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은 불과 5분 뒤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반도에서의 지각 이동은 미국과 NATO의 안보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안입니다. 미국은 한국 정부와 긴밀히 공조하고 있으며, 필요시 북한 내 핵시설 통제에 공동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중국 외교부 역시 신속한 성명을 발표했다.
“중국은 백두산 일대의 안정과 국경 질서를 위해 한국과 즉각적인 협의에 착수한다. 북한 영토의 평정은 지역 전체의 평정이며, 그 책임은 국제사회 모두에게 있다.”
러시아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위성은 러시아군 정찰기가 백두산 상공을 스치듯 비행한 장면을 조용히 포착하고 있었다. 말보다 먼저 움직인 것은 언제나 군사력이었다.
일본 정부는 아무런 입장도 내지 못한 채 침묵했다. 난카이 대지진으로 내각이 사실상 붕괴된 상태였고, 총리 대행은 “현재 일본은 외부 사안에 개입할 여력이 없다”며 회견을 무기한 연기했다. 일본의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무력함의 선언이었다.
그날 오후, 평양에서는 공식 채널이 전면 정지되었다. 방송은 몇 차례 재송출되다 끊겼고, 화면 속 자막은 반복적으로 단 한 문장을 내보냈다.
“체제는 안정적이다.”
그러나 방송국 건물 위로는 백두산 방향에서 날아든 희미한 재 입자가 떠돌고 있었다. 하늘은 점점 더 뿌옇게 흐려졌고, 거리에는 정체 모를 먼지와 안개가 뒤섞여 있었다.
직접적인 피해는 아직 없었지만, 사람들은 곧 닥쳐올 가능성을 예감하고 있었다. 백두산 방향의 하늘은 붉게 물들고 있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재가 공기 중에 서서히 섞이기 시작했다. 누구도 입 밖에 내진 않았지만, 평양조차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이 조용히 퍼져갔다.
그 불안은 체제 내부의 두려움과 공포를 더욱 부풀렸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재난이 다가오고 있다는 막연한 공포가 서서히 체제 내부를 조용히 무너뜨리고 있었다.
시내 곳곳에서는 통신망이 불안정해졌고, 일부 지역에서는 전력 공급도 끊겼다. 그러나 진짜 혼란은 물리적 피해가 아니라 정보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 공공기관과 병원은 자체 발전기를 돌렸지만, 통신 두절로 인해 구조 요청조차 쉽지 않았다.
명확한 지시가 없자 주민들 사이엔 루머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지도자가 이미 도망쳤다’는 이야기, ‘백두산이 며칠 내 폭발한다’는 속보가 입에서 입으로 돌았고, 사람들은 생필품을 사재기하며 밤새 상점 앞에 줄을 섰다.
권위 있는 설명이 사라지자, 체제의 통제력이 느슨해졌다는 것을 모두가 직감하고 있었다. 일부 지역에선 군복을 입은 병력이 더 이상 질서를 유지하지 않았고, 몇몇 간부들의 무단이탈이 보고되었다. 명령 체계의 단절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동시에 평양 외곽의 비밀 활주로에서는 긴박한 교신이 오가고 있었다.
“중국 측 착륙 허가는 받았나?”
“예, 랴오닝성 인근 공항에서 1차 허가는 내려왔습니다. 다만 최종 승인은 아직 협의 중입니다.”
“조건은 뭔가?”
“핵 관련 자산에 대한 사전 이양 보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말이 가리키는 의미는 분명했다. 그것은 망명이 아니라, 체제의 항복을 의미하고 있었다.
동시각, 활주로에 서 있던 전용기 한 대가 서둘러 이륙 준비에 들어갔다. 청와대에 도착한 첩보는 짧았다.
“북한 최고지도자, 중국 랴오닝성 향해 출국 중.”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내부 간부들은 알고 있었다. 그 비행은 돌아오지 않을 여정이라는 것을.
한 위성 영상은 이륙 중인 전용기의 엔진 열기를 포착했다. 그 열기 속에서 흐려진 하늘이 갈라지듯 흔들렸다. 그 장면은 단지 지도자의 도피가 아니었다. 북한 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한 최초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위성은 또 다른 움직임을 포착했다. 평양 핵시설 단지에서 차량 수십 대가 줄지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 행렬은 정부의 공식적 이동이 아니었다. 기밀 자료와 물자를 실은 차량들, 고위 간부 가족을 실은 차량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일부 차량은 군부대의 보호 아래 움직였지만, 상당수는 별다른 통제 없이 도심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체제의 유산을 실은 탈출 행렬이었다. 지휘가 없고, 통제가 없고, 발표도 없었다. 그곳엔 다만 무너지는 권력의 그림자와, 그것을 감싸려는 마지막 몸짓만이 남아 있었다.
백두산은 그 시각, 두 번째 호흡을 내쉬고 있었다. 수증기 기둥이 하늘로 솟구치며 마치 심장 박동처럼 리듬을 만들었다. 폭발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모든 징후는 임박한 결말을 암시하고 있었다.
한반도 북부는 더 이상 국가라 부를 수 없었다.
백두산은 단지 자연의 분화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 정권의 마지막 숨을 삼키고 있었고, 동시에 새로운 질서를 밀어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