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갱춘기와 동행하며 생각·감정 관성 탈출기 #2

'빛고을'의 새벽, 땀으로 쓴 노년의 첫 문장


나를 살아있게 하는, 낯선 빛고을에서의 달림


끈적하고 무더운 8월 초 여름 새벽 5시, 낯선 출장지임에도 불구하고 새벽 5시면 눈이 떠진다. 이제는 거부할 수 없는 신체 나이의 알람이다. 호텔에서 일어나 동이 트기 전 어둠 속에서 김대중컨벤션센터를 바라봤다. 민주주의의 비장함, 교육 현장의 씁쓸한 정서에 높은 습도마저 뒤엉켜 끈적한 젤리처럼 온몸을 휘감았다. 특히 오늘은 몸이 무거워 필자가 좋아하는 마라톤 하기에는 힘든 날이다. 하지만 빛고을 광주에 대한 추모의 마음과 민주주의 변화를 묵묵히 증언해 줬던 새벽 공기, 나무, 강물을 생생하게 담아둘 날이 다시 올까? 오늘 달리지 않으면 후회로 남을 것 같아 주로(走路)에 들어섰다.

새벽 5시의 어둠 속을 달리는 초입부터 필자의 몸은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 광주천과 영산강이 만나는 지점을 통과할 때쯤 새벽 동이 트기 시작했고, 땀으로 온몸이 범벅이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은 허리춤에 닿아 축축한 흔적을 남기고, 축 늘어진 젖은 티셔츠는 달리는 내내 피부에 달라붙어 거슬린다. 땀으로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은 움직일 때마다 따끔거리고, 땀이 뜨거운 눈물처럼 눈을 타고 흘러내려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모든 환경 조건이 마치 필자의 달림을 멈추게 하려고 조작된 듯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 모든 낯선 감각들이 오히려 나를 살아있게 하는 증거로 꿈틀댔기 때문이다. 11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많은 길을 달려왔지만, 낯선 도시의 새벽을 달리는 순간만큼은 모든 감각이 새롭게 꿈틀댄다. 특히 광주라는 도시의 이름이 주는 낯섦과 비장함은 달림을 멈추지 않게 하는 묘한 힘이 되었다. 익숙한 길과 풍경, 익숙한 냄새, 익숙한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오직 나 자신과 광주광역시를 관통하는 영산강의 흐름에만 집중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와 여명의 기운이 거친 숨소리와 뒤섞이며, 이 낯선 풍경의 일부가 되어갔다.



마라톤, 50대에 대한 새로운 해답


삶이 주는 선택의 무게와 갱춘기의 혼란 속에서 50대(나이를 한 살이라도 줄이고 싶은 심정의 표현임)의 필자는 방황과 무기력감을 선택하고 있었다. 아니 이미 선택되려고 시스템화된 길에 들어선 것일 수도 있다. 직장에서의 업무보고와 결정에 대한 스트레스는 숨쉬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양과 속도로 덮쳐왔고, 거울 속 주름진 얼굴과 늘어나는 흰 머리카락은 젊은 날의 나를 조롱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 낯선 도시의 새벽을 달리며, 잠시 모든 것을 잊는다. 발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뜨거운 지열, 귓가에 울리는 거친 심장 박동, 온몸을 짓누르는 습하고 무거운 공기. 이 모든 감각이 직장을 별개의 것으로 만들며 낯선 현실 안으로 끌어당겼다.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은 무겁고, 숨은 턱밑까지 차오르지만, 이 고통을 견뎌내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고통의 끝, 견딤, 완주의 희열, 땀과 함께 방출한 노폐물과 마음의 짐은 그 어떤 보상보다 값진 달림의 선물이었다. 50대의 삶은 어쩌면 마라톤처럼 극한의 고통을 견뎌내며, 익숙함과 결별하고, 낯섦과의 새로운 만남인지도 모르겠다. 낯선 도시의 새벽을 달리며 나는 깨달았다. 삶의 의미는 거창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낯선 바람과 풍경, 냄새, 온도와 더불어 온몸으로 느껴지는 생생한 지금 이 순간의 생각과 감정 속에 있다는 것을. 한 달에 한 번씩 하프마라톤 대회에 참여하며 수많은 낯선 사람들과 가보지 않았던 낯선 길을 달려왔지만, 오늘 광주에서의 마라톤은 기존의 생각과 감정을 멈추고 삶의 해답을 찾는 새 빛이 되어주었다. 괜히 '빛고을'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 아니었다.



노년의 첫 문장, 길 위에서 쓰다


마라톤을 시작한 지 11년이나 되었다. 이번 출장지인 광주에서의 마라톤은 익숙함에 젖어 무감각해졌던 감각들이 낯선 풍경과 냄새, 소리들을 만나며 깨어나기에 충분했다. 희미하게 떠오르는 여명 속, 멀리 보이는 도심의 실루엣은 마치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듯했다. 여명이 걷히고 밝음으로 이어지며 영산강을 끼고 달리는 상상 속 모습은 흥분과 속도를 가속화했다. 하지만 곧 실망감으로 되돌아왔다. 영산강은 우거진 수풀에 가려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열대성 더위에 웃자란 풀들 만이 길을 열어 달림을 안내해주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달리는 내내 영산강은 끝내 물길을 보여주지 않았고, 가는 길은 끝이 없어 보였다.

언제 돌아가야 할지 고민을 할 때였다. 게릴라성 폭우로 인해 길이 끊겨 위험하다는 안내 현수막이 달림의 길을 멈추게 했다. 속으로는 잘 됐다고 생각하며 되돌아갈 명분이 생긴 것에 감사하며 멈출 마음을 먹은 순간, 옆으로 한 사람이 숨을 헐떡거리며 스쳐 지나갔다. 그 사람도 필자처럼 땀에 젖어 끈적거리는 옷과 몸, 거친 숨소리와 고통스러워 보였지만, 위험하다는 안내 현수막이 달림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 듯했다.

그 사람에게는 필자와 달림의 목적이 다름이 분명해 보였고, 멈췄던 필자를 달리게 하는 자극이 되었다. 나란히 달리며 얼굴을 봤다. 피부를 보니 필자보다 2~3살 더 먹어 보였으나 약간 벗어진 머리가 나이를 더 먹어 보이게 했다. 인사를 건넸는데 당황했는지 첫인사는 받아주지 않았고 두 번째 인사를 퉁명스럽게 받아 주었다. 매일 달리는지 질문을 하자 달림 이들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났다. '매일 10km를 달린다.' '맥박수는 140을 넘지 않게 달린다.' '달린 지 10년이 넘었다.' '매월 달리기 대회에 참여한다.' '건강을 위해 달리는 것이지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 맞장구를 쳐주자 더 신나 말을 이어갔다. 덕분에 '관계의 낯섦 2km'는 신체의 피로와 고통을 잠시 잊을 수 있는 거리가 되었다.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근육은 적당히 긴장하며 고통을 잊게 만드는 놀라운 힘이 있으며 온전히 살아있음을 증명함을 이곳에서 다시 경험했다.

오늘 달리는 이 낯선 길 위에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낯선 이를 통해 질문하게 되었고,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나 자신에게 다시 묻고 답하게 되었다. 젊은 날의 무모함도, 50대의 노련함도 아닌, 그저 매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현재의 나를 느끼게 했다. 타인과의 경쟁, 속도와의 경쟁, 나 자신과의 경쟁으로부터 멀어지며 낯선 풍경, 낯선 사람과 달리는 모습은 마치 노년의 새로운 페이지를 시작하는 브런치 작가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모르지만, 나는 기꺼이 그 첫 문장을 써 내려갈 준비가 되었다. 다시 태어나는 기분으로 말이다.



삶의 의미는 결국 낯섦 속에서 피어나는가?


어둠이 걷히고 희미한 햇살이 강렬한 빛으로 광범위하게 강변을 비추는 순간, 나의 마라톤도 끝이 났다.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된 운동화 끈을 풀고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른다. 낯선 도시의 새벽을 달린 1시간 10분이라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은 50대의 나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삶의 의미는 익숙함 속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낯섦 속으로 뛰어드는 용기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거친 호흡, 멈추지 않는 땀방울과 근육의 통증이 만들어낸 이 생생하고 낯선 경험은 나에게 다시 견뎌낼 바탕이 되었다. 광주에서 마주한 낯선 풍경과 나 자신. 필자는 이 모든 낯섦을 통해 어제까지 살아왔던 삶의 의미를 다시금 환기하며, 다음 낯선 출발선에 설 용기를 얻었다.

50대라는 무게가 버거워질 때쯤, 낯선 도시 광주에서 달렸다. 쉼 없이 돌아가는 직장의 톱니바퀴, 거울 속 늙어가는 얼굴과 마주하는 갱춘기의 혼란, 텅 빈 공간을 채우는 외로움과 고독은 새벽 공기와 영산강처럼 뒤로 흘러갔다. 신발 끈을 고쳐 매고 내딛는 발걸음마다 새로움에 대한 기대감이 충전되고, 영산강이 습기와 함께 전해준 물 비린내와 인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우거진 풀 내음마저 코끝을 간지럽혀 상큼했다.

묵묵히 견디며 달렸다.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는 이 순간, 필자는 그 어떤 것도 아닌, 그저 달리고 있는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뿐이었다. 낯섦은 늘 나에게 던지는 의문문으로 시작해서 나름의 삶의 의미가 더해지며 끝이 난다. 이 끝은 새로운 시작임을 품고 말이다. 낯선 곳에서 달림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keyword
이전 01화갱춘기와 동행하며 생각·감정 관성 탈출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