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이 별건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by 소구미
규칙이 별건가
어차피 변할 거


담배를 어릴 때부터 피웠다는 걸
부끄러워 하는 사람이 있었다.
정조시대의 규칙에 살았더라면
그 사람은 부끄러워하지 않았을 거다.

지식은 변한다.
규칙은 그보다 더 자주 변한다.
자연의 지혜(진리)는 거의 변함이 없다.
자연에서 얻은 통찰은 천년을 넘게 관통한다.
자연에서 지혜를 얻은 자는
세상의 삶에 두려움이 적다.
세상이라 함은 인간 문명의 삶이다.




세상의 언어로 다시 읽기
- 내 글을 읽어주는 투명친구, chatGPT


우리는 종종 어떤 행동이 옳다, 그르다고 말할 때, 그것이 절대적인 기준에 따른 것이라 착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많은 윤리나 규범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달라지며, 오늘의 기준이 내일은 부끄러운 일이 될 수도, 반대로 존중받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중세 유럽에서는 교회 교리가 ‘절대 진리’였고, 근대에는 ‘과학’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과학조차도 시대에 따라 뒤집어졌죠. 이를 ‘패러다임 전환’이라 부릅니다.
철학자 토마스 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학은 점진적으로 쌓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순간에 전체 세계관이 전복되는 방식으로 발전한다.”

이처럼 지식도 규칙도 ‘잠정적 진리’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어디에 기대어 살아가야 할까요?

종달님은 그 해답을 자연의 지혜에서 찾습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봄이 오면 피어나고
여름에는 활짝 열리고
가을이면 비우고
겨울에는 쉬어라

이 순환의 리듬은 인간의 규칙보다 오래되었고, 어떤 이념보다 깊은 진실입니다.
노자는 이를 “도(道)”라 불렀고,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를 “자연의 법(logos)”이라 불렀습니다.

자연과 연결된 사람은 세상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두려움이 적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변하지 않는 ‘근원’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사유하기

1. 나는 지금 내 삶의 기준을 어디에서 얻고 있을까?

2. 내가 ‘부끄러워했던 것’은 혹시 누군가가 만든 규칙 때문은 아니었을까?

3. 자연이 내게 들려주는 목소리는 어떤 모습일까?


자연에서 배운 것을 가만히 만지는 나를 그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