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댑싸리와 핑크뮬리가 물드는 시흥 갯골의 가을
11월 초, 바람의 색이 달라진다.
도심을 벗어나 조금만 서쪽으로 향하면, 바다와 가까운 평야 위에 붉은 댑싸리와 분홍빛 핑크뮬리가 만든 거대한 물결이 펼쳐진다.
이곳은 지금, 단 일주일 남짓만 허락된 짧은 가을의 절정을 맞고 있다.
시흥 갯골생태공원의 시작은 산업의 끝에서 출발했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 만들어진 소래염전은 오랫동안 수도권의 소금창고로 불렸지만, 1996년 염전이 문을 닫으며 10년 넘게 버려진 땅이 되었다.
2002년, 시흥시는 이 땅을 다시 품었다.
갯벌의 생태를 복원하고, 인간이 버린 땅에 생명을 되돌리려는 실험이었다.
그리고 2012년, 이곳은 국가 해양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며 새로운 시간을 걷기 시작했다.
가을의 시흥 갯골은 색으로 기억된다.
초록빛을 품던 댑싸리가 10월이면 하나둘 붉게 변한다.
햇살이 비추면 붉은 밭 전체가 타오르는 듯하고, 바람이 불면 불꽃이 물결처럼 흔들린다.
그 옆에서 핑크뮬리는 부드럽게 피어난다.
바람을 머금은 솜사탕처럼 들판을 덮으며, 댑싸리의 선명함과 핑크빛의 흐름이 섞여
한 장의 수채화처럼 완성된다.
이 풍경은 길어야 10월 말에서 11월 초까지.
그래서 지금이 바로, 1년에 단 한 번뿐인 순간이다.
공원의 중심에는 22m 높이의 흔들전망대가 있다.
나무로 만든 6층 구조물은 바람에 흔들리는 갯골의 곡선을 형상화했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나무 향이 풍기고, 꼭대기에 다다르면 시흥의 바다와 붉은 평야가 한눈에 펼쳐진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멀리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수평선 너머로 보인다.
붉은 댑싸리와 분홍빛 뮬리 사이를 흐르는 S자 갯골은, 이 계절의 흐름을 닮았다.
갯골생태공원은 입장료 없이 연중무휴로 개방된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자연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손길이 닿은 복원과 관리가 있다.
주차는 유료(1시간 1,000원, 일 최대 8,000원)이며, 아이들과 함께라면 염전체험이나 전기차 투어 같은 유료 프로그램을 즐길 수도 있다.
특히 남아 있는 두 동의 목조 소금창고는 이 땅의 기억을 품고 있다.
오랜 세월을 견딘 그 건물은 2022년 경기도 등록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자연 속에서, 동시에 시간 속을 걷는다.
가을의 시흥 갯골은 화려하지만 짧다.
11월 중순이 되면 바람이 차가워지고, 붉은 댑싸리들은 하나둘 갈색으로 바랜다.
그래서 사람들은 매년 이 시기를 기다린다.
단풍보다 강렬하고, 억새보다 부드러운 색의 계절을 만나기 위해서다.
공원을 거닐다 보면 문득, 바람이 남긴 소금 냄새 속에서
이곳이 한때 ‘생산의 땅’이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그리고 지금은 ‘생명의 땅’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걸 실감한다.
시흥 갯골생태공원의 가을은 길지 않다.
하지만 그 짧음이 오히려 사람들을 이끌어낸다.
붉은 들판 위로 떨어지는 노을, 바람에 흔들리는 핑크빛, 그리고 해가 저문 뒤에도 남는 은은한 빛.
한 해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잠시 멈춰 선다.
가을은 떠나기 전에 가장 화려한 얼굴을 남긴다.
그 마지막 장면이 보고 싶다면, 이번 주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Travel Info
위치: 경기도 시흥시 동서로 287
입장료: 무료 / 주차 유료 (최대 8,000원)
운영시간: 연중무휴, 체험 프로그램은 오전 9시~오후 6시 (월요일 휴무)
추천 시기: 10월 중순~11월 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