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의 측면에서 바라본
<이처럼 사소한 것들>

한줄 평: 용길 낸다는 것, 연대한다는 것,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

저의 블로그 글에서 가져온 서평입니다


한줄 평: 용길 낸다는 것, 연대한다는 것,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클레어 키건의 대표작으로, 종교 권력이 국가와 결탁해 운영했던 아일랜드의 세탁소를 소재로 한다. 과거 아일랜드에서는 어린 나이에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출산을 경험한 여성들이 강제로 세탁소로 보내졌으며, 높은 강도의 노동을 비인권적인 환경에서 수행해야만 했다. 여성들은 세탁소에서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고, 감금된 채 더러운 환경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세탁소의 노동 착취와 비인격적인 작업 환경은 ‘소문’으로 지역 사회에도 전달되지만, 대중은 본인과 관계없는 사안이라는 이기적인, 어쩌먼 현실적인 태도로 소문을 철저하게 묵인한다.


주인공인 펄롱은 미혼모인 어머니가 16살에 아이를 임신해 태어난 아이이다. 다행히도 필롱의 어머니는 좋은 고용주 밑에서 일하고 있었고, 고용주인 미시즈 월즌은 필롱을 매우 잘 돌봐줬다. 필롱은 잘 성장해 석탄 야적장의 관리자 위치까지 올라갔으며, 귀여운 5명의 딸도 얻었다. 필롱은 현재의 가정적인 삶에 감사를 느끼지만, 다른 평범한 ‘가장’들과 달리 때론 공허함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다른 남자들처럼 ‘미사에 갔다 와 즐겁게 맥주를 몇 잔 마시고 많이 먹으며 휴식을 즐기지 못하는’ 존재이다. 그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은 매우 강렬하게 자리 잡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존재’ 그리고 ‘정체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필롱은 작중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노력하지만 실패한다. 어렸을 때부터 찾아다녔던 아버지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찾을 수 없게 됐고, 어린 시절의 경험은 자녀 그리고 아내에게 간접적으로 외면당한다. 작품에서는 혼란스러워하는 필롱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펄롱에게 강렬하게 각인된 유년 시절의 기억 중 하나는, 어린 시절 산타에게 직소 퍼즐을 선물해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으나 퍼즐이 아닌 소설 <크리스마스의 캐롤>을 받아 진심으로 서러워했던 기억이다. 펄롱의 정체성을 향한 고민은 가족들로 인해 더욱 더 심화된다. 필롱의 첫째 딸은 필롱에게 어렸을 때 산타에게 어떤 선물을 달라고 했는지 물어보는데 필롱은 ‘직소퍼즐’이라고 거짓으로 답한다. 하지만 ‘직소 퍼즐’을 가지고자 했던 필롱의 소박한 꿈조차 순수한 딸에게 “겨우 그것 뿐이었어요?”라며 부정당한다. 때로는 펄롱의 아내가 펄롱의 혼란스러움을 포착하기도 하지만, 필롱에게 지나치게 현실적인 아내의 말과 조언은 큰 위안이 되지 않는다.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던 필롱은 수녀원 세탁소에 있는 여자아이를 장작을 배달하러 갔다 우연히 마주친다. 펄롱은 아이들의 비참한 모습과 상황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비정하게 문을 잠가버리는 수녀들의 언행, 강에라도 뛰어들게 해달라고 말하는 여자아이의 말은 필롱의 머릿속에 맴돈다. 강 그리고 강을 부유하는 시체의 이미지는 필롱의 머리 속에 계속 맴돌며 작품 전반에 스며든다.


세탁소에서 심각한 상태의 여자아이를 목격한 경험은 펄롱의 내적 갈등을 심화시킨다. 일상 생활 중 세탁소에서 목격한 여자아이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며, 이 일로 인해 아내 아일린과 갈등하기도 한다.

“그게, 세상에는 사고를 치는 여자들이 있어. 당신도 그건 잘 알겠지.”

강한 타격은 아니었으나, 그때까지 아일린과 같이 살면서 그런 말을 들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뭔가 작지만 단단한 것이 목구멍에 맺혔고 애를 써보았지만 그걸 말로 꺼낼 수도 삼킬 수도 없었다. 끝내 펄롱은 두 사람 사이에 생긴 것을 그냥 넘기지도 말로 풀어내지도 못했다. (본문 56쪽)


펄롱은 아내와 대화하면서 강한 거리감을 느낀다. 아내에게 여자아이는 ‘우리와 다른, 사고를 친 여자’이지만, 펄롱은 여자아이와의 만남에서 어머니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미시즈 윌슨이 당신처럼 생각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 안 들어?” 펄롱이 아일린을 처다보았다. “그랬다면 우리 어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펄롱은 세탁소의 여자아이가 겪고 있는 경험을, 그의 어머니가 충분히 겪을 수 있는 경험으로 인식한다. 특히 이후 크리스마스이브에 수녀원에서 장작 배달을 갔다, 갇혀 추위에 떨고 있는 소녀를 만난 것은 펄롱의 내적 갈등을 심화시킨다. 펄롱은 수녀들의 눈빛과 아이가 어디있는지 알고 있냐는 소녀의 말을 듣고 수녀원의 추악한 실상을 다시금 깨닫는다.


처음에 펄롱은 수녀들에게 소극적으로 저항한다. 수녀들의 말을 돌려서 받아치는가 하면 그만 떠나라는 수녀의 암묵적인 신호를 무시하기도 한다. 수녀들은 펄롱의 가장 큰 고객이기 때문에, 펄롱은 적극적으로 수녀들에 대응하지 못한다. 소극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여자아이를 도우려고 한다.


“엔다? 그건 남자 이름 아니니?”

아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원래 이름은 뭐야?” 펄롱이 말투를 누그려 물었다.

“세라. 세라 레드먼드요.”

“세라. 우리 어머니 이름하고 같구나” (후략), 본문 82쪽


하지만 펄롱은 소녀의 이름이 어머니의 이름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내적 갈등을 겪고 있던 펄롱에게 이는 자신의 ‘정체성’과 ‘어머니’를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만든다. 펄롱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애써 가족들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려 노력하지만, 아이를 생각하면서 결코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펄롱은 여자아이에 대해 생각하는 걸 회피하려 하지만 결국 죄책감을 느낀다.


펄롱이 거기에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그 아이가 부탁한 단 한 가지 일인데- 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 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써 불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본문 99쪽)

펄롱의 죄책감과 고통은 용감한 선택으로 이어진다. 펄롱은 여자아이를 수녀원에서 몰래 데리고 나온다. 사람들을 마주쳐도 그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 펄롱이 주변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을 용감한 방식으로 여자아이에게 돌려준다. 펄롱은 여자아이를 도우며 네드, 어머니 등 주변사람에게 받았던 사랑을 깨닫고, ‘연대’로 나아간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본문 119쪽)


펄롱은 아이를 도우면서 큰 행복을 느낀다. 펄롱은 아이를 도움으로써 그동안 겪어온 정체성의 문제를 ‘연대’의 방식으로 해결한다. 어쩌면 무모한 행동일 수도 있지만, 순수한 펄롱의 행동은 독자로 하여금 펄롱과 여자아이를 응원하게 한다.


용기를 바탕으로 한 사랑과 연대, 그리고 믿음. 소설은 아일랜드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현재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만든다.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관심 있으신 분은 한 번 읽어보면 좋겠다.


관심 있으신 분은 한 번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