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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

챕터 36 : 도망자

by BumBoo

띵똥.


켄지 관장의 표정이 무섭게 굳어졌다.


그 짧은 순간,


그의 눈빛 속에서 섬뜩한 분노와 함께 차가운 결단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기철이와 나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관장실 문을 박차고 나가는 발소리가 마치 천둥처럼 울렸다.



갤러리의 입구를 향해 필사적으로 뛰어가는 순간,


머리 위에서 섬뜩한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굉음과 함께 육중한 철문이 천천히,


그러나 멈출 줄 모르는 기세로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온몸을 던져 철문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차가운 금속이 머리칼을 스치며 등 뒤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닿았다.


간신히 빠져나왔다는 안도감도 잠시,


뒤를 돌아보자 기철이의 모습이 보였다.


다리를 절뚝이는 탓에 철문 속에 갇히고 만 것이다.


그는 철창 사이로 나를 향해 괜찮다는 듯 손짓을 했다.


"도망가! 먼저 도망가!"


그의 입 모양이 절박하게 외치고 있었다.


그 순간, 기철이의 뒤로 건장한 남성 둘이 경비복을 입은 채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손에는 곤봉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나는 기철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온 힘을 다해 달렸다.


골목길을 벗어나 큰길로 뛰쳐나왔지만,


낯선 일본의 거리는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졌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갤러리의 경보음이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서 경찰을 찾아가던,


하다못해 영사관이라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공항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하네다 공항으로 향했다.


복잡한 인파 속에 몸을 숨긴 채 발권 카운터로 향하던 중,


익숙한 그림자들이 눈에 띄었다.


아까 갤러리에서 보았던 경비복을 입은 남자 몇몇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나를 찾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얼른 인파 속으로 몸을 숨기고 그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들은 공항 출입구와 발권 카운터 주변을 맴돌며,


마치 먹잇감을 찾는 맹수처럼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때, 주머니 속 휴대전화에서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띵똥.


손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나는 재빨리 화면을 확인했다.


발신자 정보 없음.


그러나 내용은 선명했다.


<나를 찾고 있나? 소용없는 짓이다. 여기서 멈추면 최기철을 풀어 주겠다.>


유태경이 나를 지켜보고 있나?


아니면 이미 내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인가?


소름이 돋았다.


나는 주위를 미친 듯이 두리번거렸다.


그의 시선이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섬뜩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이대로 비행기를 타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나는 황급히 공항 화장실로 들어가 여벌의 옷으로 갈아입고,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 공항을 빠져나왔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빠르게 새로운 경로를 떠올렸다.


신칸센을 타고 후쿠오카로 이동한 뒤,


배편으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일 것 같았다.


나는 신칸센 승강장으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창 밖으로 도쿄의 야경이 빠르게 멀어져 갔다.



기철이 녀석, 혹시 잘못된 건 아닐까?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설마 목숨을 해치지는 않겠지 하는 희미한 희망과,


노도술을 칼로 찌르고 피범벅이 된 채 나를 응시하던,


녀석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뒤섞여 머리가 복잡했다.


태경이는 이제 더 이상 내가 알던 보육원의 친구가 아니었다.


그는 할아버지의 원한을 갚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예측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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