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화. 가장 익숙한 풍경 속의 낯선 나
2021년 5월 23일 일요일. 일기글에서 발췌
양재천을 아내와 함께 걸었다.
둘째 아들 때문에 서울에 들렀다가 인천 집으로 가는 길이었고,
늘 관심 없이 스쳐 지나다니던 그런 장소였다.
그날따라 햇볕이 너무 좋은 데다가 양재천 주변의 키 큰 벚나무의 풍성함이 브레이크를 밟게 했다.
"양재천 걷고 집에 갈까?"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고,
아내도 흔쾌히
"좋아!"
라며 밝은 표정으로 답을 해 주었다.
'우리 부부는 로또는 아닌 게 확실하다.'
하지만, 더워서 오랫동안 걷기는 힘들었다.
더 힘들었던 상황은 초행의 낯선 길이라 양재천 입구를 찾지 못해 당황했다는 점이다.
큰 길가 아래로 양재천과 수변로는 보이는데 내려가는 입구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눈에 보이는 길도 입구를 못 찾아 다른 길로 가야 하는 것이 삶이다.'
초여름 더위에 아내가 힘들어할까 봐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키 큰 벚나무가 그늘을 마련해 줬다.
벚나무가 만든 그림자와 따가운 초여름 햇볕이 인상주의 화폭을 닮아 지루하지는 않았다.
마네, 모네, 르느와르를 이야기하며 자전거 길을 따라가니 양재천 입구가 왼편에 보여 반가웠다.
하지만, 양재천은 실망감을 안겨줬다.
생각보다 폭이 좁고 수량이 적었기 때문이다.
'양재천에 대한 상상이 틀어지며 생각에 균열이 생겼고 그 틈에 감정이 들어섰다.'
대한민국의 수도이기에 양재천 마저도 멋진 풍경일 것이라는 이상적 상상과 달리
눈에 보이는 현실적 풍경의 차이로 인해
내 생각에 균열이 생겼고, 그 틈에 감정이 들어섰다.
그 감정은 실망감이었고,
기존의 기대감은 감정의 자리를 내주었다.
'역시, 상상과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새롭고 낯선 상황은 연속된 결정과 선택의 순간들로 이어지며 적당한 긴장감이 형성된다.
'어디까지 가야 할지?, 갈림길에서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언제 되돌아가야 할지?...'
'이 길을 언제 다시 와볼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은 사진을 찍고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리고, 걷는 내내 주변 환경이 바뀌기 때문에 시선과 생각이 다양한 곳에 머문다.
그래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게다가 새로운 길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이 눈과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뛰고, 걷고, 자전거 타거나, 벤치에 앉은 사람,
부부, 가족, 연인 등 구성원도 다르고 행동도 제 각각이다.
서울 양재천이 아니더라도 수변로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들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양재천은 아내와 나에게는 존재의 의미로 다가와 새로운 생각과 감정을 선택하게 했다.
내 눈에 비친 양재천이라는 낯선 풍경은 원래 그 자리에서 묵묵히 생장하고 있었고,
양재천 수변로를 뛰고, 걷고, 자전거 타는 연인, 부부, 가족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모두 삶의 주인공이었고 때로는 조력자였다.
다만, 내 눈과 가슴에 그 모습들이 의미로 남게될 빈 공간 마련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양재천이라는 낯선 환경이 낯선 사람들(그들은 일상일지 모르나, 나에겐 낯선)을 만나게 했고,
그 낯섦이 차안대를 차고 달렸던 내 삶의 주로를 바꿔주며 잠시 생각과 감정의 빈 공간을 열어줬다.
이런 깨달음은 양재천에서의 경험이 처음은 아니었다. 문득 2016년에 썼던 시 한 편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