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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 : 만남과 헤어짐, "인연"에 관한 이야기

심리상담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짓말은 "우린 영원히 함께 할 거야"라는 말이야. 라라랜드는 그 거짓말을 노래로, 춤으로, 아름다운 빛깔로 칠한 영화지. 미아와 세바스찬, 꿈을 향해 달리는 두 몽상가가 LA, 천사들의 도시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고, 꿈을 쫓고, 결국 서로를 놓아주는 이야기. 아니지, 정정할게. 서로를 놓아준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품에 안은 거야. 이 영화는 재미있어. 뻔한 해피엔딩 대신 더 깊은 걸 던져주거든. 그러니까, 이런 거야. "함께 해야만 사랑일까?"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를 비극이라고 말해. 근데 잠깐, 비극? 둘 다 꿈을 이뤘는데? 미아는 스타가 됐고, 세바스찬은 재즈 클럽을 열었어. 이건 실패가 아냐. 다른 종류의 성공이지. 우리는 러브 스토리가 찐한 키스로, 혹은 결혼식 장면으로 막을 내려야 한다고 배웠어. 세상이 우리를 그렇게 가르쳤지. 하지만 때로는 상대방이 빛나는 걸 멀리서 지켜보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야. 그것도 사랑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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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끝부분에 "만약에..." 장면 있잖아. 만약에 세바스찬이 투어를 거절했다면, 만약에 미아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 근데 재밌는 건 그 상상 속에서도 둘은 똑같아. 미아는 여전히 빛나고, 세바스찬은 여전히 재즈를 연주해. 장소만 다를 뿐이지.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그들은 함께였어도 결국 같은 사람이었을 거라는 거야. 불교 용어로 말하자면, '인연(因緣)'이지. 모든 건 인연이야. 만남도 인연이고, 헤어짐도 인연이고, 그 사람 덕분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도 인연이야. 미아와 세바스찬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었어.


인연이라는 건, 참 웃긴 말이지. 우연과 운명 사이 어딘가에 떠다니는, 그럴듯한 단어 하나. 사람들은 그걸 믿고 싶어 해. 마치 모든 만남엔 이유가 있고, 모든 헤어짐엔 의미가 있는 것처럼.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잖아. 누군가는 그냥 지나가고, 누군가는 잠깐 머물다 가고, 그중 몇몇은 네 삶에 흠집 하나 남기고 사라져.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이건 사랑 이야기라기보단, 사람과 사람 사이에 피어올랐다 사라지는 그 미묘한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 같았어. 그 어떤 이유로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파편들 말이야.


세바스찬과 미아. 둘은 바로 서로를 알아봤을 거야. 꿈이란 이름의 환상을 좇으면서도, 그게 결국 자기 자신을 갉아먹는다는 걸 알고 있었겠지. 근데 그걸 멈출 순 없었을 거야. 사람은 늘 뭔가에 미쳐야만 살아있는 기분이 들잖아. 음악이든, 연기든, 사랑이든. 그리고 그 미친 무언가가 결국 네가 사랑한 사람을 밀어내기도 하지. 세바스찬은 피아노에, 미아는 무대에, 각자의 세계에 몰두했어. 그게 서로를 놓게 만든 이유였지만, 동시에 서로를 완성시킨 이유이기도 했지. 아이러니하지? 사랑은 그렇게 자기 파괴적이면서도, 이상하게 구원 같단 말이야.


그걸 겪고 나면, 사람은 변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세바스찬이 그랬고, 미아도 그랬겠지. 사랑은 둘 중 하나를 키우고, 또 하나를 죽여. 근데 그게 꼭 슬픈 일만은 아니야. 죽은 건 어쩌면, 더 이상 필요 없는 네 예전 모습일 수도 있으니까.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감정이 있고, 그 사람을 떠나보내지 않았다면 평생 자라나지 못했을 용기가 있지. 인연이라는 건 결국 그런 거야. 누군가를 통해, 잠시나마 진짜 자신을 마주보게 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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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인연이란 타이밍이야.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맞는 시간'에 만나는 게 중요하지. 미아와 세바스찬은 엇갈렸어. 확실하게. 그런데 여기 함정이 있어. 미아와 세바스찬은 '잘 못된' 시간에 만난 게 아니야. 오히려 '완벽한' 시간에 만났지. 미래를 향해 전력질주하던 시기. 세바스찬이 없었으면 미아는 오디션장으로 돌아가지 않았을 거야. 미아가 없었으면 세바스찬은 자신의 음악을 포기했을지도 몰라. 그들은 서로의 뮤즈였고, 나침반이었고, 때로는 거울이었어. 사랑이 꿈을 이기지 못했다고? 천만에. 사랑이 꿈을 완성시킨 거야.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궁금해 하지. 왜 그렇게 끝나야 했을까. 근데 끝이라는 게 꼭 잘못된 건 아니야. 어떤 관계는 그 시점에서 끝나야 가장 아름다워. 라라랜드는 그걸 너무 잘 알아. 마지막 장면에서 둘은 서로를 마주보며 미소를 지어. 그리움이, 아쉬움이 담긴 미소였지. 그렇지만 후회는 없었어. 내겐 그 미소가 이렇게 들리더군. "네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 고마워." 그 짧은 미소에 모든 게 담겨 있어. 그들의 여름이, 꿈이, 춤이, 키스가.

둘은 헤어졌지만 서로를 잃지 않았어. 미아는 앞으로도 세바스찬을 기억할 거야. 데이트할 때도, 영화를 찍을 때도, 레드카펫 밟을 때도. 세바스찬은? 클럽의 문을 열고, 피아노 앞에 앉을 때마다 미아를 기억하겠지. 그들은 서로의 인생에 영원히 새겨진 거야. 그게 진짜 해피엔딩이야. 함께 늙어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거든. 그게 인연이지. 오래 가진 않았지만, 그순간만큼은 세상을 통째로 흔들어놓았던 만남.



사람은 다 자기 만의 라라랜드를 품고 살아. 자기만의 꿈, 자기만의 후회, 자기만의 음악. 그리고 가끔, 인연이란 이름의 낯선 리듬이 그 안으로 들어와 전부를 흔들어놓지. 그게 다 지나가고 나면, 남는 건 쓸쓸함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고요야. 그 고요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이해하지. 사랑은 끝나도, 그 여운은 끝나지 않는다는 걸. 세바스찬이 마지막 건반을 누를 때처럼, 우리도 언젠가 그 마지막 음을 누르겠지. 그리고 웃을 거야. 그래, 다 지나갔지만 그건 진짜였다고.



그러니, 누가 누구를 구원했는지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조금이라도 더 ‘진짜로’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사랑은 늘 불완전하고, 그래서 아름다워. 라라랜드는 그 불완전함을 찬양하는 영화야. 완벽하게 함께하지 못한 두 사람의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우리 모두의 이야기 같아. 왜냐면 우리도 다 그랬잖아. 사랑했고, 망가졌고, 그리고 결국엔 살아남았잖아. 그게 인연의 끝이자 시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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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란 건, 재즈 같은 거야. 시작도 끝도 없이 흘러가는 멜로디. 잠깐의 불협화음이 있다 해도, 그게 없으면 곡이 완성되지 않지. 라라랜드는 그 불협화음을 너무나 솔직하게 들려줘. 그리고 그게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이야.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야. 어떤 사랑은 떠나가면서, 네 안에 새로운 리듬을 심어놓지. 그리고 그 리듬이 계속해서 네 삶을 움직이게 해. 그게 인연이야.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남아 있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음악.


삶의 한 시절에, 누군가의 인생을 아름답게 해주었고, 그 사람도 내 인생을 아름답게 해주었다면 그걸로 충분한 거야. 각자의 삶에서 미아와 세바스찬은 행복해. 그리고 그 행복에 서로가 있어. 언제나. 이게 비극이라고? 농담하지 마. 이건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낭만적인 해피엔딩이야. 라라랜드는 우리에게 말해.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선물이라고. 그리고 어떤 선물은 평생 가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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