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을 통해 비로소 발견하는 진짜 편안함
[원문장] <편안함의 습격>, 마이클 이스터 저
사람들은 새로 등장한 편안함에 적응하면 이전의 편안함을 더는 수용하지 못한다. 즉, 오늘의 편안함은 내일의 불편함이 된다.
[나의생각]
물컵 하나를 쥐고 앉아 생각한다.
편안함과 불편함, 참 묘한 사이 같다고.
서로를 끌어내리는 적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전히 덮어버릴 수도 없는 꼭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
편안함이 있기에 불편함을 알게 되고, 불편함이 있기에 편안함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이다.
삶이란 얼마나 역설적인가.
우리는 흔히 편안함을 ‘좋은 것’이라 단정 짓고, 불편함을 ‘나쁜 것’이라 회피하지만 그 이분법 안에서 진실은 잘려나가 버린다.
편안함이 지속되면, 그 편안함은 더 이상 편안함이 아니다.
그저 익숙함이 되고, 당연함이 되고,
그러다 어느 날, 아주 조금만 어긋나도 우리는 말한다.
“왜 이렇게 불편하지?”
어제와 조금 달라졌을 뿐인데, 그 작은 차이조차 감당하지 못한 채 불편하다고 느낀다.
몇 달 전에는 간절히 바라던 것인데도 말이다.
마치 겨울이 있어야 봄이 오는 것처럼,
긴 밤이 지나야 새벽이 오는 것처럼,
불편함이 있어야 비로소 편안함이 존재할 수 있다.
편안함은 고요한 정적이 아니라,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가는 흐름 속에 있다.
그 흐름 안에서, 우리는 무엇이 나에게 필요한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비로소 깨닫는다.
인생은 종종 롤러코스터에 비유된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고, 빠르게 휘돌고, 때로는 숨도 쉬지 못하게 몰아친다.
편안함만 지속되는 삶은 평탄해 보일지 몰라도, 그 안엔 깊은 고요도, 반짝이는 깨달음도 없다.
적당한 불편함, 약간의 불안정함, 그것들이야말로 우리 삶을 움직이게 하는 불씨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편안함이 진짜 편안함일까?
아니면 어제보다 덜 힘들다는 상대적인 비교에서 비롯된 착각일까?
반대로, 지금의 불편함은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지난날보다 조금 더 바빠진 하루 때문일까?
편안함과 불편함은 절대적인 상태가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에 달린 것이다.
그 기준은 언제나 ‘비교’에서 출발한다.
어제의 나, 지난주의 나, 한 달 전의 나와 지금을 견주는 순간, 그제야 편안함과 불편함의 저울이 기울기 시작한다.
편안함은 정지된 상태가 아니다.
그건 쉼의 이름을 가진 일시적 경유지일 뿐이다.
우리가 도착한 줄 알고 머무르려 할 때, 삶은 말한다. “아직 끝이 아니야.”
그래서 다시 움직인다. 다시 흔들린다.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배우고, 깨어난다.
그러니 불편함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건 고통이 아니라 변화의 징조다.
불편함은 우리를 다음 단계로 밀어주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그 손에 끌려 잠시 흔들리더라도,
결국 우리는 또 다른 편안함에 닿게 될 것이다.
그 편안함은 어제의 그것과는 분명 다르다.
조금 더 단단하고, 조금 더 깊고, 조금 더 나다워진 편안함일 것이다.
우리는 편안함만을 추구하며 살아가지 않는다.
사실은 그 경계에서 살아간다.
편안함과 불편함이 교차하는 그 중간 지대,
바로 거기에서 우리는 숨 쉬고, 걸어가고, 성장한다.
잊지 말자.
편안함이 곧 행복은 아니다.
불편함이 곧 불행도 아니다.
그 둘은 우리가 걷는 길의 그림자이자 햇살이다.
서로를 끌어안고, 번갈아 등장하며,
우리의 하루를, 삶을, 인생을 완성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