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39 : 폭로
다음 날부터 나는 보이지 않는 거미줄을 치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인연을 맺었던 언론고시 준비생들,
사회에서 만난 기자 지인들,
심지어는 이름만 들어본 신문사와 방송사의 제보함까지,
내가 닿을 수 있는 모든 곳에 씨앗을 뿌렸다.
손가락은 키보드 위를 춤추듯 움직였다.
익명성을 철저히 보장하며,
'에덴 솔루션 전 CEO 유태경(본명 야나기 케이)의 실체'
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꾸준히 글을 올렸다.
제보의 핵심은 간결하고 명확했다.
도굴꾼 가문의 한국인 행세를 하는 일본인 야나기 케이가
신라시대 유물을 몰래 일본으로 밀반출하고 있다는 것.
나는 유태경이 가장 아끼는 것을 건드렸다.
그의 뿌리, 그의 정체성.
"다음 소식입니다.
에덴 솔루션의 전 대표 유태경 씨가 한국의 귀중한 유물을 일본으로 밀반출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경찰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유 씨는 일본인 이름인 야나기 케이로도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의 친조부가 일제강점기 조선 유물 도굴에 연루되었다는 주장이 함께 제기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경찰은 유 씨의 밀반출 혐의에 대해 다각도로 수사를 진행할 방침입니다."
내가 던진 작은 조약돌은 순식간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서 깊숙이 내재된 반일 감정이라는 불쏘시개에 불이 붙자,
유태경, 아니 야나기 케이의 신라 유물 밀반출 사건은 걷잡을 수 없는 불길처럼 언론을 집어삼켰다.
방송사들은 경쟁하듯 속보를 내보냈고,
신문사들은 헤드라인을
'야나기 가문의 검은 그림자',
'도굴왕의 후예, 한국 유물 강탈'
같은 자극적인 문구로 채웠다.
온라인은 분노와 비난의 댓글로 들끓었다.
'국가 차원에서 유물 반출을 막기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당장 유태경을 체포해서 구속시켜야 한다'는
여론의 맹렬한 포화가 쏟아졌다.
내가 퍼뜨린 연기는 마치 굴 속에 숨은 토끼를 끌어내 듯,
그를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만들었다.
밤늦은 시각, 휴대전화가 맹렬하게 울렸다.
발신자 정보 없음.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심호흡하며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분노는 활화산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억눌린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날것의 감정이었다.
"네가 한 짓이냐?"
냉정을 잃은 목소리가 대뜸 귓전을 때렸다.
숨조차 쉬지 않고 다음 말이 이어졌다.
"최기철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걸로 이해해도 되겠지?"
나는 심장이 조여드는 것을 느꼈지만, 애써 태연한 척 대답했다.
내 목소리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너도 알다시피 기철이는 에덴 보육원 시절부터 너나 나나 싫어했던 놈이잖아.
그 자식이 어떻게 되건 말건 내 알 바 아니야."
기철에 대한 걱정으로 속이 타 들어갔지만, 내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결국 끝까지 가보자는 거군."
태경이의 목소리는 한층 더 낮아졌지만,
그 안에는 강철 같은 결의가 느껴졌다.
"나는 우리 할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찾아왔을 뿐이다.
이 유물들은 원래부터 우리 가문의 소유라고.
언론에서 아무리 떠들어 댄들 내가 이 유물들을 내놓을 것 같아?
어림도 없어."
그의 목소리에 묘한 떨림이 스며 있었다.
그것은 분노라기보다는, 자신의 신념에 대한 맹목적인 확신처럼 들렸다.
나는 의도적으로 그의 신경을 더욱 건드렸다.
"네가 뭐라고 떠들어대 봤자, 결국 너는 도굴꾼 집안의 손자이고,
한국의 유물을 훔쳐서 일본으로 빼돌리려는 도둑놈에 불과해.
경찰이 곧 너를 잡으러 갈 테니까, 감옥 가기 전에 맛있는 거나 많이 먹어 둬라."
전화 너머로 그의 격양된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내가 곧 너를 찾아가서… 하늘에 있는 노도술을 만나게 해 줄 테니, 기다리고 있어."
그의 목소리는 복수의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그러더니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마치 모든 감정을 억누른 듯한, 얼음장처럼 차가운 음성.
그 변화는 섬뜩할 정도로 부자연스러웠다.
"그나저나… 한초희는 잘 만나 보았나?
한수련을 꼭 빼닮았지?
한수련을 보고 싶지 않은가?
죽기 전에 한수련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면…
내가 너를 찾아갔을 때 나의 명예를 더럽힌 죄에 대해 어떤 벌을 받아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두고 있어."
한수련 부원장님을 데리고 있는 거냐고 물으려는 찰나, 그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수화기 너머로 '뚜-욱' 하는 끊김 음만 이 허무하게 울렸다.
그에게 도굴꾼 가문이라는 약점이 있듯,
나에게도 한수련이라는 약점이 있었다.
그리고 태경이는 나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가문의 명예를 목숨처럼 중요시하는 유태경이
전국적으로 도굴꾼 가문이라고 불명예스럽게 벌거벗겨졌다.
그는 분명 나에게 사과를 요구하러 찾아올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 어느 곳에서 일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영영 그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은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