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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고증으로 '향수병' 제대로 자극한 한국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by 이슈피커

지나간 시간 속에는 각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시절의 웃음과 눈물, 설렘이 쌓여 오늘의 우리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종종 과거를 떠올리며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그때의 기억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힘이 되기도 한다. 이런 감정을 가장 진하게 불러일으킨 작품이 바로 ‘응답하라’ 시리즈다. 1997년, 1994년, 1988년을 배경으로 한 세 편의 이야기는 각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정서와 일상을 현실감 있게 담아내며 세대를 초월한 공감을 얻었다. 첫사랑의 설렘, 가족 간의 애틋함, 친구와 이웃 간의 우정을 교차하며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마음속 추억의 풍경으로 남아 있다.


‘응답하라 1997’, H.O.T.와 함께한 세대의 기억


‘응답하라 1997’은 시리즈의 출발점이자 복고 감성을 하나의 장르로 만든 상징적인 작품이다. H.O.T와 젝스키스, 서태지와 아이들로 대표되는 1990년대 아이돌 문화의 열풍 속에서 한 세대의 청춘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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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성시원은 H.O.T.의 토니를 향한 열렬한 팬이자, 세상 모든 에너지를 오빠에게 바치는 열여덟 살 소녀다. 세월이 흘러 방송 작가가 된 그는 여전히 H.O.T.의 노래에 설레는 어른이 되어 있다. 드라마는 그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시키며, 90년대를 통과해온 이들에게 그 시절의 뜨거움을 다시 불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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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원과 윤윤제의 관계는 ‘응답하라 1997’의 또 다른 축이다. 친구이자 가족처럼 자라온 두 사람은 서툰 감정 속에서 첫사랑의 의미를 찾아간다. 윤제는 전교 1등의 모범생이지만 마음속엔 시원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품고 있다. 서로를 향한 감정이 언제 시작됐는지조차 알 수 없는 채로, 시간이 지나서야 그 마음이 사랑이었음을 깨닫는다. 시원과 윤제가 걸어온 시간은 곧 ‘우리 모두의 90년대’다. IMF의 불안 속에서도 라디오, 하이텔, 팬클럽과 같은 소소한 열정으로 세상을 견디던 청춘의 얼굴이 그 안에 있다.


‘응답하라 1994’, 하숙집에서 피어난 청춘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 ‘응답하라 1994’는 한층 더 넓은 세대로 이야기를 확장한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대학 새내기들이 신촌 하숙집에 모여 살며 펼치는 청춘의 기록이다. 부산, 마산, 순천, 서울 등 서로 다른 지역에서 모여든 청춘들은 언어와 습관, 삶의 방식은 다르지만 같은 공간에서 부딪히고 웃으며 ‘함께 자라난다’. 극의 중심에 선 성나정은 농구선수 이상민을 향한 열렬한 팬이자, 세상을 향해 서툴지만 솔직하게 마음을 내보이는 스무 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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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 곁에는 언제나 ‘쓰레기’라 불리는 오빠의 친구 김재준이 있다. 투박하고 무심한 듯하지만 그 속엔 깊은 따뜻함이 깃들어 있다. 둘은 서로의 일상 속에 너무 오래 머물러, 사랑이 언제 시작됐는지도 모른 채 익숙한 온기 속에 머문다. 가족처럼 지내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 청춘의 성장과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동시에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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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는 시대의 변화도 함께 그려낸다. 농구의 인기가 전국을 휩쓸던 시절, 삐삐와 공중전화, 버스의 동전통 소리까지 그 시절의 소리와 풍경이 화면 곳곳에 살아 있다. 작품은 ‘그때의 청춘이 어땠는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지금의 우리에게 ‘그때처럼 뜨겁게 살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응답하라 1988’, 골목길에서 피어난 가족과 우정의 온기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한 ‘응답하라 1988’은 세대의 감정을 넘어 가족과 이웃의 이야기를 중심에 둔다. 배경은 서울 쌍문동. 다섯 가족이 한 골목에 모여 살아가며 웃고 울던 시절의 이야기다. 정치와 사회의 격변기 속에서도 사람들 사이에는 여전히 따뜻한 온기가 있었다. 이웃집끼리 반찬을 나누고, 아이들은 함께 학교를 오가며, 어른들은 서로의 자식을 자기 자식처럼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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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선은 그 시절의 평범한 둘째 딸이다. 늘 언니에게 치이고 동생에게 밀리지만, 꿋꿋하게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간다. 공부보다 친구와 수다, 음악과 패션을 더 좋아하는 열여덟 살 소녀는 어느 날, 오랜 친구 정환을 향해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정환은 무뚝뚝한 경상도 소년이다. 늘 투덜대지만 덕선을 향한 마음만은 누구보다 진심이다. 말보다 행동으로 표현하는 그의 순정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응답하라 1988’은 이처럼 가족과 친구, 첫사랑의 감정이 뒤섞인 삶의 풍경을 따뜻하게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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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작품 모두 하나의 공통된 정서를 품고 있다. 바로 ‘함께였던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다. 누군가의 첫사랑이었고, 친구였고, 가족이었던 그 시절의 우리. 지금은 각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문득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마음속에 남아 있는 그때의 기억이 삶을 버티게 만든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세대의 기억을 담은 기록이다. 1990년대의 아이돌 문화, 1994년의 대학가 하숙집, 1988년의 골목길까지. 시대는 다르지만 그 안에 살아 있는 감정은 같다. 웃고 울고, 사랑하고 아파하며 성장해온 모든 순간이 시리즈를 통해 다시 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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