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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성 성격장애, 그들의 사랑과 연애 방식

심리상담 이야기

by 이상혁 심리상담가

연극성 성격장애를 가진 이들의 연애는 한 편의 연극처럼 시작된다. 처음 만남 순간부터 이들은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상대의 시선을 끌고,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하며 관계의 무대를 지배한다. 감정은 빠르게 고조되고, 상대방은 순식간에 특별한 존재로 등극한다. 마치 오래도록 기다려온 인연이라도 된 듯, 과장된 애정 표현과 친밀감을 앞세워 상대의 마음을 휘감는다. 그러나 그 감정의 진위보다 더 중요한 건, 이 감정에 몰입하는 ‘장면’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연극성 성격장애의 연애는 상대를 통해 사랑을 느끼기보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무대를 연출하는 데에 더욱 몰두한다.


그들은 애초에 관계의 안정이나 지속성을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가 깊어지고 익숙해질수록 감정은 무뎌지고, 관심의 밀도는 떨어진다. 이들은 지루함을 느끼고, 그 지루함은 곧 불안을 동반한다. 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다시금 감정의 고조를 필요로 하고, 그러기 위해 때로는 불필요한 갈등이나 위기를 조작해 새로운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위기의 순간, 상대의 반응과 애정을 확인하며, 사랑의 증거를 얻는 방식으로 공허를 덮으려 한다. 그래서 이들의 연애는 순탄한 흐름보다 갈등과 화해, 위기와 열정의 반복으로 가득 차 있다. 평온한 사랑은 이들에게 불안하고, 변덕스럽고 과장된 감정의 파동 속에서만 사랑은 실감난다.


이들의 사랑에는 과장이 가득하다. 영원한 사랑을 고백하고,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하며, 만나지 얼마 되지 않아 운명적 인연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이 고백은 감정의 깊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반응을 유도하고 사랑받는 존재로서의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는 의도로부터 나온다. 그러니 감정의 크기와 표현은 지나치게 크고 뜨거운데, 그 내면은 비어있다. 상대는 사랑을 받는 동시에 어딘가 이용당하는 느낌을 받으며, 관계의 방향을 주체적으로 이끌기 어려워진다. 연극성 성격의 사람들은 관계를 대등하게 맞물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끄는 무대 위에서 상대를 움직이는 방식으로 연애를 조율하려 한다.


처음 만남의 열기는 어김없이 식는다. 상대방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 과장된 애정표현과 감정의 기복에 지치고, 관계의 비현실성과 피로감을 느낀다. 연극성 성격장애를 가진 이들도 자신이 더 이상 상대의 관심의 중심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불안을 느낀다. 그러면 감정은 극적으로 변해, 지나친 집착이나 피해자 배역, 혹은 갑작스러운 이별 선언으로 관계를 흔들어놓는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자신이 여전히 중요한 존재임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결국 이들의 연애는 사랑의 교류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타인의 감정 속에서 입증하려는 과정이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이들이 진짜 원하는 건 극적인 사랑도, 화려한 연애담도 아니라는 데 있다. 실은 누구보다도 안정된 사랑을 갈망하고, 진짜 자신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그러나 정작 그 고요하고 담담한 사랑이 찾아왔을 때, 그 사랑 앞에 서 있는 자신을 견디지 못한다. 사랑이란 극적이어야 하고, 매 순간 가슴을 뛰게 하며, 늘 새로운 장면을 열어야만 진짜 사랑이라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잊힐 것 같고, 의미 없는 존재로 전락할 것 같아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평온한 사랑의 풍경을 스스로 깨뜨리고, 관계를 과장된 감정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다.


연극성 성격장애의 연애는 상대방을 통해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일이 두려워 타인에게 과도하게 기대려는 심리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연애는 사랑받기 위한 수단이자, 자기 존재를 과시하는 무대다. 상대는 함께 사랑을 나누는 동반자가 아니라, 무대의 관객이다. 그러니 이들에게 있어 연애란, 타인과의 정서적 교감보다는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을 만한 존재인지를 끊임없이 증명해보여야 하는 긴장된 연극 같은 것이다. 사랑의 본질적 의미보다는,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고, 주목받고 싶은 욕망이 우선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연극이 끝나는 순간이다. 애정이 식고, 위기가 지나가며, 관계가 일상의 고요함으로 돌아오면 이들은 공허함에 휩싸인다. 더 이상 연극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자리는 그들에게 견딜 수 없는 자리다. 그러면 또다시 새로운 상대, 새로운 무대, 새로운 사랑의 드라마를 찾아 떠난다. 이들의 연애사는 뜨거웠다 식어버린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고, 그 안엔 진짜 사랑이라 부를 만한 장면은 의외로 많지 않다. 사랑이라 믿었던 대부분의 감정이 사실은 자신을 채우기 위한 욕구였음을, 이들은 애써 외면한 채 또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연극성 성격장애의 연애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에게서 도망치는 방식이다. 사랑받는다는 기분 속에서 비로소 살아있다고 느끼고, 관심을 받음으로써만 자기 존재를 확인할 수 있기에, 이들은 사랑 그 자체보다 사랑받고 있다는 감정에 중독된다. 관계의 평온한 침묵은 자신이 잊혀진다는 공포를 불러오고, 감정의 잔잔한 깊이는 스스로를 들여다봐야 하는 두려움을 자극한다. 그러니 이들은 연애라는 무대를 끊임없이 연출하고, 감정이라는 대사를 과장하며, 드라마라는 장면으로 자신을 지탱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늘 같은 풍경이 남는다. 뜨거운 연애, 급격한 싸움, 그리고 공허한 이별. 사랑이라 믿었던 모든 순간들이 사실은 자신을 외면하기 위한 장면들이었음을 깨달을 때, 이들은 다시금 새로운 무대를 찾아 떠난다. 그 여정이 사랑을 찾기 위함인지, 아니면 자신을 잊기 위함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한 채, 또다시 환호와 갈등, 열정과 이별의 사이를 서성인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놓치는, 연극 같은 연애의 반복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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