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새로운 영화 <어쩔수가없다>를 보고
이번주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에서 주인공 만수는 제지공장에 다니는 25년차 노동자이다.
어느 늦여름날, 마당에서 장어를 굽다말고, 아내와 두 아이를 끌어안으며 만수는 말한다. "다 이루었다". 마치 십자가에 달린 예수처럼, 그는 가족과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산업화 시대의 자랑스런 일꾼이다. 뒷배경으로 보이는 집의 지붕 형상이 마치 십자가처럼 보인다. 이 뜨거운 하늘이 가고, 빨리 가을이 오기를 만수는 바란다.
가을이 오긴왔다, 하지만 만수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다니던 공장에서 인원 감축을 시작했고, 만수도 짤렸다. 3개월이면 될 줄 알았던 재취업은 그저 희망사항이었던 것일까. 심리상담을 받고난 만수는 "부활"했고, AI시대의 도래를 선포하는 선지자가 됐다. 그런 그에게 산업화 시대의 망령에 씌인 자들은 처단의 대상이다. 가짜 제지공장을 세우고, 이력서를 받는다. 산업화 시대의 기준에서 자기보다 더 나아보이는 두 명을 추린다.
월남전 참전용사였던 아버지의 전리품인 북한제 권총으로, 그 두 명을 모두를 마침내 처단한다. 그렇게 임무를 완수한 만수에게 AI가 접목된 제지공장의 일자리가 보상으로 내려졌다. 팔려고 내놓았던 집을 지킬 수 있었고, 다시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게 됐다. 새 시대의 어엿하고 늠름한 가장이 됐다.
AI를 접목하여 고도로 기계화된 공장에 출근하는 만수. 과거에 그 많던 사람들이 일했던 공간에 인간이라고는 만수 혼자뿐. 그렇게 덩그러니 기계들 사이에 놓여있다. 그가 할일이라고는 아이패드를 들고 기계를 켜고 끄는 일. 그리고 기계가 잘 돌아가는지 확인하는 일.
과거에 하듯 습관처럼 최종 생산된 종이를 두드려보며 품질을 확인한다. 웃으며 품질에 만족해하고 지나가는 만수. 하지만 아무 의미가 없다. 완벽한 기계가 좋은 품질의 종이를 생산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인간 만수의 존재의 의미는 그렇게 종이만큼이나 가볍다.
콧수염달고 공장에서 일하는 만수는 영화 <모던 타임즈>(1936)의 찰리 채플린을 떠올리게 한다. 기계화된 공장에서 나사조이는 일을 하다 인간성을 상실해버리는 채플린과 <어쩔수가없다>의 만수는 콧수염뿐 아니라 다른 면에서도 묘하게 닮았다. AI시대는 이미 도래했다. 어쩔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