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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카운트다운

by 홍종원

오전 11시 30분. 실시간으로 중계되던 백두산 정상 영상에서 연기 기둥이 처음으로 붉은 기운을 띠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그 색을 마그마가 지표 가까이 솟구칠 때 나타나는 징후라고 설명해 왔다. 더 이상 분화는 가능성이 아니라 시간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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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훈 국가안보실장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분화가 임박했습니다. 이제 우리도 결정해야 할 시간입니다.”


잠시 후, 화면 아래에 새로운 수치가 떠올랐다. 마그마 상승 속도 증가 – 분화 예상 시간 5시간 후. 회의실 안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두려움보다는, 무언가 거대한 흐름이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이 먼저 가슴을 짓눌렀다. 그 침묵은 공포의 침묵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첫 호흡을 기다리는 정적에 가까웠다.


3월 12일 정오 12시. 대한민국 정부는 역사상 처음으로 군사와 민간을 통합한 전면 재배치 명령을 발령했다. 발표문은 명확했다. 도망이 아니라 이동, 회피가 아니라 전환이었다.


정부는 이렇게 밝혔다.
“백두산의 분화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대한민국은 모든 국민과 북한 주민의 생명을 보호하며, 국토 운영 체계를 새로운 형태로 전환합니다.”


그 명령이 떨어지자 전국은 정지되지 않았다. 오히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KTX 노선은 대피열차가 아닌 수송체계로 즉시 전환되었고, 열차는 남쪽으로 사람을 피신시키는 것이 아니라 북쪽으로 인력과 자원을 실어 나를 준비를 했다. 서울역 광장에는 의료진, 그리고 ‘무언가라도 돕겠다’며 스스로 나선 청년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것은 피난 짐가방이 아니라 지원 신청서였다.


도시는 멈추지 않았다. 기능이 바뀌었을 뿐이었다. 전력망, 통신망, 물류망이 하나둘씩 북쪽을 향해 재편되는 과정은 단순한 비상조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의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순간이었고, 한반도가 새로운 체제를 향해 스스로를 구조조정하는 장면이었다.


백두산의 붉은 숨결은, 재난의 신호가 아니라 한 시대의 전환점이었다.


오후 12시 30분, 국가위기센터.
“마그마 상승 속도 초당 1.4미터 돌파. 분화 예상 시점 4시간 이내입니다.”
백두산 상공 영상은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듯 수증기 기둥이 주기적으로 맥동하고 있었다. 해외 전문가를 연결한 화상 회의에서는 더 이상 신중한 표현이 등장하지 않았다.
“이것은 분화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분화가 시작된 상태입니다.”
그 한마디는 곧, 앞으로의 결정이 정책이 아니라 운명을 다루는 선택이 된다는 뜻이었다.


오후 1시 정각. 윤현우 대통령이 전 국민 앞에 섰다.
“국민 여러분. 백두산은 곧 분화합니다.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비되어 있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의 지시나 승인 아래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한반도 전체를 ‘생존과 재건의 공동 운명권’으로 선언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 땅의 주인입니다.”
그 순간, 국민들은 자신들을 ‘피난민’이 아닌 ‘개척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오후 1시 40분. 서울 국립지진관측센터 메인 화면이 급격히 변했다. 파형은 심장박동처럼 규칙적이었지만, 점점 간격이 줄어들고 있었다.
“마그마 상승 속도, 초당 2.3미터 돌파. 분화 예상 시간, 2시간 이내.”
연구원들은 숨을 길게 들이쉬지 못했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곧 열릴 문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그 시각,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
윤현우 대통령은 모니터에 표시된 북한 북부 지역의 열화상 영상을 바라보았다. 도로는 이미 붉게 물들었고, 주민들은 남쪽과 중국 국경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발표하는 내용은 한반도 전체의 안전을 위한 인도주의 조치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단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오늘 북한 북부 지역을 ‘긴급관리 구역’으로 선포하고, 군과 구조대를 투입합니다. 이 작전은 침공이 아니라 생명 보호 작전입니다. 핵시설과 생존 인구를 방치하면, 화산보다 더 큰 비극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전 세계 위성망에 한국군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전투태세가 아니었다. 구호 차량과 의료 지원단, 핵 안전 전담 인력이 이미 북부 투입 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이었다. 백두산은 자연의 폭발을 준비하고 있었고, 한국은 그 폭발 이후의 역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후 2시 50분, 백두산 정상부의 라이브 화면이 전체 모니터를 가득 채웠다. 눈 덮인 지표가 눈으로도 느껴질 만큼 팽창하고 있었고, 정상부의 그림자는 호흡하듯 주기적으로 들썩였다. 마치 땅 전체가 폐를 가진 생명체인 것처럼 “숨”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장주기 신호, 폭발 전 임계치에 도달했습니다.”
“마그마 분출 예상 시간, 최대 한 시간 이내입니다.”


누구도 말을 잇지 않았다. 숨소리 하나조차 조심스러워진 회의장 안에서 대통령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모든 사람의 시선을 정면으로 끌어당겼다.


“백두산은 곧 분화합니다. 우리는 준비되어 있으며, 이 상황을 정면으로 맞설 것입니다.”


그 한 문장은 더 이상 지시가 아니었다. 한반도 전체가 앞으로 어떤 시대를 선택할 것인지, 그 방향을 선언하는 문장이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서쪽 하늘은 불꽃처럼 붉게 물들었다. 멀리서 바라본 백두산의 실루엣은 마치 숨결을 머금은 심장처럼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었다. 인간의 귀로 들을 수는 없지만, 몸 전체로 전해지는 원초적 울림이 있었다.


백두산은 지금, 첫 호흡을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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