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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빌런’ 보여줬던 한국 작품 BEST 3

주인공보다 더 빛난 악역들

by 이슈피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 여자 주인공, 악역은 빠질 수 없는 존재다. 남녀 주인공이 큰 고난 없이 사랑을 이루는 이야기라면 보는 재미가 다소 떨어지고 몰입도도 낮아진다. 반면 예상치 못한 시련과 방해가 이어질 때 이야기는 비로소 살아난다. 이때 갈등의 중심에 선 인물이 바로 악역이다. 악역은 시청자의 분노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사실 극에 긴장감과 생동감을 불어넣는 데 꼭 필요한 인물이다. 주인공에게 끊임없이 난관을 안기고 평온을 깨뜨리면서 극의 흐름을 한순간도 놓칠 수 없게 만든다. 악역의 존재가 돋보일수록 주인공의 매력도 함께 상승한다. 시청자는 악역이 만들어낸 위기와 반전을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극에 몰입하게 된다. 이번 기사에서는 이런 빌런이 중요한 역할을 해낸 작품 세 편을 골라 소개한다.


복수의 서사를 완성한 빌런, 넷플릭스 ‘더 글로리’


‘더 글로리’는 폭력에 짓눌려 삶이 파괴된 한 여자의 집요한 복수극을 담고 있다. 학창 시절 끔찍한 학교폭력을 당한 문동은(송혜교)이 평생에 걸쳐 치밀하게 준비한 복수의 여정을 보여준다. 극을 이끌어가는 악역 박연진(임지연)은 가식적인 미소 뒤에 숨겨진 잔인함과 무감각함으로 시청자의 분노를 자아냈다. 연진의 일상은 아무 일도 없는 듯 흘러갔지만, 그가 저지른 폭력의 대가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문동은이 인생의 극야를 견디고 돌아오자 연진은 결국 자신의 과오와 마주한다.

2.jpg 사진=넷플릭스

문동은은 가난과 폭력, 외로움 속에서 삶을 포기하려 했으나 어느 날 안갯속에서 살아남기로 결심한다. 용서는 없고, 세상에 빚진 것도 없다는 단단한 다짐으로 복수의 길을 선택했다. 그의 곁에 있는 주여정(이도현)은 외유내강의 인물로 동은의 복수에 동참하며 차갑고 날카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동은과 여정은 서로의 상처를 발견하고 복수를 함께 설계하며 긴밀하게 얽혀든다.


박연진은 극의 중심에서 악의 축을 담당한다. 부모의 무한한 보호 아래 죄책감 없이 살아온 그는 자신이 저지른 폭력의 결과를 결코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늘 그림자가 있다는 사실을, 동은의 등장을 통해 뼈저리게 깨닫는다. 또 다른 인물 강현남(염혜란)은 가정폭력 피해자로 처음엔 자신의 인생에 잘못이 있다고 믿지만 동은을 만나면서 결코 참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현남의 결단은 동은의 복수 계획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는다.

3.jpg 사진=넷플릭스

하도영(정성일)은 흑과 백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던 인물로 동은의 등장에 의해 자신의 세계가 흔들린다. 전재준(박성훈)은 언제나 ‘갑’의 위치에 서 있으며, 끝없는 욕망과 탐욕으로 자신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진다. 연진과 그의 패거리가 만들어낸 위기와 반전은 주인공 동은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켰고, 각 인물의 내면을 치밀하게 조명하며 이야기를 깊이 있게 완성했다.


‘더 글로리’는 악역의 집요함과 이기심, 그에 맞서는 주인공의 절박함을 극명하게 대립시킨다. 극 중 악역의 존재가 강렬할수록 주인공의 복수와 성장도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덕분에 드라마는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며 시청자를 끌어당긴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잔인한 서열 게임, 티빙 ‘피라미드 게임’


‘피라미드 게임’은 교실에서 벌어지는 투표식 왕따라는 충격적인 설정을 내세워 집단 내 서열과 권력 관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낱낱이 드러낸다.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한 달에 한 번 비밀투표를 통해 학급 내 따돌림 대상을 정하는 백연여고 2학년 5반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곳에는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가 모두 뒤섞여 서열 게임에 내몰린 학생들이 등장한다.

4.jpg 사진=티빙

이야기의 중심에는 백하린(장다아)이 있다. 백하린은 국내 최고 그룹 회장 부부의 외동딸로, 학업 성적도 최상위권에 속한다. 언제나 상냥하고 세련된 태도로 주위를 사로잡지만 실제로는 냉철하고 영악하다. 하린은 교묘하게 주변 학생들을 조종하며 집단 내 최고 위치를 유지한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타인을 이용하고 억누르는 욕망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장다아는 백하린의 이중적인 모습을 섬세하게 연기하며 묵직한 인상을 남겼다.


주인공 성수지(김지연)는 적응력이 뛰어나고 눈치가 빠르다. 전학을 반복하며 무난하게 반에 녹아드는 데 익숙하지만 ‘피라미드 게임’의 타깃이 되면서 극한의 따돌림을 겪는다. 자신이 표적에서 벗어나자 곧 방관자가 되려 하지만, 주동자들의 변덕에 따라 언제든 다시 타깃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결국 이 잔인한 게임 자체를 없애기로 결심한다. 수지는 주어진 환경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점차 단단해지고, 주변 인물들과 연대하며 변화를 이끈다.

5.jpg 사진=티빙

명자은(류다인)은 백하린의 오래된 친구지만 항상 주눅 들어 있다. 자은은 집단 안에서 존재감을 크게 드러내지 않으나, 중요한 순간마다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서사의 흐름을 바꾼다. 각 인물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집단 내 서열 게임에 적응하거나 저항하면서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의 폭력성과 냉혹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피라미드 게임’은 서열과 권력이 만들어내는 잔혹한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악역 백하린의 악의적인 조작과 카리스마는 주인공의 성장과 저항을 더 뚜렷하게 만들고, 학교라는 공간이 가진 어두운 이면을 부각시킨다. 집단 내 폭력과 그에 맞서는 용기, 각 인물의 심리 변화를 세밀하게 그려내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사이코패스의 진짜 얼굴, 영화 ‘베테랑 2’


‘베테랑 2’는 정의를 위해 밤낮없이 뛰는 강력계 형사들과 연쇄살인범의 대결을 다룬다. 형사 서도철(황정민)은 평소 가족을 제대로 챙길 시간조차 없을 만큼 일에 매달린다. 어느 날 한 교수의 죽음이 연쇄살인 사건과 연결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형사팀은 수사에 착수한다. 연쇄살인범은 인터넷을 통해 예고편을 공개하며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다.

6.jpg 사진=CJ ENM

이야기의 전환점에는 박선우(정해인)가 있다. 선우는 경찰 내에서는 모범적이고 정의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극도의 냉혹함과 쾌락을 숨기고 있다. 그는 순한 얼굴로 강력범죄수사대에 합류하지만 실제로는 사람의 생명을 게임처럼 여기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다. 박선우는 범죄자를 응징하는 다크 히어로가 아니라, 사적 제재라는 이미지를 이용해 자신의 살인을 합리화한다.


박선우가 보여주는 이중성은 관객에게 극도의 긴장감을 준다. 선한 경찰의 얼굴로 시민과 동료를 속이고, 동시에 죄 없는 사람들을 가차 없이 제거한다. 정해인의 미소와 차가운 눈빛이 번갈아 오가며 평범함과 광기 사이의 간극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7.jpg 사진=CJ ENM

세 작품 모두 공통적으로 악역의 존재감이 극의 재미와 긴장감을 좌우한다. ‘더 글로리’의 박연진, ‘피라미드 게임’의 백하린, ‘베테랑 2’의 박선우는 각자의 방식으로 주인공과 맞서며 극 전체에 긴장과 변화를 일으킨다.

악역이 만들어내는 위기와 반전, 주인공이 보여주는 용기와 변화가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시청자와 관객은 이 과정을 지켜보며 더 깊이 극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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