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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책 표지를 만들어요.

표지 속에 상상을 담다.

by 빛나다온

프로그램을 마치고 간식까지 챙겨 먹은 평화로운 오후. 자유롭게 놀게 두는 것도 좋지만 끊임없이 분출되는 아이들의 에너지를 생각하면 이 시간을 조금 더 의미 있는 순간으로 채우고 싶어진다. 아이들과 함께 '책표지 리메이크' 활동을 하기로 했다. 도서관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그 표지를 따라 그리되 자신만의 상상력을 더해 새롭게 표현해 보는 시간이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놀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럴 땐 억지로 시키지 않는다. "안 해도 돼. 그냥 앉아서 보고만 있어도 괜찮아." 이렇게 말해주면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마음의 벽을 슬쩍 내려놓는다. 하지만 내가 한마디 덧붙이면 교실 분위기가 반전된다.
"오늘 예쁘게 완성한 친구들에겐 마이쮸 줄게요~"
그 순간 안 하겠다던 아이들의 눈빛이 번쩍인다. 마이쮸는 정말이지 돌봄 교실의 만병통치약이다.


무심한 척 시큰둥하던 아이들도 슬쩍 종이를 꺼내 들고 색연필을 쥐고 조용히 그림을 시작하는 모습이 참 귀엽다. 책을 고르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꽤나 진지하다.
"선생님, 이건 표지보다 안에 있는 그림이 더 예뻐요."
"저는 동물 나오는 책이 좋아요. 그림 그리기 쉽거든요!"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으로 책을 고른 아이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표지를 구석구석 살피고 그림을 관찰한다. 심지어 제목의 글씨체까지 똑같이 따라 그리겠다며 의지를 활활 불태운다. 색연필, 사인펜, 유성매직... 책상 위엔 색색의 도구들이 펼쳐지고, 돌봄 교실 안은 어느새 미술 학원 못지않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다. 아이들의 상상력은 기발한 이야기와 제목으로 이어진다.


"선생님, 이 주인공이 사실은 외계인이래요. 그래서 머리를 파란색으로 칠할 거예요."

"여기 풍선이 원래는 세 개인데요, 저는 열 개로 바꿨어요. 하늘로 확 날아가는 장면이에요."
어떤 친구는 원래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였던 책 제목을 '피자 할머니와 춤추는 호랑이'로 바꾸고, 또 다른 친구는 '만복이네 떡집'을 '대박이네 아이스크림 가게'로 변신시킨다. '무지개 물고기'는 '다이아몬드 물고기'가 되고, '책을 먹는 여우'는 '스마트폰을 보는 여우'로, '이상한 손님'은 '수상한 손님'으로 심지어 '흔한 남매'는 '흔한 아들딸'이 되기도 한다.

나만 웃긴걸까? 난 웃음이 났다.


'따라 그리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이들의 그림은 순식간에 '창작'으로 진화해 간다. 그림을 그대로 복사하는 아이는 드물고 표지 속 캐릭터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덧붙이며 표정 하나 배경 하나에도 기발한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어떤 아이는 주인공 옆에 자신을 쏙 빼닮은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이건 나예요! 책 읽다가 주인공이랑 친구가 되는 거예요!" 처음엔 망설이던 아이들도 친구들이 그리는 걸 슬쩍슬쩍 훔쳐보더니, 결국 조심스럽게 종이를 꺼내어 색연필을 들기 시작한다.


교실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재미있고 사랑스럽다. 종이 위에 펼쳐진 세계가 마치 새로운 그림책 한 권 같다.
"와, 너 이거 진짜 책 표지 같아!"
"색칠 너무 예쁘다! 어떻게 이런 색을 썼어?"
"표정 어쩜 이렇게 똑같이 그렸어?"
아이들은 서로의 그림을 진심으로 칭찬하고, 기꺼이 감탄해 준다. 그 누구도 비교하거나 흉보지 않는다. 이 세계에선 각자의 그림이 가장 빛나는 최고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활동이 끝날 무렵, 우리는 완성된 책 표지들을 교실 벽면 하나에 붙여뒀다. 작은 갤러리 같기도 하고, 그림책 서점 같기도 한 풍경. 아이들은 뿌듯한 얼굴로 친구들의 그림을 감상하고, 자신의 작품 앞에 서서 포즈를 취하며 환하게 웃는다. 그림 한 장에도 마음이 담기고 색칠 하나에도 기발한 생각이 녹아든다는 것을 아이들을 통해 또 한 번 배운 날. 돌봄 교실의 오후는 오늘도 이렇게 활기차고 반짝인다.



#돌봄 교실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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