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도 그 한 모금에 취해 있었다
날이 추운 겨울이 다가오니 어느새 아침 출근길을 기다리는 버스 정류장 앞에서는 사람들의 뽀얀 숨결이 가득한 그런 시간이 다가왔다. '춥다'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미 입술 바깥으로 하얗게 새어나가는 바람의 색깔은, 짧은 가을을 뒤로한 채 어느덧 그렇게 사람들의 옷차림마저 코트와 패딩으로 바꾸게 만들어버렸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얀 숨결을 뱉어내고 있을 때, 조금 떨어진 구석에 조금 더 긴 숨을 내쉬는 사람들도 있다. 그 숨결은 조금 더 탁한 공기를 띠고, 숨의 길이도 저 멀리 날아가곤 한다. 때로는 코에서부터, 때로는 입에서부터, 아니면 폐 속 깊은 곳에서부터. 숨결의 모양도 그저 긴 타입, 도넛 고리를 만드는 타입, 뻗어나가지 않고 뿌려지는 타입 등 다양하다.
담배, 익히 백해무익이라고 알려진 이 기호식품. 지금에야 흡연자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왜 사람들은 몸에 좋지 않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담배를 피우는 것일까?
이렇게 말하는 나도, 한때는 담배를 길게 피웠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어느덧 끊은 지 몇 년이 흘렀지만, 그래도 하루 한 갑 정도씩 10년 정도를 피웠으니 흡연자로서의 경력은 결코 짧지 않은 셈이다.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금연한 지 오래되셨어도, 길게 피우셨으니 조심하라는 말을 꼭 듣게 되고, 엑스레이에 이상소견이라도 나오면 흠칫하게 되는 그런 시간이었다.
담배를 왜 피우기 시작했을까?라는 질문에 곰곰이 생각해 보면, 처음 담배에 손을 댄 것은 전적으로 호기심이었다. 성인으로 당당히 담배를 살 수 있는 나이가 된 20살 청년이었던 나와 친구들은, 그 나이가 으레 그렇듯이 어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고 싶었다. 당연히 술집에서 소주를 진탕 마시며 가늠도 안 되는 주량에 힘들어하기도 했고, 담배에 손이 갔던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처음 손을 댄 건 대학교 신입생이었다면, 담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는 군대였다. 군 생활이 힘든 건 둘째 치고, 지금도 어느 정도 용인되는 '담배 한 대 피우고 하지 말입니다'라는 말이 더 널리 통용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담배로 생활에 이득이 된다면야 그때는 뭘 해도 했을 시기였다. 그렇게 꼬박 하루 한 갑 정도의 습관이 들었고, 그다음부터는 돌이킬 수 없었다.
가장 격정적으로 심화된 시기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떠난 체코의 외국인노동자 시절이었을 것이다. 자동차 부품사 생산관리팀에서 일했던 그 시기의 업무강도는 결코 약하지 않았고, 거기에서 줄담배를 배우게 됐다. 한 번에 두 개비 정도는 예사가 되었고, 그렇게 흡연량이 점점 늘어만 갔다.
그때의 나는 애초에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금연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건강만 잘 챙기면 됐지 하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운동하고, 먹는 걸 잘 챙겨 먹으면 된다는 기묘한 마음으로 담배를 피우며 망가지는 내 몸을 합리화했다. 담배값이 아무리 올라도, 담배를 끊을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그러니 체코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한 뒤, 한국도 담배값을 4500원으로 올린 순간에도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이미 체코에서 그보다 비싸게 주고 담배를 피워왔기 때문에 어차피 싸다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그때의 마음으로는 담배값이 만원 정도는 해야 아마 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그러다 찾아온 금연의 계기는 정말로 우연찮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거창하지도 않았다. 어느 겨울 연말, 남은 연차를 다 털어 넣어 집에서 휴식하는 첫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입 안에 굉장히 역한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담배를 그렇게 많이 피우던 시절에도 휴일에는 그리 많은 담배를 없애지는 않았다. 평상시가 하루 한 갑이라 하면 휴일에는 이틀에 한 갑 정도일까, 속도도 양도 현격히 줄었는데, 아마도 그건 나에게 담배가 습관이지만 스트레스의 강도에 따라 힘든 시기를 잠시나마 도망갈 수 있게 해 준 시간이었기 때문일 거다.
그래도 그 습관과 관성 때문에 휴일 아침에도 일어나면 으레 한 대 피우는 게 습관이었는데, 그날은 전혀 담배를 피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담배를 입에 무는 상상을 하자 그 연기의 향과 숨결이 상상되며 몸서리쳐졌고, 그렇게 그 자리에서 남은 담배가 휴지통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나의 금연은 10년의 시간을 흡연자로 보냈음에도 어느 날의 그 기분 나쁨을 시작으로 예고도 없이 시작되었다.
물론 그 이후로도,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참는 것이라는 흡연자들의 표현처럼 담배에 대한 유혹을 많이 받았다. 특히 술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이 피우고 있을 때라거나,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내 정신이 나가떨어질 것 같은 때에는 굉장히 유혹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럴 때 한 번씩 충동을 못 이겨 사버릴 때도 있었다.
그러나 딱 한 모금을 다시 시작하면 거기까지였다. 피우고 싶은 욕망보다 역하고 피하고 싶은 더러움이 더 앞서 곧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게 되었고, 몇 번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지금은 담배를 피우는 내 모습 자체를 상상하기 힘들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담배를 피울 일은 없고, 나의 숨결은 겨울철 칼바람에 맞서는 작고 하얀 숨으로 계속 남아있겠지.
돌이켜보면 담배를 끊은 건 결심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그 연기 속에서 내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라져 가던 나를 붙잡고 싶었을 뿐이다. 이제는 그때의 냄새도, 손끝의 습관도 낯설다. 대신 남은 것은 맑은 공기와 조금 더 선명해진 하루, 그리고 그 안에서 숨 쉬는 나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