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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가 있는 날

by grassrain


병원 갈 땐 항상 걸어간다.

걸어가는 길은 항상 똑같고, 신혼 때부터 살아 온 동네라 꽤나 친숙한 풍경들이다. 요즘엔 이주에 한번 규칙적으로 진료를 받으러 가고 있으며, 대부분 금요일 오전 열 시 반 전후로 병원 예약을 한다. 미세먼지가 잔뜩 뒤덮인 날이어도 병원 가는 길은 상쾌하고 가볍다.

날씨가 변하고 있는 동네의 풍경 속에서 숨은 구경거리들을 찾기도 하고, 볼 때마다 새로워 보이는 나무의 색감들을 감상한다.

햇볕에 정수리가 따끔거리는 날에도, 공기 중에 물방울이 꼼꼼하게 들어찬 습한 여름날에도, 회색 구름으로 하늘에 시선의 맞추기 어려운 날에도, 우산의 기능에 의문이 생길 만큼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도 걷는다.

걷는 걸 좋아하지만 집에서 나가기까지는 몇 번의 뜸이 필요하다. 왜 뜸을 들이는지 모르겠다. 피곤한 건지, 게으른 건지, ‘밖에 나가기 싫다 ‘ 가 제일 명확한 생각이다. 가끔 시계를 노려보며 일분 일분 미룬다. 나가야 하는 시각의 삼십 분 전까지 버틴다. 그때까지 내 두 눈은 하얀 벽지를 응시하며 가만히 앉아있다. 하지만 머릿속은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다. 난 약속을 매우 잘 지킨다. 약속을 위해 내 몸이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히도 세수를 시작하면 신발 신는 것까지 어렵진 않다. 척척척 후다닥이다. 확실히 정신과 약을 먹기 전 보다 정신과 약을 먹은 후엔 시계를 덜 노려본다.

걷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약속 없이 산책만을 위해 집 밖을 나기는 건 꽤나 힘들다. 집에서 병원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이십 분. 다른 약속들보다도 병원 가는 길은 항상 기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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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게 치유 당하고 있어요. 누군가에게 내 글을 보이는게 아주 많~이 부끄럽지만 그 누군가에게 나의 글이 작은 토닥임으로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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