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시도와 과학적 가능성, 그리고 우리의 새로운 길.5장
무당, 샤먼, 영매가 사용한 ‘접속 상태’의 공통점
트랜스(Trance)와 현대 뇌과학의 연결점
— 무당, 샤먼, 영매라는 여러 이름들
사람이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
사라진 것은 몸인데, 우리가 가장 붙잡고 싶은 것은 목소리입니다.
“지금 저 사람에게 물어볼 수만 있다면…”
이 마음은 나라를 넘어, 시대를 넘어, 사람들을 같은 곳으로 데려왔습니다.
바로 **“그들의 말을 대신 전해주는 사람”**에게로요.
이 사람들을 우리는 이렇게 부릅니다.
한국에서는 무당, 시베리아와 몽골에서는 샤먼,
서양에서는 미디엄(medium) 혹은 영매,
다른 곳에서는 주술사, 힐러, 예언자라는 이름으로 불러왔습니다.
이 장에서는 그들을 무조건 믿지도, 단번에 부정하지도 않고,
“인류가 죽은 이와 대화하고 싶을 때, 어떤 사람에게 어떤 역할을 맡겨왔는가”
라는 관점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각 문화마다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이들이 맡은 역할을 단순하게 정리하면 세 가지입니다.
죽은 자의 말을 전한다 돌아가신 조상, 사고로 떠난 가족, 이름 모를 혼령의 말을 대신 전합니다. “할머니가 이런 말을 전해달라 하신다네요.” “그 아이가,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하네요.”
신이나 보이지 않는 존재의 의사를 전한다
어떤 일의 길흉(吉凶), 앞으로의 선택, 마을의 큰 결정에 대한 신탁.
고대에는 전쟁을 할지 말지, 이주할지 말지 같은 문제도
이런 사람들의 입을 통해 결정되곤 했습니다.
상처 입은 사람을 달래고 다독인다 몸이 아픈 사람에게 굿이나 기도, 의식을 통해 위안을 주고, 마음이 무너진 사람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줍니다.
겉으로 보면 “영적인 역할”이지만,
조금만 시선을 바꿔보면 이들은 슬픔과 불안을 다루는 심리 상담자 역할을
오랫동안 해온 셈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을
“신의 말”, “죽은 이의 말”이라는 형식으로 듣고 싶어 했고,
영매들은 그 욕구를 대신 떠안은 존재들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전 세계의 여러 기록을 보면
“영혼과 대화하는 사람들”에게서 비슷한 인생 이야기가 반복됩니다.
어린 시절 큰 병을 앓고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회복한 사람
갑작스러운 사고, 번개를 맞거나 큰 자연재해를 겪은 사람
반복해서 이상한 꿈을 꾸고, 그 꿈 속에서 어떤 존재에게 “불렸다”고 느낀 사람
집안에 예전부터 무당, 샤먼, 영매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사람
과학적인 언어로 보면,
이들은 강렬한 충격 경험을 통해
자기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속한 공동체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신이 너를 택했다.”
“조상이 네게 말을 걸어왔다.”
“이제 너는 둘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라.”
즉, 어떤 사람에게 일어난 극단적인 경험을
“선택”이라는 이야기로 바꿔 해석하는 것이지요.
이 해석은 때로 그 사람에게
“나는 쓸모 있는 일을 위해 살아남았다”는 의미를 줍니다.
그래서 영매라는 역할은,
당사자에게는 운명 같은 짐이자, 살아갈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꿈에서 돌아온 엄마의 말을 들은 사람,
죽은 친구의 목소리를 혼자 들었다고 믿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런데 영매의 특징은,
**“혼자 듣지 않고, 함께 듣게 만든다”**는 데 있습니다.
굿판, 의식, 집회, 상담 같은 공개된 자리에서
영매는 몸을 흔들거나, 기도하거나, 조용히 눈을 감고 앉은 뒤
“지금, 누가 와 있습니다.”라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부터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그에게 집중됩니다.
이것은 일종의 집단적 초점 맞추기입니다.
원래는 각자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맴돌던 그리움과 두려움이,
한 사람의 입을 통해 하나의 목소리로 모이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이건 연기이고, 무의식의 연출이다”처럼 보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이건 진짜다, 저 사람 입을 통해 우리 할머니가 말하고 있다”라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그 순간 사람들의 표정과 눈빛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울음을 터뜨리는 이도 있고,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털어놓는 사람도 있습니다.
영혼의 존재 여부를 떠나,
이 “함께 듣는 자리” 자체가
사람들에게 감정의 출구 역할을 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무엇일까요?
정말로 보이지 않는 존재가 영매의 입을 빌려 말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슬픔과 그리움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만들어낸 정교한 무대일까요?
지금의 과학으로는
“영혼이 실제로 들어왔다/안 들어왔다”를
실험실에서 깔끔하게 증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좀 더 부드러운 태도로 질문을 바꾸면,
다른 풍경이 보입니다.
“이런 자리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여기서 오가는 말들이, 남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
누군가는 영매를 만나고 나서
오랫동안 품고 있던 죄책감을 내려놓습니다.
누군가는
“할머니가 괜찮다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들은 뒤
멀어졌던 가족과 다시 연락을 시도합니다.
또 누군가는
“이제 네 건강을 챙기라더라”는 말을 계기로
담배를 끊고, 검진을 받으러 갑니다.
이것이 진짜로 저 세상에서 온 메시지냐고 묻는다면,
명확한 대답을 내리기 어려울지 모릅니다.
그러나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 말들은 분명히 이 세상의 삶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영매들을 향해 “가짜다” 혹은 “진짜다”라고 서둘러 단정 짓기보다,
이렇게 질문해 보려 합니다.
“인류는 왜 이렇게까지 해서,
죽은 이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했을까?”
그 질문이,
영혼과의 대화를 과학과 심리, 의식의 탐구로 이어가는
다음 장의 출발점이 됩니다.
이제 우리는,
무당·샤먼·영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단순한 미신의 상징도,
완전한 신의 대변자도 아닌,
“죽은 이의 말을 전해 달라는
인간의 오래된 부탁을 떠안고 살아온 사람들”
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다음 소단원에서는
그들이 말하는 ‘접속 상태’,
즉 트랜스 상태를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며,
우리 뇌와 마음이 그 순간 어떤 변화를 겪는지
조금씩 풀어가 보겠습니다.
— 그들은 어떻게 ‘다른 목소리’를 들었다고 느끼는가
영매들은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가 내 입을 빌려 말하는 것 같았어요.”
우리가 보기엔 같은 사람이, 같은 방에서, 같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데
정작 그 자신은 “나 말고 다른 존재가 있다”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이 애매하고도 묘한 지점을,
우리는 이 책에서 **“접속 상태”, 혹은 트랜스(trance)**라고 부르려 합니다.
완전히 잠든 것도 아니고,
완전히 깨어 있는 것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
이 소단원에서는
그 상태로 들어가는 길,
그 안에서 사람들이 겪는 느낌,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종교적 시선과 과학적 시선을
한 번에 살펴보려 합니다.
트랜스 상태는,
복잡한 이론서가 아니라 몸의 리듬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입니다.
계속 반복되는 북소리와 장구 소리
같은 멜로디를 길게 이어 부르는 구음과 찬송가, 만트라
몸을 흔들며 추는 춤과 의식적인 몸짓
깊고 고른 호흡, 또는 길게 이어지는 기도
한밤중까지 이어지는 밤샘 기도나 굿,
혹은 빛을 거의 차단한 어두운 방
이런 요소들은 문화마다 모양은 조금씩 달라도,
결국 비슷한 일을 합니다.
“평소의 생각을 잠시 내려놓게 만들고,
한 가지 감정과 한 가지 리듬에 몰입하게 한다.”
우리는 보통,
수많은 생각과 할 일, 걱정 속에서 머리를 굴립니다.
그런데 북소리, 노랫소리, 기도, 춤 같은 반복되는 자극은
그 잡음을 서서히 밀어내면서,
의식의 초점을 한 곳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상과는 조금 다른
“문턱”에 서게 됩니다.
완전히 이 세상을 떠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평범한 정신 상태도 아닌,
중간 지대에 들어가는 셈입니다.
영매나 샤먼, 무당의 체험담을 모아보면
단어는 달라도 비슷한 문장들이 반복됩니다.
“처음엔 내가 말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말이 나를 앞질러 나가기 시작했다.”
“내 머리로 생각해서 고른 문장 같지 않았다.”
“몸은 힘든데, 동시에 멀리서
내 자신을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눈앞이 또렷하면서도,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건 마치,
우리가 뭔가에 깊게 몰입했을 때와 조금 닮았습니다.
운전을 오래 하다가
“어, 여기까지 어떻게 왔지?” 싶은 순간.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다가
시간이 훌쩍 지나간 걸 나중에 알아차릴 때.
게임, 음악, 춤, 기도, 명상에 완전히 빠져
주변 소음이 잘 안 들리는 느낌.
이런 순간들에도
우리는 평소와 다른 의식을 맛봅니다.
트랜스는 그보다 더 깊고 더 감정적으로 자극된 상태라고
조심스럽게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을
당사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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