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 추천 여행] APEC 경주, 가성비 한옥 숙소

한옥의 고요함 속에서 찾은, 경주의 느린 하루

가을의 경주는 늘 특별하다.

도시 전체가 노랗게 물드는 시기, 천년 고도의 공기 속에는 다른 도시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정적이 흐른다.

APEC 정상회의로 분주했던 11월의 경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 사이로, 오히려 한층 고요하게 다가오는 한옥의 숨결이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머문 곳은 경주시 중심부의 작은 한옥 게스트하우스, ‘신달하우스’다.

이름조차 시처럼 들리는 그곳에서의 하루는 바쁜 도시의 시간과는 다른 결을 가진 하루였다.

신달하우스는 경주고속버스터미널 인근,

황리단길까지 도보로 10분 남짓 걸리는 위치에 자리한다.

APEC 회의장 인근 숙소를 찾던 여행자들이 많이 머무는 이유가 바로 ‘입지’다.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골목 안쪽에 숨어 있어 소음이 적고, 밤이 되면 마루 위로 바람만이 스쳐간다.

가끔 들려오는 기차 소리와 나무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가을빛이

이 숙소를 더 고요하게 만든다.

이곳은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문을 여는 순간 마루 끝까지 이어진 나무 향이 묘한 안도감을 준다.

객실은 작지만 깔끔하고, 모든 방마다 개별 욕실이 갖춰져 있다.

한옥 특유의 통풍 덕분에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온돌의 따스함이 몸을 감싼다.

침구는 새하얗고 단정하며, 작은 창문 사이로 아침 햇살이 비친다.

‘아, 쉬어간다’는 감각이 이런 걸까 싶다.

신달하우스에는 세 마리 고양이가 살고 있다.

주인보다 먼저 손님을 맞이하는 존재들이다.

고양이들은 숙소 한켠에서 여유롭게 낮잠을 자거나, 손님이 다가가면 느릿하게 눈을 마주친다.

여행 중 우연히 만난 고양이 한 마리의 존재만으로도 낯선 공간은 금세 따뜻해진다.

이곳에서는 그 감정이 하루 종일 이어진다.

그래서인지 이 숙소를 ‘고양이와 머무는 한옥’이라 부르는 사람도 많다.

해가 지고 경주의 불빛이 켜지면, 숙소의 옥상 루프탑이 또 하나의 여행지가 된다.

라운지 이름은 ‘신달빠’.

투숙객이라면 누구나 올라와 맥주 한 잔 하며 도심의 야경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 높지 않은 옥상에서 바라보는 경주의 불빛은 화려하지 않지만 묘하게 따뜻하다.

그 조용한 시간 덕분에 이곳은 ‘혼자 여행해도 외롭지 않은 숙소’로 불린다.

신달하우스는 대형 호텔처럼 크지도, 리조트처럼 번쩍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머무는 사람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곳곳에 묻어 있다.

수건, 드라이기, 세면용품이 기본 구비돼 있고, 아침엔 셀프로 준비된 토스트와 시리얼을 간단히 즐길 수 있다.

한옥의 구조상 방음은 완벽하지 않지만, 대신 여행자들이 서로 조용히 공간을 존중한다.

그 조화가 만들어내는 공기가 이 숙소의 매력이다.

경주 터미널, 첨성대, 대릉원, 황리단길까지 모두 도보 거리.

굳이 차량을 이용하지 않아도, 도보로 천천히 걷는 경주의 풍경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다만 주차 공간은 협소하기 때문에 차량 이용객이라면 인근 공영주차장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걸어서 다니는 여행자라면, 이 숙소가 주는 이동의 자유로움이 큰 장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