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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머리 공주에게 찾아온 탈모

떨어진 머리카락을 보며 웃는 아이

by 가은이 아빠

그 긴 검사들이 끝나고 바로 항암을 위한 첫 약물치료 과정에 들어갔다. 우선, 항암제를 안전하게 맞기 위해 ‘케모포트’를 가슴 위쪽에 삽입했다. 반복적으로 정맥주사가 필요한 암환자는 굵은 중심정맥에 케모포트라는 관을 삽입하는데 그로 인해 목과 가슴엔 큰 수술 자국이 남았다. 여자아이라는 생각에 그 상처가 더 마음 아팠지만, 혈관을 매번 찌르는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출처 : JB혈관외과


그리고 진행된 “항암화학요법”. 어디선가 들어본 적은 있지만, 그 단어의 무게를 이제야 정확히 알게 되었다.


암세포의 증식을 막기 위한 약물 치료.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상 세포까지 함께 공격당하는 고통스러운 여정이다. 약물이 투여된 첫 이틀은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독한 약물이 가은이 몸에 점점 퍼져갔고, 결국 가은이의 몸은 축 늘어져 아무것도 먹지 못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힘들다고 울기라도 하면 덜 속상하겠다. 하지만 울 힘도 남아 있지 않았던 가은이는 부모품에 안겨만 있었고, 우린 다시 무기력함에 빠졌다.




그렇게 약물이 다 투여되자, 약물이 몸의 세포를 죽여 면역력이 떨어질 때까지 병원에서 해 줄 수 있는 건 없다고 집에서 요양하라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갑자기 바닥에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보이기 시작한다. 몸속에 있는 모낭세포들에 직접적인 타격이 일어난 것 같다. 씁쓸하게 머리카락을 치우고 있는데,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모습을 목격한다. 힘도 하나 없는 가은이가,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쥐어 보며 씩 웃었다. '뭐가 빠지네?' 처음 보는 광경에 마치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찰나의 얼굴 표정. 아무것도 모르기에 보여줄 수 있었던 그 천진난만한 미소에, 가슴이 미어졌다.


그리고 빠지는 양이 점점 늘어갔기에, 가은이는 가려움을 호소했고 결국 우리는 머리를 밀어주기로 했다. 앞으로 한동안 못 보게 될 머리카락인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부모의 아픈 마음을 핑계로 더 미루는 건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았다. 나는 집에 있던 바리캉을 바로 들고 왔고, 엄마는 가은이를 안았다. 그리고 나는 떨리는 손으로 바리캉을 들어 머리를 밀어주었다.


한 5분 정도 걸렸을까? 기계 소리가 멈춘 후, 방 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가은이, 엄마, 아빠. 우리 가족 모두 말이 없었다. 그 고요함은, 오묘한 슬픔이 되어 방 안을 채웠다.


하지만 고통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며칠 뒤, 심해진 부작용으로 우리는 가은이를 데리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지속되는 구토와 고열. 면역력이 바닥난 아이는 숨 쉬듯 고통을 앓았고, 병원생활은 다시 시작이었다.


가은이는 다시 엄마의 품에 안겨 고통을 버텼고, 아내는 남편인 나에게 기대 버텨야 했다. 앞으로 우리 가족이 버틸 최선의 구조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지탱해 줄 사람인 내가 무너지면, 이 구조는 무너진다. 탈모는 치료과정의 하나의 부작용이다. 너무 큰 감정으로 의미 부여하는 건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치료가 시작되면서 너무나 많은 감정들이 스쳐 지나간다. 두려움, 불안, 걱정, 긴장, 속상함. 하지만, 그 많은 감정들을 다 어루만져주다가는 내가 먼저 쓰러질 것 같았다.


난 이 가족의 가장이니까 모든 걸 버텨야 한다. 한쪽 빰을 때려가며 느슨해진 나를 다그쳤다. 그래, 난 어른이니까 괜찮아!




< 가은이에게 애착인형이 있어 다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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