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은 잠시 숨을 고르는 듯 고요해졌지만, 누구도 그것을 안도의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두가 알았다. 지금의 정적은 끝이 아니라, 곧 이어질 ‘두 번째 폭발’을 준비하는 침묵이라는 것을. 지하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규칙적인 진동은 마치 거대한 생명체가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박동처럼 느껴졌다. 땅은 살아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생명은 폭발이라는 형태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오후 4시 35분. 평양 상공에서 태양이 사라졌다. 태양은 여전히 떠 있었지만, 빛이 땅까지 닿지 못했다. 백두산의 두 번째 폭발이 시작된 것이다. 거대한 화산재 구름이 하늘을 뒤덮으며 햇빛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것을 먹구름이라 생각했지만, 곧 깨달았다. 저건 구름이 아니라, 빛을 지워버리는 재앙 그 자체라는 것을. 하늘이 어두워지는 데에는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땅 위에서는 그림자도, 색도, 시간도 사라졌다. 세상은 낮이 아닌데도 밤이 되었고, 누구도 그 어둠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다.
공기는 갑작스러운 진동과 함께 비명을 지르듯 떨렸다. 초고열의 화산가스가 음속을 넘어 분출하며 대기를 폭발시켰고, 음파는 산맥을 부수며 순식간에 평야를 덮쳤다. 함경북도 길주 일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산은 무너져 바다가 되었고, 강물은 끓어오르며 증발한 뒤 폭발하여 하늘로 치솟았다. 그것은 물이 아니라 ‘행성 내부의 피’였다.
몇 초 후, 화쇄류는 시속 70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밀려오는 것이었다. 나무는 불타기도 전에 무너졌고, 건물은 벽돌이 아니라 먼지로 산산이 해체되었다. 철로 지은 탑은 열풍을 맞자 종이처럼 구부러졌고, 바위는 유리처럼 녹아 흘렀다. 모든 생명은 그 자리에서 증발했다. 그곳은 더 이상 ‘땅’으로 불릴 수 없는 공간, 지각 너머의 세계였다.
평양 역시 직접적인 용암에 닿지 않았음에도 붕괴했다. 전력과 수도는 완전히 마비되었고, 병원에서는 인공호흡기와 인큐베이터가 동시에 멈췄다. 환자들은 기계가 멈추는 순간, 마치 누군가 목을 조르듯 숨이 끊어졌다. 거리의 사람들은 천이나 비닐로 얼굴을 감쌌지만, 그 천은 단 몇 초 만에 화산재에 젖어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피부를 태웠다. 숨을 쉬기 위한 행위가 곧 목숨을 잃는 행위가 되었다.
서울의 국가위기관리센터는 실시간 위성 영상을 통해 이 모든 상황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위성 영상은 하나둘씩 꺼져갔다. 화산재 구름이 전파를 가로막으며 스크린 위의 북한 지도는 검은 노이즈로 변해갔고, 함경도는 지구상에서 지워졌다. 평안북도 역시 붉은 경고색으로 뒤덮이더니 곧 사라졌다. 지도는 더 이상 영토를 표시하는 도구가 아니었다. 국가라는 존재 자체가, 화면 위에서 사망 선고를 받고 있었다.
국제사회는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화면에는 처음으로 이런 문장이 등장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자연재해로 인해 국가 기능을 상실한 무정부 지대로 분류된다.”
윤현우 대통령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방 안의 모든 사람을 얼어붙게 했다.
“이제 북쪽은 인간의 땅이 아닙니다.”
합참의장이 고개를 들어 말했다.
“미군 작전지휘부가 백악관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작권은 여전히 워싱턴에 있습니다. 현재 어떤 군사행동도, 인도적 구조활동도 승인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단순한 사실의 전달이 아니라, 한국이 가진 권한의 한계를 드러내는 선언이었다. 자연은 이미 국경을 지웠지만, 인간의 정치체계는 여전히 그 선을 붙잡고 있었다. 국경 이북은 사라졌지만, 한국군은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사람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합참의장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누구보다 무거웠다.
하늘은 더 이상 하늘이 아니었다. 대기 상층을 찢고 올라간 마그마 기둥은 성층권을 뚫고 우주로까지 치솟았다는 분석이 실시간으로 보고되었다. 위성의 열 감지 센서는 한꺼번에 경보를 울리며 화면에 붉은 파형을 띄웠고, 그 파형은 곧 지도 전체를 검게 지워버리는 커다란 그림자로 변했다. 이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닌, 행성 규모의 파열이었다.
지구 기상기구는 동시에 경보를 발령했다. 상황실에서 한 직원이 보고했다.
“백두산 폭발 규모는 VEI 7으로 확인됩니다. 지구 기후는 이미 변곡점을 지난 상태입니다.”
VEI(Volcanic Explosivity Index) 7.
이는 단순히 수치가 아니라, ‘지구가 다른 상태로 진입했다’는 선언이었다.
전문가들은 마치 전염병이 확산되듯 짧고 빠르게 보고서를 공유했다.
“전 세계 평균기온 하락 예상.”
“유럽 항공노선 전면 폐쇄 검토.”
“한반도 북부, 복구 불가 지역으로 선언 필요.”
그러나 이어진 문장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번 폭발은 정점이며, 이후 분출은 점차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파괴는 계속되겠지만, 지금이 가장 큰 폭발이었다.”
그 말은 사태가 진정된다는 뜻이 아니었다.
파괴가 끝났다는 것은, 되돌릴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분출이 잦아든다는 사실은 희망이 아니라, 북한 북부가 사실상 ‘복구 불가능한 영역’이 되었다는 확인에 가까웠다.
그곳은 더 이상 국가 제도가 작동할 수 있는 땅이 아니었다.
지도로 남을 이름도, 정치 체계도, 국경도 사라지고
오직 ‘지구적 재해 지역’이라는 기록만 남게 될 뿐이었다.
서울, 국가위기관리센터 회의실은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위성 영상이 사라진 모니터는 더 이상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다. 대신, 모두의 시선은 대통령에게 향해 있었다. 자연이 선언한 종말 앞에서, 인간이 내릴 수 있는 다음 선언은 오직 하나였다.
윤현우 대통령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방 전체에 파문처럼 퍼졌다.
“백두산은 단지 폭발한 것이 아닙니다. 한 국가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결정을 미룰 수 있는 시간도 함께 끝나가고 있습니다.”
그 말은 단순한 언급이 아니었다. 그것은 “역사의 다음 장이 시작되었다”는 선언이었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재난의 관찰자가 아니었다. 이제 선택을 미룰 수 없으며, 행동을 결정해야만 하는 존재가 되었다.
합참의장이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자료를 내려놓았다. 군복의 어깨 계급장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군인의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돌아와 있었다.
“대통령님… 이제 휴전선은 단순한 군사 경계선이 아닙니다. 그 너머는 사실상 ‘국가 기능이 사라진 지역’이 되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움직이지 못한다면, 수백만 명이 국경 앞에서 죽게 됩니다. 그러나 움직이면, 그것은 곧 전작권을 넘어서는 군사행동으로 간주됩니다.”
그 순간, 미국 측 연락관의 통역기가 회의장에 울렸다.
“미국 정부는 현시점에서 작전을 승인할 수 없습니다. 군사적 움직임은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으며, 이는 제3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현재 위치를 유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회의실 조명이 순간적으로 흔들리며, 전력 공급이 약해지는 듯 깜박였다. 참모들의 시선이 일제히 천장을 향했다.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울 상공에도 화산재 입자가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재앙은 북방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국가의 경계가 무너지고, 시간의 경계마저 무너지고 있었다. 윤현우 대통령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의 선택은 단지 ‘북한을 돕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이 스스로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시험이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미국의 체계 안에서 움직여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조차 그 틀 안에 머물러야 하는가, 아니면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하는가… 그 선택이 눈앞에 와 있습니다.”
그의 속마음은 단 한 줄로 정리되었다.
‘자연은 국경을 지우고 있다. 그런데 인간만 국경을 붙잡고 있다.’
UN 긴급안보리 회의는 전례 없이 빠르게 소집되었다. 전 세계의 외교관들이 모니터 앞에 서 있었고, 각국의 대표는 새로운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자연재해에 의한 국가 소멸.”
“영토 공백 지대(unclaimed disaster zone).”
“다자 인도주의 개입 필요.”
그러나 그들의 말 뒤에는 다른 진실이 숨어 있었다.
북한이라는 공간이 사라진 자리 위에, 누가 새로운 질서를 세울 것인가?
이것은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패권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었다.
중국은 즉시 성명을 발표했다.
“자국민 보호를 위한 ‘제한적 진입’을 고려한다.”
러시아도 뒤이어 움직였다.
“혼란 발생 시, 주변 국가의 안정은 러시아의 핵심 이익에 속한다.”
그리고 미국은 조용히 단 한 문장만을 남겼다.
“동북아의 군사 균형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
서울의 회의실은 다시 침묵에 빠졌다. 그 침묵은 더 이상 재난의 충격이 아니었다. 역사의 문 앞에서 주저하는 인간의 침묵이었다. 윤현우 대통령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손에 쥔 자료를 내려놓지 않은 채 말했다.
“백두산 폭발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누가 이 땅의 주권을 행사하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출발점이 아니라, 통일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지, 그 한계를 확인하는 첫 순간이 될 것입니다.”
그 말은 회의록에 그대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훗날, 역사가들은 이 날을 ‘대한민국이 미국과의 전작권 문제를 공식적으로 의제로 꺼낸 최초의 순간’이라 부르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