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이야기
공황장애는 신체적 증상으로 드러나는 불안의 절정이지만, 그 이면에는 실존의 고통이 있다. 그것은 생리적 과잉반응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공황발작은 존재의 붕괴를 경험하는 순간이며, 주체가 세계와 자신 사이의 접점을 상실하는 비극의 장소다. 숨이 막히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그 순간, 주체는 더 이상 자기를 유지할 수 없다.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넘어서 세계로부터의 추방, 질서로부터의 이탈, 의미의 와해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 순간에 드러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얇은 층위 위에 정체성과 자율성을 세워두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다.
사유는 바로 이 인식에서 출발한다. 공황은 몸이 통제되지 않는 경험이며, 동시에 존재에 대한 의심이 침투해 들어오는 틈이다. 그 의심은 "나는 이런 나도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찾아온다. 공황은 이처럼 우리 자신의 한계, 취약성, 무방비함을 철저하게 드러낸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부정하려 한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 안에는 끊임없이 타자의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 '나는 약하면 안 된다', '나는 무너지면 안 된다', '나는 타인 앞에서 괜찮은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신념들은 단순한 신경증이 아니라, 사회적 윤리와 자아 이상이 내면화된 결과물이다. 공황은 이 윤리의 균열을 알려주는 경고음이다.
이들은 종종 비윤리적인 불안에 시달린다. 그것은 타인을 실망시킬까봐, 의무를 다하지 못할까봐, 자신이 부적절해 보일까봐, 자신이 이기적일까봐 불안을 느낀다. 공황은 책임감 있는 사람들, 자신을 억제하고 타인을 먼저 배려해온 사람들에게 자주 찾아온다. 이때 공황은 도리어 내면의 윤리성이 자기 자신을 압도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타인의 기대를 윤리적 명령처럼 받아들이고, 실패를 죄책으로 감각하며, 무능함을 도덕적 결함으로 여긴다. 이처럼 공황은 단지 신경계의 반응이 아니라, 내면화된 윤리 체계가 한 인간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
공황은 욕망의 충돌에서 일어난다. 살아야 한다는 본능과 사라지고 싶다는 충동 사이의 모순, 완벽하고 싶다는 욕망과 무너질 수밖에 없는 현실 사이의 비극, 사회적 자아와 실존적 고립 사이의 틈이 너무 가까워졌을 때 공황은 폭발한다. 이 순간, 주체는 자신의 윤리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실패는 또 다른 윤리적 자책을 유발한다.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할까', '나는 왜 아무 것도 못 견디는가', '나는 왜 이렇게 비이성적인가'라는 자책은 도리어 그 사람의 윤리적 진지함을 반증한다.
그러므로 공황은 주체가 자기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새로 사유하도록 강제하는 실존적 사건으로 이해될 수 있다. 공황의 순간에 드러나는 것은 파괴가 아니라 가능성이다. 그것은 기존의 윤리와 자아 이상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알리는 신호이며, ‘견딜 수 없음’ 속에서 비로소 새로운 자기 이해의 여지가 열린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공황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해독하는 것이다. 공황은 우리에게 묻는다 — 너는 이제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 것인가? 그리고 그 물음에 응답하려는 시도 속에서, 비로소 주체는 다시 세계와의 접점을 회복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