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나에게 익숙해지기 - 2화. 임플란트와 갱춘기 , ‘비움’의미학
예고 없이 찾아온 통증은 그동안 내 몸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보여주는 바로미터이다. 며칠 전, 그동안 미뤄왔던 숙제처럼 치과 수술대에 누웠을 때, 뼈를 깎고 잇몸을 도려내는 고통보다 더 강렬한 것은 ‘갱춘기의 망가진 몸과 치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었다.
초음파 사진 속 어금니가 부서져 내리고 잇몸에 염증이 가득하다는 진단은 단순한 치아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50여 년의 시간 동안 내 몸을 소홀히 다루고, 끊임없이 혹사했던 삶의 기록처럼 느껴졌다. 무심코 지나쳤던 피곤함과 스트레스, 술, 담배, 불규칙한 식습관, 아파도 참았던 행동들이 지금의 통증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수술대 위에서 방치하고 돌아보지 않았던 지난날의 나를 반성하며, 미뤄왔던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부정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망가진 나 자신을 수술대가 받아들여주니, 오히려 속이 다 시원했다.
나를 위로하며 응원해주던 간호사의 말(사실, 간호사가 내 치아 상태를 보고 비웃거나 비난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가장 아픈 순간은 마취 주삿바늘이 잇몸 깊숙이, 뼈에 닿는 순간이에요. 따끔할 거예요." 하지만 마취는 예상보다 통증이 훨씬 심했다. 저절로 "아!!!!"라는 비명이 목구멍을 뚫고 새어 나왔다. 마취 이후 수술이 시작되었다. 수면 수술이 아니었기에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통증은 없지만 감각은 살아 있어 수술 과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살이 메스에 의해 찢기는 소리, 드릴이 뼈를 뚫고 들어가는 굉음, 망치로 나사못(임플란트)을 잇몸에 박을 때는 머리까지 울렸다.
"이 모든 고통은 내가 그동안 내 몸을 돌보지 않은 대가이구나."
남들보다 앞서가기 위해, 혹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 쉴 새 없이 달려온 시간들. 퇴근 후 이어지던 늦은 회식 자리에서 수도 없이 넘기던 술잔, 잠 못 이루게 했던 스트레스, 그리고 치아 건강보다 타인에게 인정받으려 했던 끝없는 욕심으로 가득 찼던 시간들. 이 수술은 그 빚을 갚는 시간이자, 갱춘기를 맞이하며 내 몸이 보내는 마지막 경고와도 같았다. 아프다고 소리치면 마취제를 더 놓아주던 의사의 손길은 그동안 내가 외면하고 방치해 심각해진 건강 상태를 보듬어 주는 듯했지만, 마음은 더욱 아팠다.
수술실에서의 네 시간은 고통의 시간이었고, 지난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특히 '비움'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이 되었다.
의사가 염증을 긁어낼 때 가장 아팠다. 늙은 호박을 갈라 놓고 놋수저로 긁는 듯한 소리와 통증이 마취를 뚫고 비명으로 흘러 나왔다. 망가진 치아는 잇몸을 부여잡고 발악하다가 결국 부스러지며 수술용 펜치에 이끌려 잇몸을 떠났다. 사랑니를 포함해 7개를 발치했다.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반평생을 함께하던 치아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과 그동안 고생한 치아를 떠나보내는 마음이 눈물이 되어 뺨으로 흘러내렸다.
눈물은 내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끄집어내어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는 상상으로 이어졌다. 치통을 상상으로 극복하려는 의도적인 노력이었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놓지 못하고 움켜쥐고 살았을까? 타인의 시선, 나를 소진시키는 인간관계, 의미 없는 타인과의 경쟁과 허세. 이 모든 것이 몸과 생각과 감정을 갉아먹는 만성 염증이 되어 온몸과 감정에 쌓여 불필요한 신념이 되어있었다. 7개의 임플란트와 7개의 발치에 들어간 비용은 1천 4백만 원. 내 몸이 그동안의 허세를 채우기 위해 방치했었던 나에게 청구한 냉정하고 눈물 젖은 고지서였다. 상당한 금액을 고스란히 바쳐야 할 만큼 큰 금액은 물질적인 것을 넘어 내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갱춘기를 보내는 있는 지금은 비워야 한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타인의 인정 욕구를 비우고 나의 건강을 채워야 한다. 끝없는 소유욕을 비우고 가벼운 마음을 채워야 한다. 그리고 겉치레를 비워내고 진정한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채워야 할 시간이다. 더 이상 완벽해 보이기 위해 애쓰지 않고,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정직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너무 많은 에너지를 한 곳에 쏟아 붇지 않고 적절하게 배분하는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
망가진 치아를 비워내고 임플란트로 채웠듯이, 불필요한 것을 비워내고 노년을 대비한 생각과 감정을 가볍게 채워야 한다.
수술은 고통스러웠지만, 그 끝에는 분명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얗고 가지런한 임플란트 치아와 함께, 욱신거리던 잇몸이 사라진 자리에서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씹는 즐거움, 그리고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자신감을 되찾게 되었다. 육체적인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지만, 나를 방치했던 죄책감, 수치심, 두려움과 후회의 정신적 고통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게 새겨진다. 다행히 나는 지금 이 순간, 늦지 않게 몸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치과 수술을 하면서 앞으로의 삶을 건강하게 채워나갈 용기를 얻었다. 뼈를 깎고 살을 째는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고 나니, 마치 오래된 껍질을 깨고 나온 듯한 해방감과 속 시원함이 느껴졌다. 이 아픔이 나를 위한 가장 큰 투자와 생각의 전환점이 되었고, 노년의 인생을 건강하고 단단하게 지탱해 줄 중요한 경험이 될 것이다.
"갱춘기가 건강과 치아의 망실을 주었지만 노년을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오십대라는 나이, 우리는 인생의 후반전인 노년기를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그동안 애써 달려온 우리 모두에게, 이제는 잠시 멈춰 서서 내 몸과 마음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합니다. 혹시 욱신거리는 잇몸을 애써 외면하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혹은 그보다 더한 마음의 통증을 꾹 참으며 살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이 글이, 그동안의 생각과 감정 관성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괜찮아, 고생 많았어'라고 말해주는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첫걸음으로, 용기 내어 치과에 방문하거나 미뤘던 건강검진을 예약해 보세요. 가족을 사랑한다면 건강한 몸이야말로 우리가 노년기에 누릴 수 있는 가장 값진 재산이니까요. 더 늦기 전에, 몸과 정신적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마주하는 용기를 내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노년기 인생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