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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

챕터 43 : 심판의 순간

by BumBoo

"어떻게… 어떻게 빠져나왔지?"


케이의 목소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허공을 맴돌았다.


그의 눈은 나를 향한 지독한 증오로 번뜩였지만,


그 안에는 방금 자신이 흙더미 속에 파묻었던 내가,


마치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망령처럼 눈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악과 혼란,


그리고 일말의 섬뜩한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그의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그가 맹목적으로 믿었던 자신의 완벽한 계획이,


한순간에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왜? 귀신인가 사람인가 분간이 안 되는 표정인데.


죽었어야 할 놈이 살아 돌아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싶지?"



나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며 비릿하게 웃었다.


그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여전히 내가 어떻게 이곳에 나타났는지,


아니,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의 시선은 서재 문과 나를 번갈아 오갔다.



"여긴 어떻게…."



그의 목소리가 절망적으로 떨렸다.



"아, 여길 어떻게 찾아냈냐고?"


나는 그의 질문을 되받아 쳤다.


"네가 신줏단지 모시듯 가져온 보석함 바닥을 한 번 열어봐.


네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야나기 가문의 '유산'이 아니라,


네놈의 목줄을 쥐고 있는 진짜 '유물'이 거기에 숨어 있으니까."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케이는 보석함을 움켜쥐고 바닥을 뒤집었다.


그의 손가락이 거칠게 보석함 바닥을 더듬었다.


그리고 이내, 작고 동그란 물체가 그의 손에 잡혔다.


규칙적인 심장 박동처럼 빨간 불빛을 깜빡이는 그것.


GPS 발신기였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것을 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공포와 배신감,


그리고 자신이 완벽하게 농락당했다는 치욕감으로 가득 찼다.



"난 받은 건 꼭 돌려줘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거든.


그리고 이것도."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동안 나를 짓눌러온 무기력의 무게,


한수련 부원장님에 대한 그리움,


기철이의 생사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케이의 오만방자함에 대한 끓어오르는 증오.


그 모든 감정이 뒤섞여 응축된 채,


마침내 폭발하듯 오른 주먹을 그의 얼굴에 날렸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의 고개가 옆으로 꺾였다.


입술이 찢어져 피가 흘러내렸고,


그는 그대로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안경이 날아가 벽에 부딪히며 깨지는 소리가


고요한 서재에 날카롭게 울렸다.


그는 바닥에 쓰러진 채,


피 묻은 입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를 내뱉으며 절규했다.



"시네… 시네… 바카… 바카야로 시네!!!"



그의 눈은 광기로 번뜩였다.


그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작은 권총을 꺼내 들었다.


차가운 금속이 내 눈앞에 섬뜩하게 번뜩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뒤로 주춤하며 물러섰다.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의 손가락이 방아쇠에 걸렸다.



그 순간이었다.



빠지직!



귀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전류음이 서재를 가득 채웠다.


케이의 몸이 경련하듯 굳어졌다.


그의 눈은 허공을 향한 채 고정되었고,


손에 들렸던 권총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탕'


하는 소리를 냈다.


그는 그대로 의식을 잃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의 몸에서는 타는 듯한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다.



쓰러진 케이의 뒤로,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 테이져 건을 들고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이 임무를 완수한 듯한 차분함이 감돌았다.


서재 창 밖에서는 이미 수많은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마치 새벽의 정적을 깨고,


정의의 심판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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