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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랜드에서 다시 꺼낸 시간의 조각들

청춘의 비명에서 아빠의 머리띠까지

by Karel Jo


체코어와 슬로바키아어라는 독특한, 누구도 쉽사리 배우려 하지 않을 언어를 대학교 전공으로 삼았던 나는 매일 용인시 구석에 있는 모현면으로 통학해야 했다. 지금은 그래도 교통이 어느 정도는 이어졌지만, 그 당시 안산에서 용인은 대중교통이 전혀 닿지 않는 불모지였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서울까지 먼저 나간 이후, 서울에서 에버랜드를 가는 버스를 타야만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실질적으로 대학교보다 더 유명한 장소가 에버랜드였던 것이다.


학교에서 버스로 10분 남짓 떨어져 있는 에버랜드, 그러니 피 끓던 대학생 시절에 강의를 째고 개장 시간부터 맞춰 들어가 하루 종일을 진탕 놀고 오는 날도 예사였다. 갓 제대하고 복학한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때의 에버랜드는 판다보다는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티익스프레스가 한창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는데, 아침부터 들어가 정신없이 몇 번이고 롤러코스터를 타고 즐겼던 그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러다 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생활권이 다시 안산 및 서울로 옮겨지게 되자 자연스럽게 에버랜드는 갈 일이 없는 곳이 되었다. 가도 롯데월드나 서울랜드를 갈 일이지, 교통이 불편한 용인을 애써 찾을 일은 잘 생기지 않았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하기 전까지는.


이사한 지도 어느덧 1년이 부쩍 흐른 지금의 거주지는,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용인의 한적한 곳에 지어진 아파트다. 사람의 운명이란 그렇게 신기한 걸까, 대학교를 졸업할 때 다시는 처인구 근처로는 올 일이 없겠지 하고 떠났던 그곳으로 결국 멀리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그렇게 나는 다시 에버랜드와 가까워졌다. 집에서 차로 15분 정도면 도착해 버리는, 에버랜드는 그렇게 또다시 지근거리로 들어왔다.




딸아이를 두 명이나 낳은 환경에서 에버랜드 같은 테마파크가 가깝다는 것은 굉장한 이점이다. 이미 개발이 많이 진행되어 거주환경이 뛰어난 용인의 수지구나 기흥구에 비하면, 처인구는 여지없이 생활환경은 좋은 말로도 편하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곳에 비해 좋은 장점이 있다고 하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른바 '가 볼 만한 곳'이 꽤 가깝게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에버랜드만 해도 15분이면 가지만, 민속촌도 30분, 근처에 넓은 창고형 카페나 여러 체험장도 위치해 있어 주말이 심심치 않다. 내 몸이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러던 어느 날, 에버랜드에서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에 힘입어 케데헌 존을 구성했다는 광고가 아내의 인스타그램 피드에 등장했고, 그렇게 우리는 에버랜드에 또다시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나나 아내의 결정이 별로 중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피드를 본 두 딸아이들이 괴성을 지르며 마룻바닥을 동동 구르고 뛰어다니는 시점에서, 가지 않을 방법과 이유는 나타날 수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9월 결산 법인에서 일하는 재무회계팀장 아빠를 둔 탓에 10월 초중반에 제대로 쉬지 못하고 그렇게 때를 기다리던 두 딸아이는,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더피를 만나러 갈 수 있었다. 보통 같으면 오픈시간에 맞춰 판다를 먼저 보고, 사파리 투어를 즐기고 무엇을 할지를 고민했겠지만, 그날은 오로지 케데헌과 가능하다면 불꽃놀이를 보려 했기 때문에, 느지막이 오후권을 끊고 3시쯤 방문했다. 평일 화요일이었으니 그래도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안고.


안타깝게도, 그 기대감이 처절하게 부서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유료주차장이 만차였기에 간신히 무료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입성한 에버랜드 안에는, 날도 꽤 추워진 오후 시간임에도 사람들로 빼곡했다. 대체 평일에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시간에 여기에 오는 걸까? 그만큼 갈 곳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에버랜드의 인기가 과하게 높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케데헌 존에서는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고 30분 정도를 기다려 입장할 수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딸아이들이 조금 지루해하기는 했지만, 곧 버스 위를 덮은 더피를 보자 꺅꺅거리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뒤를 따라다니느라 금세 정신이 없어졌다.


다 돌아보고 난 후의 솔직한 감상이라고 하면, 더 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는 생각이 남았다. 물론 판이 커질 수 없는 것은, 사실 누구도 성공할 거라 기대하지 않은 애니메이션이고, 그렇기 때문에 캐릭터 간의 서사는 완전하지만 깊이가 있기엔 어려웠을 것이다. 테마를 주기엔 드러난 세계관이 아직은 제한적이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숙하지만 그 이상을 나아갈 수 없었다. 아이들이 즐기기엔 충분한 공간이었지만, 아이의 아빠로서는 장소가 넓으니 규모를 좀 더 크게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어른의 생각이었고, 그 장소에 있는 아이들은 진심으로 모든 것을 즐기고 있었다. 길거리에는 수많은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 옷을 입은 아이들이 돌아다녔고, 심지어 코스프레에 진심을 다한 성인도 몇몇 볼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애니메이션이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날의 그 공간에는 우리 모두가 혼문을 닫으러 온 사람들이었다.




날이 추워진 탓에 아쉽게도 불꽃놀이는 볼 수 없었지만, 여러 게임과 쇼핑을 한껏 즐긴 우리는 그렇게 즐거운 추억을 한 장 더 쌓아 올린 채로 에버랜드를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딸아이는 게임에서 따낸 포토카드와 굿즈 샵에서 산 키링 등을 보며 눈을 반짝이고 OST 노래를 연신 따라 불렀고, 아내 또한 찍은 사진을 이리저리 꾸며가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가족의 모습을 보는 나의 마음 또한,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또 하나의 추억을 쌓아줄 수 있었다는 만족감으로 충분히 따스해졌다.


물론, 다르게 생각해 보면 에버랜드라는 장소는 그저 하나의 공간일 뿐이지, 결국 가족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함께 즐겁게 즐겼다는 유대감과 기억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이 공간이 에버랜드가 아니라 다른 어딘가의 또 다른 테마파크였다거나, 아니면 딸기 체험 같은 것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 기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장소보다는, 결국엔 그곳에서 무엇을 했느냐에 따라 우리의 온기는 달라지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에게 있어 에버랜드는 그 따스한 온기를 기억하게 해 줄 수 있게 많은 장면을 남겨 준 '시간 저장소'다. 비록 청춘의 내가 롤러코스터에서 비명을 지르던 때를 기억하며, 지금도 티익스프레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때로 피가 끓기도 하지만, 이제 아빠인 나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귀여운 인형도 품에 안고, 때로 어울리지 않는 머리띠도 쓰곤 하니 말이다. 시간을 넘어, 같은 공간에서 그렇게 나의 기억은 달리 쓰이는 중이다.


이제 에버랜드는 우리 가족에게는 단순한 놀이공원이나 테마파크라기보다는, 우리 가족이 행복했다는 '기억의 풍경화'를 담은 미술관이나 마찬가지다. 앞으로도 이곳이 새로운 어트랙션보다 익숙한 웃음소리를 더 많이 담아줄 수 있다면, 나는 굳이 더 바랄 게 없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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