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낯선 자리에 가서 인사를 나눌 때, 단체 대화방에 한마디 할 때, 누군가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이다. “내가 지금 뭔가 이상한 말을 한 건 아닐까?”, “저 표정은 날 불편해하는 건가?”, “내가 괜히 말 걸었나?” 우리는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타인의 반응을 해석하고 스스로를 검열하며 불안에 휩싸인다. 그런 생각들이 쌓이면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 자체가 피곤해지고 회피하고 싶어진다.
타인이 나를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우리 뇌가 ‘소외’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고대 인간은 집단에서 배제되면 생존이 위협받는 시대를 살았기에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즉, 우리가 지금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지도 모른다고 느끼는 것은 본능적인 반응일 수 있다. 문제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더 이상 그런 극단적인 생존 환경이 아니라는 점이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내 존재가 흔들리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너무 자주, 너무 쉽게 타인의 반응에 휘둘리며 움츠린다.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까 봐 두려운 이유는 싫어하는 사람 보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다 맞추려는 나 자신에게 있다. 누군가가 나를 불편해하거나 거리감을 두거나 별다른 호감을 보이지 않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기에서 나의 가치까지 흔들려 버린다. 누군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단지 그 사람의 기호나 취향, 에너지와 나의 것이 맞지 않는다는 뜻일 뿐이다. 그것이 나의 인격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는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그것을 ‘내가 잘못해서’, ‘내가 부족해서’라고 해석하고 자책한다. 그 지점에서 괴로움이 시작된다.
대인관계를 편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첫째로,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는 환상을 내려놓아야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사람도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한다. 외모가 뛰어나든, 말솜씨가 좋든, 능력이 출중하든, 누구에게나 그 사람은 별로, 라고 느끼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런 감정은 개인의 취향이기도 하고 삶의 경험에서 비롯되기도 하며, 때로는 단지 타이밍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을 나의 잘못이 아니라 ‘관계의 다양성’으로 바라봐야 한다. 우리가 모든 음식의 맛을 좋아할 수 없듯 사람 사이에도 당연히 궁합이 있고 거리감이 있다.
둘째로는 내 안의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사람들과 있을 때 불편하고, 나를 드러내는 게 어색하고, 괜히 긴장되면 “나는 왜 이러지?”라고 자책하기보다, “지금은 긴장되는 상황이구나. 괜찮다.”라고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대신 이해하려는 노력이 대인관계에서 편안함을 가져온다. 자신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은 타인에게도 과도하게 기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여유가 생기면 타인과의 관계도 훨씬 자연스러워진다.
셋째로는 타인의 반응을 너무 확대 해석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표정 하나, 말투 하나에 온갖 의미를 부여하느라 힘들어질 때가 많다. “저 말은 날 싫어한다는 뜻일까?”, “저 표정은 나에게 실망한 건 아닐까?”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삶을 살아가느라 바쁘다. 나를 평가하거나 기억할 만큼 관심이 많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냉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대인관계가 훨씬 가벼워진다.
마지막으로는 진짜 중요한 관계에 집중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수십 명의 사람에게 어색한 친절을 유지하느라 지치기보다, 단 몇 명이라도 솔직하고 깊이 있는 관계를 나누는 것이 더 건강하다. 나를 이해해주고 실수해도 괜찮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치유받고 성장한다. 결국 대인관계의 핵심은 모두에게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진짜 내 모습으로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 관계는 나를 덜 외롭게 하고 더 단단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 때, 이렇게 되뇌어 본다. “그래도 나는 괜찮아.”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내가 괜찮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은 타인의 몫이고, 나를 이해하고 품는 일은 나의 몫이다. 그렇게 조금씩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연습을 할 때 대인관계는 훨씬 편안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까 봐가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집중하게 된다. 그곳에서부터 진짜 변화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