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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오르며, 단풍과 예외

by 신피질

어둑한 거실에서 피트니스를 가려고 운동복을 챙기다 마음을 바꿨다.

휴일 아침이면 집에 있지 말고 무조건 나오는 게 좋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듯 내 몸의 세포들도 산책이 필요하다. 특히 햇빛이 가득하고 공기가 청명한 오늘 같은 가을 날씨에는 온몸의 세포들이 좋다고 아우성친다.


과천시청 주차장에 차를 대고 관악산 등산로 입구에 섰다.

조금 쌀쌀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매우 화창한 날씨다.

마음먹고 산에 오르면 세상은 전혀 다르게 빛난다. 무성한 나무 잎과 색색의 집 벽돌, 자동차 차체에서 반사되는 빛들로 인해 우울의 빗장이 열리고, 넘쳐나는 에너지를 느낀다.


마음은 정말 어쩔 수 없을 만큼 게으르고 변화를 싫어한다. 루틴이 없으면 끝없이 마음의 속성에 패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어쨌든 나는 오늘 그런 마음을 한 방 먹였다.

밖에 나오기 전에는 그렇게 주저하더니, 이제는 신선한 공기와 다양한 볼거리에 좋다고 아우성친다. 마음은 유치하기 그지없는 변덕쟁이다.

공기가 선선하고, 나무 사이사이 공간으로 하늘빛이 가득 차서 마음은 벌써 스스로를 활짝 열어 버렸다.

내 몸 곳곳에서 엔도르핀이 마구마구 쏟아진다.

마음이 창문을 열 듯 스스로를 온통 열었다. 세포의 공간들이 뻥 뚫려서 육체가 흰 깃털처럼 정신이 맑아지고, 몸이 사뿐사뿐 날아가는 듯하다.

이것이 가을 등산의 묘미일까? 공기가 가벼워지고 세상이 점점 간결해지는 느낌이다. 벌써 몸이 후끈하다.

중턱에 새로 설치된 나무 데크에서 겉옷을 벗고 반팔 티만 남겼다. 선진국의 지방자치단체답게 과천 시청이 관악산 곳곳에 인공 시설물을 설치했다.

나는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에 부정적이지 않다. 오르고 싶어도 오를 수 없거나, 굳이 등산하지 않고도 절경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시설이라 생각한다. 등산하고 싶은 사람은 그냥 처음부터 오르면 된다. 환경을 언급하지만, 환경에 더 치명적인 것이 어디 케이블카뿐이겠는가?

가을은 잎이 꽃이 된다. 산 곳곳이 황색과 주황색의 잎들로 빛난다. 비슷하지만 나는 노란색은 봄의 색이고, 황색 즉 누런색은 가을의 색이라고 생각한다. 노란색은 이제 막 피어나는 20대의 색이고, 황색은 인생의 황혼기에 있는 50~60대의 색이다. 사철나무인 소나무 잎도 몇몇은 황색으로 변한다. 산 정상 부근은 온통 황색으로 물들었다.

관악산은 거대한 화강암 바위 덩어리들이 군데군데 침식되어, 흙이 쌓인 곳에 소나무와 참나무가 힘겹게 기생하는 곳이다. 이곳의 소나무들은 마치 분재처럼 작고 단단하다. 바위들이 머리털을 참나무 잎으로 누렇게 물들인 듯하다.



요즘 아파트 조경의 화살나무 잎이 붉게 물들었다. 마치 옛날 가녀린 기생의 붉은 입술처럼 연약한 이파리가 온통 붉게 피어 가을의 절정을 보여준다. 화살나무의 가녀린 화려함에 안쓰러움이 느껴진다면, 단풍나무는 그와 다르게 당당하다. 태생부터 단풍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고, 이파리가 창처럼 날카롭고 단단하다.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일 정도로 기세가 당당하다. 그래서 가을이면 사람들은 내장산, 설악산 등으로 단풍을 보러 간다. 단풍나무에서 아름다움과 기개를 동시에 얻기 위해서다.

단풍의 붉음이 사라질 즈음, 나는 문득 다른 색을 찾게 된다. 작은 열매의 붉음처럼, 생명의 또 다른 빛깔을. 최근 나는 작은 열매들을 자주 들여다본다. 단풍 못지않게 즐겨야 할 또 다른 기적 같은 존재다. 팥보다 작은, 붉고 빛나는 작은 열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제 때가 되어 세상 밖을 구경하려고 얼굴을 내미는 작은 존재들의 사랑스러움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나무들이 지난 계절 동안 무수한 시련과 노력 끝에 만들어 낸 기적의 열매가 아닌가? 수천만 년의 세월 동안 암석이 만들어 낸 보석처럼, 찬연한 작은 붉은 열매는 가을이 만든 자연의 보석이다.

방금 전 노란 국화꽃을 보았다. 꽃잎은 스무 장가량의 연노란색 날개이고, 가운데 수술 봉우리는 진한 노란색이다. 가을에도 봄처럼 밝은 노란색 꽃이 피었다. 항상 예외는 있는 법이다. 삶은 예외가 있기에 희망을 건다. 이 얼마나 신비로운 일인가. 과학에서도, 신앙에서도 예외는 기적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것도 태양 중심부의 양자 집단에서 일부 양자가 예외적으로 중성자로 변해 핵융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삶은 예외의 기적으로 살아갈 만하다. 그것이 하느님의 은총이든, 부처님의 자비든, 혹은 누군가의 손길이든 간에 변화는 언제나 뜻하지 않게 온다.

요즘 내게는 모든 것이 예외스럽다.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뜻하지 않은 기적 같다. 눈에 띄는 화려한 단풍뿐 아니라, 길에 떨어진 찢긴 낙엽, 내 맨발에 밟히는 작은 돌멩이, 길가의 풀들, 공기와 물, 이 모든 것이 모조리 예외적이고 기적 같다. 알고 보면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예외적 존재가 아닌가? 사실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돌연변이로, 적자생존의 결과물 아닌가? 아내의 말로는 내가 이해 안 되는 멍청이라지만, 나도 5억 대 1의 경쟁을 뚫고 태어난 예외적 존재다.

역으로 생각하면 나는 태생부터 욕망의 덩어리다. 도대체 뭘 얻겠다고 어머니 자궁 속을 죽자 살자 달렸을까? 연주암에 도착해 탑을 도는데 절 방송이 들린다. “네가 아는 모든 지식은 쓰레기와 같으니 모조리 버려라. 창문에 있는 작은 구멍으로 세상을 보지 말고, 창문을 활짝 열어라.” 아침에 떠올렸던 생각을 절에서 다시 듣는다. 자꾸 마음에 휘둘리지 말고, 우주적 감성과 사고를 넓혀야 한다는 것.

관악산 정상이다. 벌써 싸늘한 북풍이 분다.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그리고 남산과 한강, 청계산, 광교산, 수리산 등 인근의 모든 산과 한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 시내 전체와 성남, 안양, 그리고 서쪽의 아득한 곳까지 사방팔방이 발아래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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