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화. 서시: 가슴이 두근 거리는 날
2017년 겨울. '버킷리스트'대로 '시집' 출간에 도전했다. 온전히 내 돈을 들여서 말이다.
'어느 출판사가 글쓰기에 소질이 없는 내 글을 출판해 주겠는가?'라는 생각이었다.
시를 쓰는 동안 관계가 만들어 줬던 페르소나를 벗어 버릴 수 있었기에 투자했던 돈과 시간은 아깝지 않았다.
부끄럽기도 하고... 기대도 되고... 복합적인 감정으로 인해 적지 않게 흥분되고 설레는 날을 보냈다.
나를 온전하면서도 다양하게 만날 수 있었고, 삶면서 쌓아왔던 낡은 것들을 글쓰기를 통해 끄집어낼 수 있었다.
내 마음속 구석에 숨어 악취를 풍기던 쓰레기와 같은 생각과 감정 찌꺼기를 단어에 함축해서 비워내고 싶었다.
시집에 수록하는 순간 비로소 그것들이 내 마음속에서 떠나버렸다.
그 당시 출간한 시집의 제목은 '나야!'다.
나의 어리석음과 열등감과 우월감의 실체 등을 온전히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지금 읽어보니 부끄럽지만
하지만 속마음은 이러하다.
'내가 이렇게 시를 솔직하게 잘 썼나?'
'지금 쓰라면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지금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변화가 없네...'
2017년에 가졌던 당시의 생각을 톺아볼 수 있어서 마치 낯선 이방인이 된듯했다.
참고로, 필자는 시집을 출간했고, 서각(書刻), 그림(서양화, 한국화), 서예, 마라톤 등 스스로를 찾아가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아마튜어로서 서툴게 흉내 내는 수준이지만 새로움을 갈망하는 내면의 빈 공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책장을 펼쳐 과거 속의 나를 만나는 경험만으로도 설레고 흥분되는 감정과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만 봐도 빈 공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작은 행동 하나에도 일상의 루틴에 생각과 감정의 작은 균열이 생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를 빨리 알아차리는 '의도된 연습'이다.
늘 낯섦의 안테나를 세워 생각과 감정 공간의 틈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연습말이다.
'우리 모두는 빈 감정 공간을 가지고 있으나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고 수정하는 동안 과거에 세팅되었던 생각과 감정이 '지금'이라는 옷을 입고 새로운 생각과 감정으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있다.
내 생각과 감정에 균열이 생기며 빈 공간에 두근거림을 '다시' 채웠다.
균열의 틈에서 빈 공간을 채워준 필자의 첫 시를 소개한다.
가슴이 두근 거리는 날
눈부신 하늘이
길가의 작은 꽃이
맹꽁이 노랫소리가
귓바퀴를 타고 도는 바람소리가
저마다의 향긋한 꽃향기가
시시각각 변하는 사람 내음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차안대를 쓰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끝도 보이지 않는 무형의 상대와
경쟁만 하며 달려온
삶의 시선을 부숴버리고
불현듯
나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인생은
정답이 없음을,
행복은
바로 옆에 있음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을
달리고 또 달리기만 한 내면이
부끄럽고 처량하기만 하다.
이제는
나다운 삶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삶을 박차고 나아갈 나를 격려하기 위하여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본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새롭게 태어나
주어진 삶의 길에
첫발을 내딛는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 2017년. 출간을 하기 위한 마지막 작업으로 '서시'를 썼다. 시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하지만, 시를 쓰는 동안 '있는 그대로의 내 내면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겨서 그런지,
가식 없고, 퇴고 없이 10분 만에 써 내려갔다.
좋은 '시'라는 '외부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시를 쓰는' 행위' 자체가 내 마음에 빈 공간을 만들어 줬고, 지금을 견뎌내는 자양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