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선의를 그대로 믿기 힘든 세상이란
18년 12월에 F-6비자를 처음 받아 아내가 한국에 들어온 지도 어느덧 7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비자도 비자지만, 결혼비자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먼저 혼인신고를 진행해야 했고, 그 때부터 나의 대정부 서류준비 스킬이 일취월장하기 시작했다.
배우자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은 같이 살 때는 사실 그렇게까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아내와 영어로 소통하지만, 특별히 언어가 이질적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사람이란 환경에 익숙해지는 생물 아닌가. 그러니 이렇게 비자를 준비할 때에서야 비로소, 아 내가 외국인과 살고 있구나 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매년 한 번씩, 아이가 태어나고 난 뒤부터는 최장 3년의 체류기간을 허용해주는 F-6비자의 특성이 있다보니, 이번 연장은 무려 3년만에 진행하는 연장이었다. 이전에 안산에 살 때는 출입국사무소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용이했지만, 용인으로 이사온 뒤부터는 관할지역이 수원으로 바뀌어 우리는 미리부터 방문예약을 통해 준비했다.
아내의 직업이 없으니 대부분의 서류는 내가 준비해야 하는 일이 된다. 등본부터 각종 증명서, 거주증명 등 이런 저런 증명서를 잔뜩 떼가 차를 내달려 방문한 수원 출입국사무소는, 내가 처음 직장을 다닐 때 외국인노동자들 비자 때문에 방문했던 때보다 규모가 조금 작아진 것 같았다.
미리 시간예약을 했지만 조금 일찍 도착해 시간이 뜬 우리는 사무소 대기실에서 왔다 갔다 이런저런 안내문을 읽으며 호출번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 때, 어디선가 어머니 나이뻘 되시는 분이 오더니 감탄하시며 우리에게 물었다.
"아이가 너무너무 예쁘네! 오늘 연장하러 오신거에요?"
-아 네...맞습니다.
"이따가 일 다 보시고 인포메이션에 잠깐 들러요. 한국에 아주 유명한 디자이너분이 만든 옷이 있는데 내가 아이 옷을 하나 줄게요."
영문 모를 말을 남기고 후다닥 다시 다른 곳으로 달려가시는 그 분을 보며 아내와 나는 서로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아내에게 나도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로젓고는, "관공서에도 저런 스캠이 들어오나, 심각하군"이라며 나는 그저 번호의 호출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은 20분, 비자를 연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분 남짓이다. 물론 그건 내가 서류준비를 잘 해간 덕도 있고, 특별히 문제될 소지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번에도 3년의 연장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차에, 인포메이션에 아까의 그 분이 계셨다.
우리를 알아보시고 옆에 있던 외국인 자원봉사자와 함께 오신 그분은 연신 두 딸들을 보고 예쁘다고 감탄하시며 정말 어디론가 또 가시더니 새 옷을 하나 가져와 포장을 뜯으셨다. 첫째 아이에게 꼭 맞는 토끼그림의 옷은 색동박물관장님께서 직접 디자인한 옷이라고 말씀해 주시며 아이의 사진도 찍고, 칭찬을 계속 아끼지 않으셨다.
뭔가를 받아서가 아니라, 순간 사람의 선의를 의심부터 했던 나 자신이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물론, 요새 이런저런 사건사고가 너무 많다 보니 외부인에 대해 경계심이 많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나 스스로도 너무 노골적으로 남과의 거리감을 높인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런 일이 처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트의 캐셔 아주머니들도 매대에서 간식거리를 집어 주시곤 했고, 키즈카페에 가서도 이런저런 작은 서비스를 받곤 했으니까. 아이를 귀엽게 봐 주시는 어른들이 많은 덕분에 그런 선의에 익숙해져 있으면서도, 오늘따라 벽을 쳤던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요새 스스로가 많이 낮아져 있구나, 조금 더 사람을 믿어도 좋을텐데. 하는 생각에 또다시 빠졌다.
마지막까지 아이와 아내를 향해 예쁘다며 즐거운 하루 보내라는 덕담으로 우리를 보내주신 그 분들을 뒤로 하고 아무것도 모른 채 옷을 받아 즐거운 아이 하나, 쿠키를 입에 물어 즐거운 아기 하나, 그리고 경계심이 풀린 느긋한 성인 두 명이 남았다. 다음 방문까지는 3년이나 남았지만, 오랜만에 방문한 출입국사무소는 그렇게 또 하나의 추억을 남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