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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알프스 가지산

by 신피질

경상도 두 번째 산행지로 영남 알프스를 선택했다. 여러 군데 확인했지만 이번 주 그곳을 가는 산악회는 없다.

1박2일 무박 산악회는 밤 11시 출발 새벽 4시경 산행지에 도착해서 곧바로 새벽 산행을 한다. 따라서 교통편 숙박 산행 루트 등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이번에는 산악회를 이용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이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

세상일은 미리 철저히 계획하고 준비하면 실행할 때 실수를 줄이고 현지에서 용이하다.

나는 즉흥적으로 시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현지에서 고생을 한다.

하지만 준비만 하다가 실행하지도 못하기보다는 준비 없더라도 곧바로 실행하면 삶은 더 풍족해질 수 있다.

가능한 짐을 줄이려고 먹을 것도 다음 한 끼만 챙겼다.

오후 4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땅으로 출발했다.

이번이 혼자서 가장 멀리 떠나는 산행이다. 대부분 일상은 가족과 주위 인연들과 영원히 살 듯 물욕과 애증을 껴안고 사는 것이다.


혼자 떠나는 여행자는 고독과 이별에 익숙해야 한다. 고독과 이별이 익숙해질 때 닫힌 커튼 사이로 새로운 세계가 들어설 것이다.

영남알프스는 백두대간의 남쪽 울산 밀양지역에 천 미터 이상 높은 산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풍광이 유럽 알프스와 비슷해서 인지, 아니면 단지 고산들이 밀집해서 붙인 이름인지 궁금하다. 어쨌든 난 알프스라는 이름을 덜컥 물었고 이번에는 종주해야겠다고 결정했다.

영남알프스는 억새 평원이 볼거리로 억새 꽃이 10월 초가 절정이니 가을에 산꾼들이 선호하는 장소다.

호젓한 억새 평원에 고독한 나를 세워야겠다.


일부러 일반 고속버스를 택했다. 최소 경비와 최대 불편이 게으른 일상을 벗게 하는 모티브다. 게으른 일상을 죽이려면 가난하고 불편하게 살아야 한다.

좌석은 딱딱하고 자리도 좁다. 우등과 프리미엄을 타라는 듯, 의자에 쿠션이 없고 자리가 비좁아 어깨를 움츠려야 한다.

울산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서 택시를 타고 택시기사에게 영남알프스 근처까지 가자고 부탁했다.

택시 기사는 묻지도 않았는데 본인도 서울 사람이라고 한다. 영남알프스를 간다고 했더니 울산에 비가 적게 오는 이유를 설명한다. 남쪽에서 오는 비구름이 영남 알프스에 막혀 방향을 영천 쪽으로 틀어 울산은 강우량이 적고 영천은 강우량이 많다고 한다.

아침 7시 30분 석남사 주차장에서 가지산 산길을 천천히 걸었다.

이른 아침 공기는 청량하다.


작은 오솔길 솔잎과 참나무 낙엽이 가득하고 낙엽 사이사이 부드러운 황토 흙이 아침 햇빛에 서서히 온기를 받는다. 적송과 참나무는 곧게 뻗어 있다. 숨소리와 낙엽을 밟는 발자국 소리, 너무 조용해서 안 들리던 이명까지 들리는 고요와 평화의 시간이다.


긴 햇살이 나뭇가지를 뚫고 오솔길에 온기를 만든다. 나무의 줄기와 껍질은 규칙적인 듯 비대칭이 있고 땅속에 있어야 할 뿌리들은 노인 등뼈처럼 땅 밖으로 불거져 내 맨발의 피부에 밟힌다.

내 오감은 산의 모든 것과 직접 교감한다. 노란색 단풍이 아침 햇살과 하모니를 하고, 수천 년 풍화로 부서진 가늘고 작은 돌 모레가 길 옆에 떨어진다. 아직 새벽 서늘함이 가시지 않는 바람이 가지를 잔잔하게 흔든다.

서서히 경사가 급해지며 길은 딱딱한 돌과 바위가 많아지고 부드러운 낙엽과 흙은 점차 줄어든다.

달리 생각해 보면 경사가 급한 바위길은 보너스다. 산행의 목적지가 정상이면 경사가 급해야 내 몸의 고도를 단거리로 빨리 높일 수 있다.

바위길은 정신이 긴장되어 육체가 힘든 줄 모른다. 이곳 가지산 중턱도 경사진 곳이 나온다.


이런 곳을 오르고 나면 땀으로 뚫린 피부가 선선한 공기를 통과시켜 온몸이 가볍다.

정신은 맑아져 먼 곳의 시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지산은 영남 알프스 중에 가장 높은 산으로 다른 인접 산들과 달리 기암괴석과 바위가 많은 산이다. 산 중턱 여기저기 다양한 형태 바위가 박혀 있다.

중턱 길은 바위와 돌로 거칠어진다.

중턱에 오르니 드디어 가지산의 위용이 보인다.


솟아오른 봉오리가 매우 높아 보인다. 중턱까지 잘 다지며 기초를 단단히 쌓은 다음 그 위에 봉우리를 세운 이단 지붕 형식이다.

하지만 이것도 착각이다.

1000M가 넘는 산들은 정상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정상을 보려면 여러 번 고비를 넘겨야 한다.

이단 지붕이 아닌 사단 오단 지붕이다.

오늘은 구름 한 점 없는 쪽빛 하늘이다.

청명한 한려수도의 쪽빛 바다가 저 하늘에 거꾸로 뒤집혀 박혀 마치 그 쪽빛 바닷물이 내 눈으로 쏟아지는 듯 눈부시게 파랗다.

큰 산은 정상을 쉽게 내주지 않는다.

마지막 가기 위해 절반의 힘이 필요하다.

드디어 가지산 정상이다.

가지산은 정상에 올라와 사방을 둘러보는 것이 최고의 맛이다.

주변에 천여 미터의 고산인 천황산 신불산 운문산 영축산 등 십여 개 산이 고리 모양 형태로 눈앞에 펼쳐진다.

영남알프스는 백두대간의 골반 지역이란다.

가지산은 영남 알프스에서 가장 높은 곳이니 가지산 정상에 올라야 사방팔방 모든 산과 계곡을 발아래 두며 대장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상에서 나도 두 팔을 벌려 영남 알프스를 품고 소원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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