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가 칼럼
GTC 2025 젠슨 황의 키노트를 시청하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놀라움과 두려움, 그리고 묘한 상실감이었다. 그의 연설에 관객들은 환호했지만, 내 머릿속엔 하나의 생각만 맴돌았다. ‘이제 인간의 시대가 정말 끝나는 건가?’ AI가 제품을 만들고, 설계하고, 치료하고, 운전까지 한다면, 우리는 어디에 서 있어야 할까. 기술의 진보 앞에서 내가 느낀 건 경이로움이 아니라,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낯선 물음이었다.
한 가지 사실은 명확하다. 우리가 알던 노동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것이다. AI는 더 이상 도구가 아니라 노동자 그 자체가 되고 있다. 커서(cursor)는 프로그래머의 파트너이고, 로보택시의 AI는 운전기사이며, 퍼플렉시티(perplexity)는 여행 예약을 처리하는 비서다.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 당신이 배운 기술, 당신이 의지하는 전문성이 AI에게 학습되고 대체되는 것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특히 가혹하다. 우리는 일을 통해 정체성을 찾고, 생산성으로 자기 가치를 측정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도록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변화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엔비디아의 블랙웰(blackwell) 칩은 이전 세대 대비 10배의 성능 향상을 이뤘고, 토큰 생성 비용은 10분의 1로 줄었다. 2026년까지 5천억 달러 규모의 주문이 확정되어 있고, 매년 새로운 세대의 칩이 나온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AI를 사용하는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고, 따라서 기업들이 인간 대신 AI를 고용할 유인이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택시 기사라면, 당신이 물류센터 노동자라면, 당신이 사무직 근로자라면, 당신이 중급 프로그래머라면, 이 숫자들은 당신의 일자리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위협받을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이것은 특정 직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AI는 이제 사고하고, 추론하며, 창조적인 문제까지 해결한다. 그렇다. 앞으로 거의 모든 직종이 AI로 대체될 것이다. 화이트 칼라든, 블루 칼라든, 모두 마찬가지다. (당연히 심리상담사도 포함된다.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답은 명확하다. 평생 학습을 받아들여야 한다. 한 가지 기술을 배워 평생 먹고사는 시대는 끝났다. 20대에 배운 것이 40대에는 쓸모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이건 "새로운 기술을 배우라"는 말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학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도구가 나왔을 때 두려워하지 않고 시도하는 용기, 익숙한 방식을 버리고 더 나은 방식을 받아들이는 유연함, 변화를 위협이 아닌 기회로 보는 관점.
이런 태도가 없다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기술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한국 사회는 정답을 빨리 찾는 교육에는 익숙하지만,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새로운 길을 탐색하는 학습에는 취약하다.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후자다.
물론 학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AI와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무한량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는 AI와의 경쟁은 무의미하다. 핵심은 AI가 잘하는 것은 AI에게 맡기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맥락을 이해하고, 의미를 창조하며, 윤리적 판단을 내리고, 진정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특히 관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AI는 알고리즘을 최적화하고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지만, 신뢰를 쌓고 관계를 형성하며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AI 시대에는 당신의 네트워크, 당신이 쌓아온 신뢰, 당신이 맺은 관계가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당신의 일이 무엇이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깊게 만들고 네트워크를 넓히는 것이 생존의 열쇠가 된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남아있다. 일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AI가 생산성과 효율성에서 인간을 압도한다면,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한국 사회는 특히 이 질문에 취약하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직장과 소득으로 정의하고, 자기 가치를 생산성으로 측정하도록 길들여졌다. AI로 거의 모든 것이 대체될 미래에서 사람들은 존재의 의미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일이 정체성의 핵심일 때, 일을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수입원을 잃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잃는 것과 같다. 이것이 AI 혁명이 던지는 가장 고통스러운 질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AI 혁명이 우리에게 주는 진짜 선물일지도 모른다. 생존을 위한 노동에서 해방되어,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다시 질문할 기회. 젠슨 황은 "우리는 문명으로서 새로운 높이에 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새로운 높이는 단순히 더 빠른 컴퓨터나 더 많은 생산이 아니라, 인간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한 재정의를 포함해야 한다. 당신은 당신의 직업이 아니다. 당신의 가치는 월급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 당신이 창조하는 아름다움, 당신이 나누는 친절. 이것들이 당신을 정의한다. AI가 당신의 일을 대신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당신의 아이를 안아줄 수 없고, 친구의 슬픔에 공감할 수 없으며, 노을을 보며 경이를 느낄 수 없다. 인간성의 핵심은 생산성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에 있다.
물론 이것은 이상주의적으로 들릴 수 있다. 현실은 훨씬 복잡하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일자리를 잃은 40대 가장에게 "이제 의미를 찾을 때입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집세를 내야 하고, 아이를 키워야 하며, 늙어가는 부모를 돌봐야 한다. 경제적 불안정, 사회적 지위 하락, 정신적 고통. 이 모든 것이 전환기의 대가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좌절하며, 절망할 것이다. 완전한 AI 시대로 진입하기 전에 과도기적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저항은 강하지만 변화는 더 강하다는 것을. 산업 혁명은 수공업자들을 몰락시켰지만,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게 되었다. 정보 혁명은 많은 직업을 없앴지만, 동시에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AI 혁명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버티고, 배우고, 적응하며, 서로를 돌보고, 의미를 찾아야 한다. 쉽지 않을 것이다. 좌절하고 실패할 날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 원칙만은 잊지 말아야 한다. 변화를 부정하지 말 것, 두려움에 지배되지 말 것,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할 것, 삶의 의미를 일과 분리할 것, 유연하되 원칙을 잃지 말 것.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을 놓지 말 것.
앞으로 도래할 미래는 위협적이지만 경이롭다. 질병을 치료하는 AI, 우주를 탐험하는 기술, 무한한 자연 친화적 에너지. 이 모든 것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가능성을 담고 있다. 아이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다. 빈곤과 질병에서 더 자유로울 것이고,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질 것이며,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 것이다. 그때까지 잘 버텨야 한다. 우리의 선택이, 작더라도, 이 거대한 전환의 방향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