 불편한 내용을 의식의 지하실로 추방한다. 그러나 억압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무의식 속에서 살아 숨 쉬며, 언젠가 다시 의식의 표면으로 돌아오려는 압력을 끊임없이 분출한다. 이 소설은 바로 이 '억압된 것의 회귀'를 다룬다. 그가 40년간 잊고 살았던 것,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잊으려 애써왔던 그 무언가가 서서히, 그러나 집요하게 그의 의식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이 소설의 뼈대를 이루는 것이다.


토니가 억압한 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껏 쌓아왔던 정체성의 근간을 뒤흔드는 진실이었다. 젊은 시절, 베로니카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 에이드리언과 사귀게 되었을 때, 토니는 그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저주와 악의가 담긴 편지를.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난 후 토니가 그 편지를 회상할 때, 그는 약간 신랄한 정도의 말을 했을 뿐이라고 기억한다. 이것이 억압의 작동 방식이다. 자아는 '질투에 사로잡혀 친구를 저주한 비열한 청년'이라는 자기 이미지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날카로운 모서리를 깎아내고, 감정의 강도를 희석시키고, 사건의 의미를 재해석했다. 그 결과 토니는 자신을 '평범하지만 괜찮은 사람', '조금 소심하지만 악의 없는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억압은 이처럼 자아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진실을 희생시키는 거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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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억압은 완벽한 방어가 아니다. 프로이트는 억압된 내용이 꿈, 실언, 증상의 형태로 끊임없이 의식으로 침투하려 한다고 말했다. 토니의 경우, 이 침투는 베로니카 어머니의 유산이라는 외부 자극을 통해 본격화된다. 500파운드와 에이드리언의 일기. 이 유산은 단순한 물질적 증여가 아니라 억압된 과거의 회귀였다. 토니가 베로니카를 다시 만나고, 편지를 다시 읽고, 과거의 조각들을 맞추려 애쓰는 과정에서, 그가 수십 년간 무의식 속에 가두어두었던 진실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낸다.


물론 이 과정은 결코 순조롭지 않다. 토니는 진실의 파편들을 접하면서도 계속해서 저항한다. 베로니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고, 그녀를 비난하고, 다른 해석을 찾으려 애쓴다. 이는 억압이 한 번에 해제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억압된 내용이 의식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자아에게 극도로 고통스럽기 때문에, 자아는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하며 진실을 외면하려 한다.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보면, 억압은 자아의 방어 기능 중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메커니즘이다. 억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심리적 검열이 필요하다. 토니는 긴 세월 동안 계속해서 기억을 편집하고, 재구성하고, 정당화해야 했다. 그는 자신에게 일관된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했고, 그 이야기 속에서 자신은 피해자이거나 최소한 선의의 방관자여야 했다. 이러한 지속적인 방어 작업은 막대한 정신적 에너지를 소진시킨다. 프로이트는 이를 '반 리비도 집중(anti-cathexis)'이라 불렀는데, 억압된 내용이 의식으로 떠오르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억누르는 과정을 의미한다.


Cathexis (리비도 집중) : 정신 에너지를 어딘가에 투자하는 것

Anti-cathexis (반-리비도 집중) : 그 투자를 막기 위해 반대 방향으로 에너지를 쓰는 것


토니의 삶이 활력이 없고, 피상적이며, 어딘가 무뎌 보이는 것은 그냥 성격이 그래서가 아니다. 그의 정신 에너지의 상당 부분이 억압을 유지하는 데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억압은 증상을 만들어낸다. 토니의 증상은 감정적 둔마, 피상적 관계, 그리고 자기 인생에 대한 막연한 불만족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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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절정부에서 토니는 마침내 진실과 마주한다.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사실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의 어머니 사이의 아이였고, 자신의 저주 어린 편지가 에이드리언의 자살에 일정 부분 기여했을 가능성을 깨닫는 순간, 억압의 봉인이 깨진다. 이 순간 토니는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통찰(insight)'을 얻는다. 통찰은 단지 사실을 아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억압되어 있던 진실을 '정서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토니는 자신이 평생 외면해온 사실을 직시한다. 그는 질투심에 가득 찬 청년이었고, 분노와 증오에 사로잡혔으며, 자신의 말이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 깨달음은 그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준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해방이기도 하다. 억압을 유지하는 데 소모되던 에너지가 이제 자유로워진다. 비록 그 대가가 죄책감의 홍수일지라도 진실과 마주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정신 건강에 필수적이다.


반스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토니는 여전히 완전한 진실을 알지 못한다. 그는 조각들을 맞추었지만, 여전히 공백이 있고, 여전히 베로니카는 수수께끼처럼 남아 있다. 이것은 억압에 대한 더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억압의 해제는 완벽한 과거의 복원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 번 억압되고 왜곡된 기억은 결코 원래의 순수한 형태로 돌아올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더 정직한 버전의 과거, 더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것뿐이다.


토니는 이제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더 불완전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더 이상 안락한 자기기만 속에 살 수 없다. 하지만 이 불편함 속에서 그는 비로소 진정으로 살아 숨 쉬는 인간이 된다. 억압은 우리를 보호하지만, 그 보호는 비틀린 보호다. 억압의 해제는 고통스럽지만 우리를 다시 살아 있게 만든다.

이 소설은 한 남자가 자신의 억압된 과거와 마주하고, 그 고통을 감내하며, 그 과정에서 비로소 자기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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