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하루를 견디는 조용한 사람의 기록
길고 긴 연휴가 끝난 뒤에, 징검다리를 지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시 사무실로 복귀한 10월의 어느 월요일. 추적추적하게 내리는 가을비에 흠뻑 젖은 도로와 우산, 장화의 틈을 지나 사무실 문 안의 공기는 제법 따사롭다. 마치, 밖에서 일어나는 때아닌 날씨의 변화는 아무래도 좋다는 것처럼.
물론, 그런 안정감이 오랜 휴식 끝에서 나온, 혹시나 모르는 기대감 속의 착각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곧, 멀리 누군가가 다가와 반갑지 않은 마음을 감추며 상투적인 인사 속에 하고 싶은 말을 테이블 위로 늘어놓는다.
출근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책상 위에 작은 이야기 하나,
그 위에 또 다른 작은 이야기 하나,
그 옆에서 또 누군가가 보태는 큼지막한 이야기 하나,
그 뒤에서 누군가 인지도 모를 채로 보내진 어두운 이야기 하나.
밝은 빛과 시끄러움으로 포장된 이야기들이 속내를 풀어 보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박스의 무게감으로 다가와 애써 내 옆에 머물러 보려 한다. 비어 있는 말속의 공허함 속에 시끄럽게 울려대는 웃음소리들, 귓가에 조금도 남지 못하는 무관심으로 사라지는 소리는 못내 갈 곳이 아니라는 걸 알았는지 조금의 거리로 떨어진다.
팀장님, 이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팀장님, 이거 해주셔야 합니다.
팀장님, 이거 잘못된 거 같아요. 확인해 주세요.
문제는 해결이 되기 때문에 문제다. 내 앞에 놓인 문제들은 내가 손을 움직임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그 자취가 사라져 간다. 어떤 문제는 진실로 내가 하지 않은 문제도 있다. 어떤 문제는 이것마저도 나의 손을 타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실상이 무엇이든 그런 건 아무래도 좋지 않나. 결국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것만으로, 상대방은 본연의 일을 다 한 것을.
나 같은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본래 사람이란 건 변하지 않는 생물이라고 봐야 한다.
좋을 대로 잠시 맞춰준 것뿐, 온도가 서로 드러나게 되면 맞지 않는 온도는 결국 불편하게 남는 법이다.
또는 누군가의 아쉬움으로 희생된 맞춰진 온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독하게 귓가를 맴도는 소리들 사이에 나는 처연히 조용할 수 있었다. 그 소리는 나를 향하지 않았기에, 나는 그저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같은 영역에 있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세상에서, 나는 나의 세상에서. 가까우면서도 깊은 절벽 사이에서 거리감을 새삼스러워할 필요도 없는 그런 시간이 또다시 흘렀다.
운명이란 억지로 만들어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진정 운명이라면 그리 억지로 기대하고, 맞추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고,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맞추게 된다. 결국 값싼 관심으로 포장된 운명이란, 그저 그렇게 끝나기에 진짜 운명을 모른 채로 신 포도를 바라보는 한 마리의 여우가 되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는다고, 맞춰주려야 맞춰줄 수 없다는 말을 하면서, 실상은 별 관심도 없는 그런 상태 말이다.
몇 차례의 밀물이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면 어느새 갑자기 썰물처럼 고요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때가 되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는 안 그래도 머릿속에서 내가 원하지 않는 말들을 수많은 내가 내뱉는 것을 필사적으로 피하고 있을 따름인데,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라도 잦아들게 되면 그나마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게 된다. 몸을 이리저리, 그렇게 피하다 보면 가끔은 내면의 소리도 작아질 때가 생기고, 그때에는 작은 한숨도 한 번 쉬어볼 수 있게 된다.
어렵게 살아간다. 나는 그렇게 또 오늘 하루를 어렵게 보냈다. 내일도 별반 다르지 않게 어렵게 보낼지도 모른다. 눈을 뜨고 일어나서 다시 사무실 문을 지나 책상 앞에 앉아 수많은 소리들 사이에서 수천 가지의 이름으로 불리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무기력하게 무너져 내리는 자신을 그저 바라만 보면서 다시 사무실 문을 나설 때쯤 그 흩어진 모래라도 제대로 담아갈 수 있도록, 그런 하루를 보낼지도 모른다.
사무실에 울려 퍼지는 광상곡은 그렇기 때문에 구슬프지만, 서럽지는 않다. 특별할 것 없이, 누구나 그런 삶을 각자의 위치에서 걷고 있을 것이기에, 말로 꺼내지 않았을 뿐이지 이 또한 많은 이들이 함께하고 있는 그런 삶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노래가 꼭 슬픈 가락을 띠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비록 오늘의 하루는 또 아쉽게 저물지만, 적어도 내일은 오늘만큼이라는 희망은 어째서인지 그렇게 남게 된다. 더 내려갈 것도 없지 않나라는, 그런 자조 섞인 말로 하루를 매조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