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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아 맑은 날들 365 III

2025년 11월 28일

by 토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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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8일 — 빛이 머무는 자리에서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합니다

새벽 공기가 유리창에 얇게 기대어
세상의 첫 숨을 내쉬는 순간,
나는 오늘도 조용히 눈을 뜹니다.
흩어지는 어둠 사이로
아주 작은 빛 한 점이 걸려 있고,
그 빛이 마치
“오늘도 너에게 자리를 내어주겠다”고
속삭이는 듯합니다.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합니다.
어제의 그림자를 끌고 오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여백이 이름 모를 온기로
천천히 채워지는 아침입니다.


오늘의 역사

1520년 11월 28일 — 마젤란, 마침내 태평양을 마주하다

복잡한 해협을 통과해
끝내 드넓은 태평양이 눈앞에 열렸던 날입니다.
거센 바람과 불길한 물결을 지나
그는 ‘가장 고요한 바다’라는 이름을 얻은
이 광막한 공간에 도달했습니다.

역사는 가끔
가장 혼란스러운 지점 너머에
뜻밖의 평온이 기다리고 있다고
우리에게 조용한 표정으로 일러줍니다.
그리고 그 평온은
누구보다도 오래 헤맨 자에게
가장 깊이 스며들기 마련입니다.


오늘의 에피소드

길모퉁이 작은 카페에서
바리스타 한 사람이
아침 첫 손님에게 커피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손님은 잔을 받자마자
한 모금 마시고는
작게 숨을 멈추더니
아주 천천히 미소를 지었습니다.

“오늘은 향이 더 부드럽네요.”
그 말 한 줄이
바리스타의 눈가에 잔잔한 빛을 틔웠습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오늘은… 제 마음이 조금 고요해서 그런가 봐요.”

그 짧은 교환 속에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작은 평온 한 조각을 나누었고,
그 온기가 카페 안에 퍼져
아침의 온도를 아주 조금 끌어올렸습니다.

혼란을 지나 고요에 닿는 여정은
언제나 바다 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순간 속에서도
은근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오늘,
내 마음의 해협도
천천히 잦아들게 하소서.

밀려드는 생각들이
파도처럼 부딪혀올 때에도
그 사이에 숨어 있는
고요의 길을 찾게 하소서.

내가 지나온 어둡고 복잡한 물결이
부끄러운 흔적으로만 남지 않게 하시고,
그 모든 경험 너머에 열리는
넓은 바다를 볼 수 있는 눈을
저에게 허락하소서.

잠시 멈추는 용기를 주시고,
작은 친절 하나가
오늘의 무게를 바꾸어 놓을 수 있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누군가의 하루가 흐트러진 자리에서
내가 건네는 말 한마디,
작은 미소 하나가
태평양의 첫 햇빛처럼
조용히 번지게 하소서.

오늘의 첫 숨을 깊게 들이쉬고
천천히 내놓습니다.
그 숨결 속에서
내 마음의 바다는 조금씩 잔잔해지고,
나는 비로소
새로운 하루를 띄울 준비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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