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결혼 직전에 느껴지는 찜찜함에 관하여

심리상담 이야기

by 이상혁 심리상담가

결혼을 앞두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시점에 문득 스며드는 한 조각의 찜찜함이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 함께하고, 때로는 다투고, 다시 화해하며 여기까지 온 사이. 이제는 서로의 취향과 버릇, 목소리의 높낮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차릴 수 있는 기분의 결까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문득 드러난 그의 어떤 말투, 상황을 처리하는 방식, 불쑥 튀어나온 성격의 단면이 마음 한편을 긁고 지나간다. 심각한 건 아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이 돌아올 정도로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 사소함이 오히려 더 마음을 복잡하게 한다. 이 작은 불편함이 앞으로 나와 그를, 그리고 우리라는 관계를 갉아먹지는 않을지.


사랑은 때로 사람을 둔감하게 만든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누구나 완벽하지 않잖아, 나도 이기적인 구석이 있는데. 그렇게 자신을 설득하고, 때로는 외면하며 관계를 이어간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문턱은 그동안 가볍게 넘겼던 마음의 찜찜함들을 더는 숨길 수 없게 만든다. 함께 살아간다는 건 이제 이 사소한 결점과 불편함들까지 끌어안고 매일의 일상으로 삼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결혼이 단순히 좋은 점과 장점만을 확인하는 일이 아님을 알기에 우리는 이 지점에서 가장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지금 느껴지는 찜찜함이 앞으로 커질 일인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스러질 것인지.


그의 성격에서 드러난 그 조각이 무엇이었는지 사실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때로는 작은 이기심, 예상 밖의 무심함, 감정에 휘둘리는 순간의 반응 같은 것들. 평소에는 별일 아닌 듯 흘려보낼 수 있지만, 결혼을 앞두면 그 모든 것이 조금씩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가 나를 존중하고 있는지, 내가 불편해할 만한 지점들을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태도가 있는지, 혹은 그저 시간을 두고 익숙해지기를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관계라는 건 늘 그 가능성과 긴장 사이에서 흔들리며 존재하는 것이지만, 결혼은 그 흔들림을 함께 견딜 준비가 되어 있느냐의 문제다.


중요한 건 불편감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대면하고 다룰 수 있는지다. 그 부분을 외면하거나 애써 미화하지 않고 나도 모르게 쌓여온 감정의 작은 응어리를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그것이 내 안의 두려움이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왜 그의 그 말투에, 그 태도에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혹은 왜 그 순간에 설명할 수 없는 거부감이 들었는지. 상대의 성격만이 아니라 내 마음의 결을 함께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하다. 두려움과 기대, 사랑과 불안을 정직하게 마주하지 않으면, 결혼은 그 찜찜함을 덮어두고 출발하는 불안정한 약속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결혼 직전의 이 고민은 결코 사랑이 식었거나, 상대가 나쁜 사람이어서 생기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정말 중요한 약속을 앞두었기에 처음으로 그리고 제대로 상대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사랑의 환상과 기대가 어느 정도 가려주었지만 이제는 함께 긴 시간을 살아갈 사람으로서 그 환상을 거두어야 할 시점이다. 감정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관계의 결, 습관화된 인내, 다름을 견디는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확인하는 과정.


그러니 중요한 건 그 찜찜함을 묵살하거나 덮어두지 않는 일이다. 상대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나 또한 내 감정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용기. 그것이 결혼을 앞둔 마지막 검증이자 어쩌면 그 사람과의 진짜 시작을 알리는 지점일 것이다. 그 조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룰지에 따라, 앞으로의 관계의 깊이와 방향이 달라질 것이다.


결혼이란 좋은점 뿐만 아니라 서로의 불완전함까지 함께 데리고 살아가는 일이다. 중요한 건 그때 서로가 어떤 태도로 마주 서는가. 불편한 것을 회피하지 않고, 작은 균열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때로는 싸우고 부딪히면서도 서로의 시간을 지켜보려는 마음. 결혼은 결국 그 마음 하나로 지탱되는 일이다. 당신이 지금 그 찜찜함을 느꼈다면, 이미 중요한 질문을 제대로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솔직해질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든 당신은 이미 자기 삶의 방향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