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관상'
tvN 드라마 '얄미운 사랑'에 출연 중인 이정재가 첫 방송 시청률 공약을 이행하면서, 영화 '관상'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는 지난 10월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첫 회 시청률이 3%를 넘기면 수양대군 복장을 입고 명동에서 팬들을 만나겠다”고 밝혔다.
수양대군은 2013년 이정재가 영화 '관상'에서 연기했던 캐릭터다. 흥미로운 건 수많은 대표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시 꺼내든 이름이 수양대군이라는 점이다. ‘관상’에서 이정재는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선 수양대군을 연기했다.
계유정난을 모티프로 삼은 이 영화는 관상을 소재로 역사적 비극을 풀어낸다. 총 913만 명을 동원한 흥행작으로, 개봉 당시 극장가는 그야말로 이 작품으로 들썩였다. 송강호, 김혜수, 조정석 등 대형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가운데, 이정재는 강한 인상으로 단번에 시선을 모았다. 특히 말을 타고 처음 등장하는 장면, 그리고 “내가 왕이 될 상인가”라는 대사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그는 ‘오징어 게임’의 성기훈이 아닌, 수양대군을 다시 꺼냈다. ‘관상’ 이후 이정재는 확실히 다른 길을 걸었다. 바로 이어진 영화 ‘암살’로 1000만 관객을 모았고, '인천상륙작전', '신과 함께' 시리즈까지 연이어 흥행에 성공하며 주연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그런 그가 드라마 공약을 통해 12년 전 캐릭터를 다시 꺼냈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영화 ‘관상’을 떠올렸다. 명동 거리 한복판에 등장한 수양대군 복장의 이정재는 그 시절 관객이 마주했던 장면을 그대로 되살렸다.
‘관상’은 1453년 조선 시대 수양대군이 정권을 장악하며 벌어진 비극적 사건, 계유정난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실존 인물을 중심에 놓기보다, 송강호가 연기한 허구의 관상가 내경이라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웠다. 관상을 통해 권력을 읽고, 시대의 흐름에 휘말리는 남자의 이야기로 영화는 진행된다.
내경은 몰락한 양반의 자제로, 아들 진형(이종석), 처남 팽헌(조정석)과 함께 유유자적 살아가던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능력을 눈여겨본 기생 연홍(김혜수)이 찾아와 한 가지 제안을 건넨다. 관상으로 돈을 벌어보자는 말에 내경은 팽헌과 함께 한양으로 향하고, 결국 조선 최고의 관상가라는 명성을 얻는다.
하지만 인생이 바뀌는 건 한 순간이다. 관직에 오른 내경은 문종(김태우)과 김종서(백윤식), 그리고 수양대군(이정재)을 만나며 역사의 한복판으로 들어가게 된다.
영화의 제목은 ‘관상’이지만, 실은 관상 그 자체보다 그 능력을 가진 한 인물이 거대한 역사 앞에서 어떻게 휘말리는지를 따라가는 영화다. 연홍이 내경을 한양으로 이끌었듯, 그를 역사의 정면으로 끌어들인 건 결국 그 능력 때문이었다. 영화는 일찍부터 계유정난이라는 설정을 깔고 가지만, 정작 관객이 궁금해지는 건 실존 인물보다 내경과 팽헌, 진형 같은 허구 인물들의 운명이다.
초반부는 무겁지 않다. 오히려 경쾌하다. 내경이 한양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은 유쾌한 리듬으로 이어지고, 조정석이 연기한 팽헌은 장면마다 활력을 불어넣는다. 웃음을 유도하는 요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수양대군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영화는 톤을 바꾼다.
수양대군은 등장부터 위압감을 품고 있다. 말 위에서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인물은, 대사 한마디 없이도 분위기를 완전히 장악한다. 그의 얼굴에서 역모의 기운을 읽은 내경은 이를 막아보려 하지만, 영화는 끝내 실제 역사처럼 이야기를 끌고 간다.
문종은 요절하고, 김종서 역시 끝을 맞는다. 내경이 막으려 했던 일은 결국 벌어진다. 그리고 내경의 아들 진형까지, 예견된 결말을 피하지 못한다. 영화는 결국,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어도 시대의 흐름을 뒤집을 수 없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만든다.
긴장감이 높아진 영화 후반부에서, 관객은 내경이 무너지는 과정을 따라가게 된다. 초반엔 관상으로 인생을 바꿨던 사람이, 후반엔 그 능력으로 아무것도 막지 못한 채 비극을 마주한다. 영화가 시작될 때 연홍이 던졌던 “사주 위에 관상이 있고 관상 위에 눈치가 있다”는 말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다시 떠오르게 된다.
‘관상’은 당시 캐스팅만으로도 이슈였다. 배우들이 너무 많아 조화가 어렵다는 예상도 있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제 몫을 해냈다. 송강호는 평범한 듯하지만 내면에 복잡한 고민을 담은 내경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고, 조정석은 ‘납뜩이’ 캐릭터의 사극 버전이라 불릴 만큼 감초 역할을 확실히 해냈다.
김혜수는 단단한 매력을 가진 인물로 극의 흐름을 바꿨고, 백윤식, 김태우는 묵직함을, 이종석은 젊은 에너지로 극의 결을 채웠다. 그리고 이정재는 수양대군이라는 기존 캐릭터의 틀을 완전히 깨고, 한층 절제된 연기로 공기를 만들어냈다.
한편, 영화 ‘관상’은 2013년 9월 11일 개봉 후 사흘 만에 113만 명을 모았고, 15일에는 259만, 19일 하루에만 80만 명을 기록하며 누적 465만을 돌파했다. 23일에는 700만, 29일에는 800만을 넘겼고, 10월 13일에는 900만을 돌파했다. 최종 관객 수는 913만 4586명으로 집계되며, ‘명량’, ‘광해’, ‘왕의 남자’에 이어 사극 영화 흥행 4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