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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아 맑은 날들 365 III

2025년 11월 16일

by 토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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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6일 — 멈춘 자리에서 피어나는 온기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합니다

오늘 아침, 어둠과 빛의 경계가 아주 천천히 풀려나며
마치 세상이 깊은 숨을 들이쉬는 듯했습니다.
창문 너머의 공기가 한층 차가워졌고,
그 차가움 속에서 오히려
내 마음이 더 또렷해지는 기묘한 평화를 느낍니다.
이렇게 또 하루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잠시 멈춰도 괜찮다. 그 자리에서도 시작이 피어난다.”


오늘의 역사

1942년 11월 26일 — 카사블랑카 영국 초연
오늘, 세계 영화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인
영화 **〈카사블랑카〉**가 영국에서 처음 상영된 날입니다.

이 영화는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람들이 어떻게 사랑하고, 배려하고, 선택하며
자신의 양심과 인간다움을 지켜내는지 보여주었습니다.
불확실한 시대에도
사람의 따뜻함은 언제나 길을 비춘다는 사실을
전쟁보다 강하게 남겼습니다.


오늘의 에피소드

아침에 동네 빵집 앞을 지날 때,
한 아주머니가 굳은 얼굴로 털털거리며
떡을 든 종이봉투를 떨어뜨렸습니다.

봉투가 터지며 작은 떡들이 바닥에 데구루루 굴러갔고,
그 순간 근처에 서 있던 고등학생 두 명이 재빨리 달려가
떡을 하나하나 주워 담아 건네드렸습니다.

아주머니는 쑥스러운 듯 웃었고,
학생들은 “아무것도 아니에요”라고 말하며
미묘하게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 장면은 삶이 얼마나 지친 얼굴을 하고 있어도
사람 사이의 따뜻함은 예고 없이,
대단한 사건처럼 찾아온다는 걸 보여주었습니다.
카사블랑카가 남긴 메시지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서로를 살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 흘러가며 오래 남는 마음

고요히 숨을 들이쉽니다.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오며
안쪽의 작은 시린 자리들을
하나씩 만져주는 듯합니다.

오늘,
내가 지나치는 얼굴들 속에서
감춰진 사연을 조금 더 보게 하소서.
말 한마디 뒤에 숨어 있는
미세한 흔들림을 느끼게 하소서.

누군가의 하루가
막 터져버릴 듯 버겁다 해도,
내 시선만은
그 사람을 붙잡아주는 다리가 되게 하소서.

나의 걸음이 너무 빨라
내 마음보다 앞서 달릴 때,
오늘만큼은
조금 더 천천히 걷게 하소서.
멈춰 있는 사람 곁에서
내 온기를 나누어줄 수 있도록
내 발걸음을 가볍게 낮춰주소서.

어둠과 빛이 함께 깃든 세상에서
내가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작은 용기를 주소서.
손바닥의 온기가
누군가의 겨울을 누그러뜨리는
조용한 불씨가 되게 하소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나 자신에게도
부드럽게 대하게 하소서.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기대고 싶은 마음에도
마른 침묵 대신
따뜻한 숨결을 얹어주게 하소서.

오늘을 지나며
작은 선의가 내 안에서 흘러
누군가에게 닿고,
그 누군가의 온기가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지기를,
나는 조용히 빌어봅니다.

숨을 내쉬며
오늘을 놓아 줍니다.
그러고 나면,
오늘이 내게 남긴 가장 고운 잔향만이
천천히 마음 깊은 곳에 스며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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