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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의 글빵 연구소' 졸업 작품

by 김운


늦은 밤이면 매일 성당으로 간다. 아파트를 나오면 11월의 차가운 밤하늘은 더욱 높아져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는 별빛마저 차갑게 빛나고 있다. 도시에서 별을 보기 힘들어진 지 오래지만 내가 사는 동네는 도시인데도 조용하고 인공의 불빛이 많이 사라져 적막하다. 도시 재개발로 대부분 이사를 가고 집들은 텅 비어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만 덩그러니 남아있고 멀찍이 또 다른 아파트 몇 채만 빈 하늘로 솟아있다. 듬성듬성 불을 밝히는 가로등을 따라 인적이 드문 길을 걸어간다. 나는 되도록 천천히 걸어간다. 별들은 무리 지어 나를 따라오고 나는 또 별을 따라간다.


15분 만에 성당에 도착했다. 성당에는 사람이 없지만 환하게 불이 켜져 있다. 여전히 오늘 하루를 지켜내고 있는 변함없는 불빛이다. 누군가의 어둠을 밝히는 불빛은 자신의 소임을 말없이 다하고 있다. 간절한 기도가 필요한 사람은 여기로 오라고 손짓을 하며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오늘 밤, 한 사람이라도 좋고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괜찮다. 그래도 불빛은 기다릴 것이다. 나는 몇 개의 불빛만을 남겨두고 불을 끈다. 내가 매일 하는 일은 사람들이 머물다가 떠나간 뒤에 남아있는 불을 끄는 일이다. 그러나 기도가 필요한 사람을 위한 가장 밝은 불빛은 남겨둔다.


성당에서 늦은 밤에 불을 끄는 것이 생계를 위한 직업은 아니지만 일상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근무시간은 왕복 30분을 포함하여 딱 한 시간이다. 아무도 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어 내가 하기로 했다. 무더운 여름날이나 추운 겨울밤에는 귀찮고 때로는 괴로운 일이지만 가장 좋은 것은 늦은 밤에 좋아하는 별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별을 보며 동경하는 세계를 꿈꾸고 사색하며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이다.


11월의 밤하늘은 별이 더욱 밝게 빛난다. 구름이 없는 날이 많고 건조하고 서늘한 대기는 높은 하늘에서도 별이 더 또렷하고 아름답게 빛나게 한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별들이 머리 위로 쏟아질 듯 공중에 매달려있다. 땅 위에는 꽃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고 하늘에서는 별들이 꽃을 피운다. 아름다운 지구를 더 아름답게 하는 것은 광대한 우주에 흩뿌려진 별들이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초저녁에 가장 일찍 뜨는 샛별은 새벽녘까지 달과 함께 오래도록 머무른다. 마치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처럼 가장 일찍 일어나 보살피고, 가장 늦게 까지 남아서 걱정하며 지켜본다. 북극성은 길 잃은 우리에게 손을 잡아주는 아버지 같은 별이다. 별들은 이름이 있는 별도 있고 이름 없는 별도 수 없이 많다. 한눈에 잘 띄는 별도 있고 희미하게 잘 보이지 않는 별도 많다. 나는 수많은 별 중에서 서쪽 하늘 끝에 보일 듯 말 듯 어렴풋이 보이는 별 하나를 좋아한다. 그 별은 별 무리에서 조금 떨어져 외롭게 빛나고 있다. 애써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존재의 의미를 알고 있는 별이다. 빛을 반짝거리며 손짓하며 다가오지 않아도 자신만의 고유함으로 빛나는 별이다. 나는 그 별을 언제부터인가 눈여겨 살펴보고 있다. 그 별 옆에는 아주 작은 별이 하나 더 있다. 아마 아기별인가 보다. 두 별은 서로를 바라보듯 가까이에서 다정한 빛으로 빛나고 있다. 언제쯤이면 될까, 저 별들도 더 밝고 아름답게 빛나서 사람들이 이름을 지어 줄 때가 있을 것이다.


천문학에서는 스스로 빛을 발하는 항성을 별이라고 한다. 태양처럼 빛을 발하고 열을 발산하는 살아있는 별이 진정한 별인 것이다. 우주에는 천억 개의 은하가 있고 각 은하에는 수천억 개의 별이 있다. 우주는 지금도 팽창하며 커지고 있고 별들은 새롭게 태어나고 또 죽는다. 우리의 태양은 55억 년 전에 태어나서 앞으로 55억 년을 살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소를 다 태워서 빛과 열을 잃는다.


별은 우주의 먼지와 기체들이 모이고 응축되어 만들어진다. 대부분 수소인 별들은 서로 밀집하여 부딪히면서 열을 내고 폭발하여 빛을 낸다. 스스로 수소폭발이 일어난다. 수소는 폭발하여 헬륨 가스로 변화되고 수소가 모두 헬륨으로 바뀌는 날 그들의 생을 마감하게 된다. 삶과 죽음이 우리 인간을 닮았다. 화려하게 생을 살다가 언젠가는 죽음으로 가는 우리와 별은 서로 어떤 인연으로 살아갈까?


1970년대 가수 ‘캔자스’가 부른 노래가 있다.

“All we are is dust in the wind(우리는 모두 바람 속의 먼지입니다)”

우리는 우주의 먼지에서 시작되었다고 노래한다. 우주에 떠있는 수많은 별과 태양과 지구와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는 우주에 떠도는 먼지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다시 먼지로 돌아간다. 인간의 몸은 60% 이상이 수소이며, 우주는 수소가 75%를 차지하고 있다. “코스모스”를 쓴 칼 세이건은 인간의 몸을 이루는 원자들이 별에서 왔다고 했다. 우리는 별의 먼지라는 것이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우주와 연결된 존재이므로 별처럼 빛나는 존재여야 하며 동시에 광활한 우주 속에서 겸손해야 한다.”


나는 아직도 이름 없는 별이다. 세상에서 부르는 이름이 있지만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싶다. 세상을 더 밝게 비춰주고 아름답게 하는 별이 되고 싶다. 태양처럼 뜨거운 별이 아니어도 좋다. 어느 하늘 끝 아스라한 곳에서 비추는 희미한 별이라도 누군가의 어두운 마음에 불빛이 되고 싶다. 지치고 힘든 사람들, 혼자서 눈물 흘리는 사람들, 마음 안에 빛을 잃은 사람들에게 은은하게 비쳐주는 별빛 같은 글을 쓰고 싶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세상의 별이다.


비록 우리는 먼지에서 왔지만 별처럼 빛나는 존재이다. 세상이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어딘가의 어둠을 밝히는 별이다. 오늘 밤에도 저 멀리 서쪽 하늘 작은 별을 찾아본다. 마치 나의 존재를 확인하듯이. 그 별은 희미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태양보다 밝은 별일지도 모른다. 그 별은 스스로 자기 몸을 태워서 수 억 년을 달려와 오늘도 밤길을 밝혀준다. 별처럼 빛나는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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